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쿤스(Jeff Koons). 그는 아티스트인가, 인플루언서인가.

[아트]
달에 설치된 최초의 예술 작품이 된 쿤스의 <Moon Phases>
달에 설치된 최초의 예술 작품이 된 쿤스의
지난 3월 민간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우주선 오디세우스에는 제프 쿤스의 작품 <Moon Phases>가 실려 있었다. 달을 주제로 한 야구공 모양의 스테인리스스틸 구 125개에 달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로 인해 제프 쿤스는 ‘달에 작품을 남긴 최초의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의 경계를 우주로 확장했다는 평가와 함께 쿤스의 상업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도 동시에 받았다.
“역시 제프 쿤스군.” 사람들의 반응은 양가적이었다. 감탄도 있었지만, 냉소 섞인 반응도 있었다. 세계적 우주 이벤트에 ‘미술계의 관종’ 제프 쿤스가 또 발을 디뎠다는 의미의 발언이었다. 꼭 이 사건이 아니라도 제프 쿤스의 행보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약간의 조롱 섞인 반응이 따라붙는다. 때문에 그는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가임에도 대중의 호의와 적의 사이에서 헤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플루언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늘 주목받지만, 그 주목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제프 쿤스에게는 여러 타이틀이 붙는다. ‘포스트모던의 황제’, ‘자본주의의 아이콘’, ‘현대미술의 마케팅 천재’, ‘마케팅에 가장 능한 제품 디자이너’ 등. 이러한 타이틀은 그의 성공과 논란을 동시에 반영한다.

제프 쿤스를 싫어하는 사람들

알려진 대로 제프 쿤스의 <Rabbit>은 2019년 경매에서 약 9100만 달러에 판매됐다. 현존 작가 작품 중 가장 높은 경매가였다. 작가에게 숫자는 곧 영향력이다. 그러니 그를 두고 ‘지금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라 불러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제프 쿤스가 존경받는 작가인가?”라고 물으면 물음표가 생긴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제프 쿤스가 예술의 순수함을 훼손하고 있으며, 깊이라곤 조금도 없다고 생각한다. 오리지낼리티에 무심하며, 어디서 본 듯한 것만 그럴듯하게 포장해 판다고 말이다.
그럴 만하다. 그의 대표작 <Balloon Dog>는 흔한 동물 풍선을 거대한 스테인리스스틸 조각으로 재현했고, <Play-Doh>는 어린이용 점토 더미의 형태를 확대했을 뿐이다. <Tulips>나 <Diamond> 역시 일상적 물건을 단순히 크게 만들고 반짝이게 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다(실제로 그는 여러 차례 표절 시비에 휘말린 바 있다).
심지어 그는 스스로 작품을 만들지도 않는다. 초기 산업화 시대의 풍경 같은 거대한 공장에서 수백 명의 스태프가 그의 지시에 따라 작품을 만든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작품의 진정성, 예술가의 역할과 소명 같은 것에서 제프 쿤스는 아주 멀리 벗어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영국의 유명 미술평론가 줄리언 스팰딩은 “쿤스의 작품은 예술이 아니라 사기이며, 그의 성공은 예술계의 타락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생존 작가 중 가장 비싼 값을 기록한 쿤스의 <Rabbit>
생존 작가 중 가장 비싼 값을 기록한 쿤스의
그럼에도 팔린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쿤스의 작품은 여전히 ‘팔린다’. 가고시안이나 즈비르너 같은 세계적 갤러리들은 그의 오랜 파트너이며, 프랑수아 피노와 스티븐 코언 같은 유명 컬렉터, 테이트 모던이나 구겐하임, MoMA 같은 유명 미술관 역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이라곤 전혀 모르는 부동산 재벌이 그의 작품을 사는 것이 아니다. 미술계 인사이더와 전문가들이 여전히 쿤스의 작품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는 의미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그를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그가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 예술 형식을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그 자체다. 또 모니터나 책으로 보면 ‘이게 몇백 억이라고?’ 하며 헛웃음이 나올 만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의 작품은 디테일이 상당하며, 실제로 매우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친다. 대표작 <Balloon Dog> 시리즈는 약 6년에 걸쳐 제작했는데, 고순도 스테인리스스틸의 정교한 가공과 완벽한 표면 처리를 위해 첨단 기술이 동원됐다. 용광로에서 이제 막 길어 올린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매끄러움은 수개월에 걸친 정교한 연마 작업 결과다. 앞서 말한 최고가 작품 <Rabbit> 역시 스테인리스스틸 소재를 사용했다. 금이나 티타늄 같은 값비싼 소재가 아닌, 흔한 스테인리스스틸을 사용한 것에 대해 쿤스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스테인리스스틸이 훌륭한 재료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광택을 내면 가짜 사치품처럼 보이니까요. 저는 부르주아의 사치품이 아닌, 프롤레타리아의 사치품을 원했습니다. 시각적으로 도취되고, 방향 감각을 잃게 하는 것들 말이죠.”
이 발언은 쿤스의 예술 철학을 보여준다. 그는 고급 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일상적 오브제를 사용하지만, 그것을 극도로 정교하고 값비싼 방식으로 재현한다. 이를 통해 그는 예술의 본질, 가치, 그리고 접근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013년 5840만 달러에 낙찰된 쿤스의 대표작 <Balloon Dog>
2013년 5840만 달러에 낙찰된 쿤스의 대표작
“예술가는 방문판매원과 비슷하다”

잘생긴 외모 때문에 쿤스를 중년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1955년생인 그는 한국 나이로 70세 노인이다. 그가 뉴욕에서 첫 전시를 연 것은 1980년이었다. 앤디 워홀로 시작된 팝아트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설치미술 등이 주목받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1979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취임한 폴 볼커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 금리를 20%까지 높이면서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고, 거리는 실업자로 넘쳐났다. 말하자면 그는 어려운 시기 미술계에 데뷔한 젊은 작가였다.
그래서인지 쿤스는 데뷔 초부터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왔다. 어린 시절 캔디를 팔아 용돈을 마련하던 일, 뉴욕 미술관에서 티켓 판매원으로 일한 경험, 제작비를 벌기 위해 월스트리트에서 일한 이야기 등은 그의 상업적 감각과 추진력을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이런 스토리텔링은 그의 작품만큼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쿤스를 흥미롭게 느끼는 부분 중 하나는 그의 옷차림이다. 그는 늘 슈트 차림을 고수한다. 이는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예술가는 어떻게 입어야 한다’는 건 없었지만, 적어도 슈트 차림이면 안 된다는 암묵적 룰은 있었다. 적어도 비즈니스맨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는 깔끔한 슈트 차림으로 자신은 마치 아티스트가 아니라 비즈니스맨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이런 옷차림으로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마치 프레젠테이션하듯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설명하며, 자신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세일즈한다. 전통적 느낌의 아티스트를 ‘연기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다. 제프 쿤스가 자주 했던 말이 있다. “예술가는 방문판매원과 비슷하다. 문을 열었을 때 누가 나올지 모르지만, 무조건 팔아야 한다.” 이는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허무는 그의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어린이용 점토를 떠오르게 하는 <Play-Doh>
어린이용 점토를 떠오르게 하는
쿤스의 유산

당신은 쿤스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호오와 별개로 그의 작품은 예술의 본질, 상업성, 대중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예술 작품의 가치가 어디서 오는지,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대중문화와 고급 예술의 경계는 어디인지에 대한 논쟁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 아티스트로서 그의 마케팅 전략 역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쿤스 이후 기업과 아티스트의 협업이 활발해졌고, 미디어를 통한 작가의 브랜딩 역시 증가했다. 대규모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작업 방식도 일반화됐다. 동시에 쿤스 이후 예술의 상업화에 대한 우려가 깊어진 것도 사실이다. 예술의 가치가 점점 더 시장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현상을 가속화했다는 비판 역시 이어진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예술가로서 그의 존재감을 더욱 굳건히 할 뿐이다.
그가 미술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의 작품이 현대사회의 가치관과 소비문화, 예술의 역할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 거기서 파생되는 새로운 논의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제프 쿤스가 여전히 현대미술의 정점에 서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가 여전히 ‘존경받지 못하는’ 작가라 해도 말이다.


이기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