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는 외국인 투자자가 30%를 차지한다. 글로벌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상적인 밸류에이션을 달성하려면 선진국과의 제도적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지배구조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켓 인사이트]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캠퍼스에 설치된 대형 구글 로고. 사진=연합AFP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캠퍼스에 설치된 대형 구글 로고. 사진=연합AFP
한국 증시는 오랜 기간 구조적으로 저평가돼 왔다. 일명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이익 성장이 견조한 구간에도 관찰된다. 기업의 성장성보다는 제도와 지배구조의 비효율성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반영된 결과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의 상법 개정은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첫 번째 제도적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회사의 경영 판단 기준에 ‘회사의 이익’뿐 아니라 ‘주주의 이익’도 명시하는 개정은 투자자 신뢰 회복을 위한 구조 개선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상장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은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자회사의 상장(IPO), 반복 상장, 이중 상장 등과 같이 동일한 기업집단이 여러 법인으로 분할돼 상장되는 사례는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 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의 동의를 받기 어려운 부분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러한 ‘한국적 예외’가 주주 가치를 훼손하고 기업 투명성을 낮추는 요인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알파벳이 중복 상장을 안 하는 이유

한국 주식 시장은 약 30%의 외국인 투자자를 보유하고 있어 글로벌 자본 유출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런데 현재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외국인 자금 유입은 제한적이거나 단기적 흐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글로벌 자산 시장에서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상적인 밸류에이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의 제도적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고 그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지배구조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미국의 경우 자회사 상장이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주회사와 자회사가 함께 상장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기업은 하나의 법인만 주식 시장에 상장하는 단일 구조(single-entity model)를 보유한다.

대표적으로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Alphabet)은 검색 엔진인 구글, 유튜브, 안드로이드, 자율주행(Waymo), 바이오(Verily) 등 수많은 사업부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을 개별적으로 상장하지 않는다. 이는 각 사업의 가치가 자회사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모회사에 집약돼 주주가 전체 비즈니스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다.

무엇보다 미국에서는 단일 구조만으로 충분한 자금 조달과 기업 가치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이 자회사 상장 유인이 낮은 핵심 배경이다. 기업 공개가 아니더라도 사모 시장에서 기업 신용도 및 성장성에 따라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돼 있기 때문에, 굳이 자회사를 상장해 추가 자본을 유치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

오히려 별도 자회사 상장은 공시, 감사, 내부통제 등의 부담을 지주회사와 자회사 양측에 이중으로 초래하며, 자본 비용 상승 및 기업 가치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 또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연결 공시 및 내부통제 요건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기관투자가 및 의결권 자문기관(ISS, 글래스루이스 등)은 자회사 상장을 주주의 이익과 충돌하는 구조로 간주하며 강력하게 감시한다. 이처럼 법적 강제보다는 시장 규율과 제도 설계가 실질적인 자회사 상장을 억제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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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벌의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기업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했다. 특히 은행 대출과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회사 상장은 그룹 전체의 유동성 확보에 기여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지주회사 구조는 본래 취지와 달리 대주주가 지배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활용되곤 했다. 지주회사가 자회사를 상장하고 자회사는 다시 손자회사를 상장시키는 ‘반복 상장’ 관행이 일반화됐고, 그 결과 동일한 기업 자산이 중복 상장되는 비효율이 고착화된 것이다. 기업 가치가 여러 번 중복 평가되는 과정에서 자본 효율성은 떨어지고 소액주주의 지분 가치는 희석되는 문제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한국 기업은 본질에 비해 과도하게 상장돼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 왔다. 다만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일부 기업들이 인적· 물적 분할 계획을 철회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는 분할 이후의 디스카운트 우려와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고려한 조치로, 기업의 지배구조 전략이 투자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작점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주가 재평가 성공한 히타치제작소

일본도 과거에 한국과 유사한 구조적 문제를 겪었다. 일본의 히타치제작소(Hitachi)는 한때 수십 개의 상장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회사 체제를 유지했고, 일부 자회사의 시장 가치는 모회사보다 높게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히타치는 사상 최대 손실을 기록하며 비정상적인 지배구조가 주는 왜곡을 직시하게 된다.
지난 8월 12일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약 1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도쿄 한 금융빌딩 내부에 설치된 닛케이 주가 시세판. 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 12일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약 1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도쿄 한 금융빌딩 내부에 설치된 닛케이 주가 시세판. 사진=연합뉴스
2009년 이후 히타치는 20개 이상의 자회사를 상장 폐지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모회사인 히타치제작소로 사업부를 집중한 결과 히타치의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개선됐다.

또한 2021년 6월 외국인 투자 자본 유입을 기반으로 약 21년 만에 전고점 탈환에 성공했다. 최근 도요타그룹이 자회사인 도요타 인더스트리를 약 420억 달러 규모로 인수해 완전 자회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한 것도 지배구조 개선의 일환이다. 이 과정은 그룹 지분 구조의 단순화와 자본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결정으로 발표 직후 도요타 인더스트리의 주가는 하루 만에 약 23%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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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례에서 자회사 상장 폐지 또는 흡수 합병이 단기간 내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모회사 주가 및 PBR 또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감에 따라 함께 기업 가치가 재평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회사 통합이나 구조 단순화는 단순한 지배구조 정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곧 자본 효율성을 제고하고 PBR을 끌어올리는 핵심 수단으로 작용한다.

복잡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은 연결기준 자산은 크지만, 분산된 이익 구조와 중복된 비용 구조, 낮은 ROE로 인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자회사가 독립 상장돼 있을 경우, 그룹 전체 시가총액은 쪼개져 평가되고 모회사에 대한 프리미엄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밸류업 정책은 단순히 선언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지배구조 개편과 자회사 정리, 자본 효율성 개선으로 이어지며, 실질적인 주가의 재평가로 연결되고 있다. 자사주 매입 확대, ROE 제고 등의 구체적 계획을 요구하는 이 정책은 과거와 달리 명시적이고 실질적인 압박으로 작용했다.

구조적 개선과 내재적 변화 필수

그 결과 일본 기업들은 2023 회계연도에 약 9.6조 엔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으며 적극적으로 응답했다.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2023 회계연도 기준 외국인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순매수액은 총 7조6900억 엔 규모로 2013년 이후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에 힘입어 니케이225 지수는 33년 만인 2023년 5월에 3만1000선을 돌파했고 2024년 초에는 3만9000선을 상회하면서 버블기 고점을 넘어섰다.

상법 개정은 단순한 문구 변경이 아니다. ‘주주의 이익’을 경영 판단 기준에 포함시킨 것은 경영진의 책임과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법적으로 강화하는 조치다. 지배구조 개선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거버넌스’ 요소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변화다.

증시의 구조적인 리레이팅은 금리나 유동성과 같은 외생 변수로는 한계가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조적 개선과 내재적 변화, 이를 통한 시장 신뢰 회복과 외국인 자금 유인만이 증시의 ‘밸류업’을 이끌어낼 수 있다.

최근의 미 달러의 약세,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 매력 및 충분한 유동성 등을 감안할 때 주가의 상승 여력은 여전히 충분하다. 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일정 수준 가시화될 경우, 국내 증시의 구조적인 재평가가 시작될 것이다.

김수빈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