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스.티. 듀퐁이 리브랜딩을 단행한다. 때마침 에스.티. 듀퐁 공식 수입원인 에스제이듀코는 2세 경영 시대를 맞았다.
[인터뷰]
지난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에스제이듀코는 새로운 도약에 나섰다. 창립자 김삼중 회장의 장남인 김선기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공동 선임하며 세대교체에 나선 것이다. 김선기 신임 대표는 서울대 전산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2001년 에스제이듀코 전산실에 입사해 꾸준히 경영 수업을 받아 왔다.
취임 후 한경 <나인투나인>과 첫 인터뷰를 진행한 김 대표는 “에스.티. 듀퐁의 리브랜딩 등 도전 과제를 생각하면 어깨가 무겁다”며 “규모적 확장보다는 내실을 다지고, 그 내실을 통해 사업을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 축하한다. 지난해 에스제이듀코 대표이사가 됐다.
“2세대 경영인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회사가 채 10년도 되기 전에 입사해 이미 회사 역사의 3분의 2 이상을 함께해 왔다. 대표이사가 됐다고 해서 딱히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사업적으로 보면 지난해가 창립 30주년이었다. 그리고 내년이 에스제이듀코의 초석이 된, 삼일사를 창업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특별한 시기에 중임을 맞게 돼 부담과 함께 책임감이 크다. 만만치 않은 도전 과제를 생각하니 어깨가 무겁다.”
- 에스제이듀코는 1993년 창립 이후 30여 년간 패션 전문 강소기업으로 발전해 왔다. 에스제이듀코가 오랫동안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한민국 패션사를 책으로 만든다면, 우리 회사가 한 줄 정도는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수입 패션 비즈니스가 생긴 시점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회사는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 에스제이듀코가 유일하다. 특히 에스.티. 듀퐁과의 인연은 30년이 넘는다. 우리 같은 수입·라이선스 기업이 꾸준히 성장하려면 파트너사와 오랜 시간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에스제이듀코가 가족경영, 그것도 오너가 직접 책임경영을 하는 패밀리 비즈니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아버지 김삼중 회장님이 파트너사에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내 브랜드처럼 심혈을 기울여 운영한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거래하면 여러 이점이 있겠지만, 내 브랜드처럼 운영해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 취임 당시 김삼중 회장이 당부한 말이 있다면.
“파트너사와의 거래만큼 중요한 점이 있다면, 유통사 또는 고객에게 외면받을 때 사업을 오래도록 영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회장님은 최근까지 직접 영업 일선에서 뛰셨고, 내게도 오너가 직접 영업하는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신다. 경영자가 직접 유통사, 협력사와 소통하는 것은 물론 고객과의 접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패션 시장은 단 한 시즌만이라도 고객에게 외면받는다면 언제든 위기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장에 기초한 경영의 중요성을 늘 당부하신다.”
- 에스제이듀코는 에스.티. 듀퐁과 쟈딕앤볼테르, 브로이어, 이브살로몬 등을 한국 시장에 소개하고 있다. 각 브랜드의 장점이 있다면.
“에스제이듀코의 자랑 중 하나가 카테고리별로 ‘킬러’가 될 수 있는 브랜드를 하나씩 갖고 있다는 점이다. 에스.티. 듀퐁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라이터’라는 한마디로 설명이 되지 않나. 쟈딕앤볼테르는 페미닌과 캐주얼이 공존하는데, 비슷한 브랜드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브로이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다재다능하다. 캐주얼을 입고도 비즈니스 미팅 자리에 나갈 수 있다. 특히 이 가격대에 이만한 퀄리티의 브랜드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브살로몬의 경우 샤넬이나 루이 비통, 펜디 등에 퍼(fur)를 제공하던 모피상으로 시작한 브랜드다. 그만큼 품질이 뛰어나다.”
- 요즘 패션 시장이 위기라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패션 시장이 많이 바뀌었다. 당시만 해도 ‘MZ(밀레니얼+Z) 세대가 패션 시장을 지배한다’, ‘MZ가 사랑하는 브랜드가 살아남는다’고 했는데, 불과 2~3년 만에 이 공식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영원불멸할 것 같던 명품 브랜드도 매출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고가 브랜드를 주로 수입·유통하는 에스제이듀코도 이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 위기를 기회로 바꿀 전략이 있나.
“변화와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하고자 한다. 에스제이듀코의 운영 방식은 물론 브랜드별로도 큰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당장 에스.티. 듀퐁이 리브랜딩한다. 우리 회사가 에스.티. 듀퐁을 수입한 이래 가장 대대적인 리뉴얼이다. 쟈딕앤볼테르 또한 내년 가을·겨울 시즌부터 아주 큰 변환점을 맞게 될 것이다. 또 아시아에서 한국 시장의 중요성이 일본과 중국을 앞서면서 많은 유럽 패션 브랜드가 연락을 해 오고 있다. 조심스럽게 신규 브랜드 론칭도 검토 중이다.”
- 에스.티. 듀퐁은 한국 남성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그만큼 리브랜딩 소식을 궁금해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단순히 제품 몇 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로고부터 매장 인테리어 콘셉트까지 모두 바꾸는 대규모 리브랜딩을 전개한다. 핵심 내용은 ‘오리지널로의 회귀’다. 에스.티. 듀퐁 하면 라이터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150여 년의 브랜드 역사에서 라이터를 만들기 시작한 건 불과 80여 년 전이다. 이전에는 트래블 케이스(트렁크)로 명성을 쌓았다. 20세기 초 로열패밀리와 귀족, 부르주아를 위한 트래블 케이스를 주문 제작한 것이 브랜드의 시초이기 때문. 태국 여왕이나 이집트 왕비, 덴마크 여왕, 윈저공 부인 등이 당시 에스.티. 듀퐁의 주요 고객이었다. 다시 말해 에스.티. 듀퐁의 오리지널은 가죽 제품이다. 가죽을 중심으로 브랜드의 변화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이번 리브랜딩의 주요 골자다.”

“우선 다양한 가방을 출시할 예정이다. 그중에는 여성용 핸드백도 포함된다. 가방에는 다양한 패턴이 적용되는데, 에스.티. 듀퐁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헤드’와 ‘파이어 헤드’ 패턴이 대표적이다. 다이아몬드는 굉장히 정밀한 가공과 절삭을 필요로 한다. 다이아몬드 헤드 패턴은 에스.티. 듀퐁의 기술력을 상징한다. 반면 파이어 헤드 패턴은 에스.티. 듀퐁의 라이터를 상징하는데, 고대 연금술에서 불을 나타내는 기호(△)를 연상시키는 삼각 형태가 특징이다.”
- 남성 중심에서 유니섹스 브랜드로 거듭난다는 뜻인가.
“에스.티. 듀퐁이 남성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심지어 브랜드 초기에는 여성 고객이 더 많았다. 일례로 에스.티. 듀퐁이 펜을 처음 만든 계기는 재클린 케네디 여사의 요청 때문이었다. 이후 배우 오드리 헵번의 의뢰로 핸드백을 선보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브랜드가 설립될 당시의 보다 유니섹스적인, 그 역사의 첫걸음을 함께해 온 가죽 제품의 전통을 다시 한번 브랜드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이번 리브랜딩의 핵심이다.”
- 하지만 현재 여성 럭셔리 시장의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판매 전략이 있다면.
“시장 상황이 썩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또 여성 럭셔리 시장은 내로라하는 브랜드들이 치열하게 경쟁한다. 하지만 남성 럭셔리 시장보다 규모가 몇 배나 더 크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에스.티. 듀퐁은 조급하게 해당 시장의 마켓셰어를 차지하려고 안달하기보다는 브랜드 본연의 아이덴티티와 본질을 강조하면서 서서히 시장에 침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리브랜딩의 대전략 중 여성 핸드백은 일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여성 핸드백이 메인이 아니라 최신 트렌드에 맞게 모든 상품군을 리뉴얼하면서, 점진적으로 여성 또는 유니섹스 상품의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향후 5년간의 방향성이다. 특히 초기부터 대대적이고 공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하기보다는 은근하고 지속적으로 상품을 노출하고, 잠재 고객의 주의를 환기하는 작업을 먼저 진행하려 한다.”
- 온라인 구매가 일상화되면서 백화점의 위기라고 하는데, 에스제이듀코의 상당수 브랜드와 매장은 백화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온라인 판매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실제 전체 매출의 약 12%가 온라인 판매에서 나온다. 낮은 수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파는 물건이 럭셔리 제품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고객이 명품 제품을 구입할 때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을 선호한다. 일종의 ‘밸류’를 구입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포털사이트(듀코 몰)가 조금 불편한 부분은 있다. 모든 브랜드가 통합돼 있고, 제품에 대한 정보도 상세하지 못하다. 이 부분은 내년 초 중 개선 예정이다.”
- 김선기 대표가 이끄는 에스제이듀코는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 목표 혹은 비전이 있다면.
“김삼중 회장님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본인의 시대는 양적 성장을 추구해왔다면 다음 시대에는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한국전쟁 직후, 어린 시절을 배고픔과 함께 성장해 온 세대와 고도성장기에 그 과실을 누리며 성장한 세대 사이에 추구해야 할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양적 성장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질적 성장에 더욱 무게를 두고 이를 실현하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나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규모적 확장보다는 내실을 다지고, 그 내실을 통해 끊임없이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것. 그래서 크고 거창한 회사보다는 한국 패션 시장에서 꼭 필요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오태일 | 헤어&메이크업 최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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