사실 담장은 구분과 격리, 단절을 의미한다.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라는 점에서 보면 출구 없는 ‘벽’이다. 한편으론 서로의 관계를 부드럽게 유지하도록 돕는 완충재다. 상호 협력과 교섭, 소통의 통로라는 점에서는 또 하나의 ‘문’이다. 이 양면성은 이웃 농부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와 이웃 사이에도 ‘좋은 담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담장의 높낮이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와 신(新)중화주의를 꿈꾸는 ‘중국몽(夢)’에 맞서서는 우리 담장을 높여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일본의 군국주의 회귀 움직임도 경계해야 한다. 그런 한편으로 교역과 협력의 담은 과감하게 낮춰야 한다.
담을 아예 없앨 수는 없다. 담이 너무 높으면 소통이 막히니 서로 높낮이를 맞추는 게 긴요하다. 그런 담장 곁에 있는 경작지에서 서로 존중하며 성장하는 ‘파종의 시간’이 시작된다.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로 불필요한 담의 높이를 낮출 때 더 좋은 이웃이 생길 수 있다.
고두현 한국경제 문화에디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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