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 기관으로 잘 알려진 다르파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DARPA는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Sputnik 발사에 대응해 1958년에 설립되었다. 스푸트니크의 발사는 미국이 우주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다르파는 기술적 충격을 사전에 방지하고, 미국이 기술적 우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탄생했다.
다르파는 기민한 조직 구조와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능력으로 유명하며, 종종 혁신적이고 세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야심 찬 프로젝트Moonshot Project에 자금을 지원한다. 이 기관의 기술 혁신은 군사 역량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간 생활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으며, 전 세계 공공 부문 혁신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부터 AI까지, 다르파가 만든 세상
다르파의 대표적 프로젝트 중 하나는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ARPANET 개발로 분산 네트워크 같은 혁신적 개념을 도입해 전세계 통신을 변화시켰다. 또 현재 군사와 민간에서 필수인 위성항법 시스템GPS 개발에 기여했으며, 스텔스 기술을 통해 F-117 나이트호크와 B-2 스피릿 같은 레이더 회피 항공기를 탄생시켰다. 최근 다르파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우리 삶을 급변하게 만든 여러 기술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인 자율주행 기술 발전은 물론 인공지능, 로봇공학, 뇌-기계 인터페이스 분야에서도 혁신을 이끌었다. 인프라 보호부터 신속한 백신 개발, 합성 생물학 발전은 물론, 미국의 군사 및 방위 능력을 강화하는 첨단 소재와 극초음속 기술까지. 이렇듯 다르파의 영향력은 여전히 다양한 산업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기술에서 다르파는 지난 수십 년간 설계와 제조 혁신을 통해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확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980년대 다르파의 초대규모 집적VLSI 프로그램은 반도체 설계에 혁신을 가져와 오늘날 컴퓨팅 인프라의 기반이 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집적회로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
이어 ‘전자 혁신 이니셔티브Electronics Resurgence Initiative, ERI’를 통해 혁신적인 아키텍처, 에너지 효율적 칩, 고급 제조 기술을 개발하며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분야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되살렸다. 이를 통해 다양한 재료와 구성 요소를 결합한 이종 통합 기술이 발전했으며, 2.5D 및 3D 패키징 기술은 AI·IoT·에지 컴퓨팅 같은 첨단 애플리케이션에 필수인 소형 고성능 시스템을 가능하게 했다.
다르파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칩 생산을 보장해 조작 및 위조 위험을 줄이고, 방사선 경화 전자 장치 개발로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또 뇌 구조를 모방한 뉴로모픽 컴퓨팅과 고속 데이터 전송을 위한 광집적회로 개발에 기여하고, 실리콘 기술의 한계를 넘어설 잠재적 솔루션을 제시했다.
2025년, 다르파는 차세대 마이크로 전자 제조NGMM 프로그램을 통해 3D 이종 통합3DHI 기술 기반의 국내 제조 센터를 설립하고, 전통적 실리콘 기술을 넘어선 성능을 구현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또 ERI 2.0을 통해 미래형 마이크로 전자 기술의 연구와 개발을 주도하며 미국의 기술적 리더십과 국가 안보를 강화하고 있다.
다르파의 2025년 프로젝트
다르파의 최우선 과제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게임 체인저가 될 기술을 찾기 위해 실패 가능성이 크더라도 파급력이 큰 연구를 지향한다. 그렇다면 다르파의 2025년 핵심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2025년, 다르파는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주력한다. ‘AI 포워드AI Forward 프로그램’ 같은 이니셔티브를 통해 AI 기술이 국가 안보 애플리케이션에서 안정적이고 윤리적으로 작동하도록 지원하며, 기술적 신뢰성을 강화하고 있다. 또 생명공학과 첨단 소재에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 예로 ‘리펜스Reefense 프로젝트’는 해안 군사 시설을 보호하면서 생태적 지속 가능성을 통합한 하이브리드 암초 구조를 개발 중이다.
항공·우주·해상·육상 기술에서도 다르파는 혁신을 주도하며, 미국 군대에 파괴적 역량을 제공하고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다르파가 미래 군사 경쟁과 기술 발전의 핵심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5년 1월 현재, 다르파는 한국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구체적 계획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이크로전자, 인공지능, 생명공학 등 다르파의 주요 이니셔티브는 한국의 전략적 관심사와 일치한다. ERI 2.0은 인메모리 프로세싱 칩과 첨단 패키징 기술에 중점을 두며, 2025년까지 50개 프로젝트에 약 2,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는 차세대 반도체 연구 개발에 대한 한국의 주요 투자와 방향성이 유사하다.
또 다르파의 신뢰할 수 있는 AI 시스템과 생명공학 솔루션 개발 노력은 한국이 인공지능, 첨단 생명공학, 양자기술 등 미래 전략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2025년 예산안과 맥을 같이한다. 한국 정부는 경제 혁신과 복지, 안보를 지원하는 동시에 이러한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를 발표한 바있다. 다르파와 한국 간 직접적인 협력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으나, 양국이 중점적으로 투자하는 기술 분야의 공통점은 향후 협력 가능성을 시사한다. 첨단 기술을 통한 경제성장과 국가 안보 강화라는 공통된 목표는 미래 협력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다르파의 이니셔티브는 단순한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기술 환경 속에서 미래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특히 기술적 공통 관심사를 가진 국가들과 협력을 통해 다르파의 혁신적 접근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다르파는 앞으로도 대담하고 창의적 도전으로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세계적 혁신 모델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글로벌 기술 생태계의 균형과 발전에 기여하는 다르파의 행보를 주목하자.
글. 임성규(조지아 공과대학교 교수, 전 다르파 PM)
출처.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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