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미국은 설계, 대만·한국은 생산을 주도하며 공급망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 첨단공정 주도 기업인 엔비디아·TSMC 등에 투자하는 국내외 반도체 ETF가 유망한 선택지로 주목받는 이유다

[ETF 심층해부]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C. 웨이(왼쪽) TSMC CEO와 함께 TSMC의 1000억 달러 규모 미국 투자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UPI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C. 웨이(왼쪽) TSMC CEO와 함께 TSMC의 1000억 달러 규모 미국 투자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UPI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치열한 기술 경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반도체는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등 미래의 국가 경쟁력뿐 아니라 국제 패권까지 좌우할 수 있는 핵심 전략 물자다. 그런 만큼 경쟁에 뛰어든 각국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구축돼 온 반도체 공급망의 글로벌 분업 구조는 격화되는 미·중 간 패권경쟁과 탈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재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반도체를 둘러싼 글로벌 환경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어떤 투자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설계는 미국, 생산은 대만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크게 설계(팹리스), 생산(파운드리), 후공정(조립·패키징·테스트)으로 나뉘며, 생산에 사용되는 장비와 소재의 공급도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미국은 엔비디아, 퀄컴, AMD, 브로드컴 등 세계 유수의 반도체 설계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설계와 지식재산권(IP)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만과 한국은 각각 비메모리·메모리 반도체 생산에서 압도적인 역량을 보유하고 있고, 후공정 부문에서도 중국과 더불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편 네덜란드, 일본, 미국은 노광장비, 화학소재, 웨이퍼 등 핵심 장비와 소재의 공급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은 넘볼 수 없는 수준의 뛰어난 설계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최상단에 자리해 있다. 이러한 강점 덕분에 제조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기업은 단연 엔비디아다.
지난 1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기조연설에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그레이스 블랙웰 NVLink72’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AFP
지난 1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기조연설에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그레이스 블랙웰 NVLink72’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AFP
대만은 반도체 생산의 핵심 국가다. 특히 기술패권의 관건이 되는 첨단 공정(10나노미터 미만) 부문에서 대만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대표 기업 TSMC는 3나노·2나노 공정을 선도하면서 전 세계 첨단 반도체의 92%를 생산한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첨단 공정에서의 입지는 아직 제한적이다.

TSMC는 세계 주요 설계 업체들과 긴밀히 협업하며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TSMC의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따라잡을 기업이 보이지 않는 만큼, 반도체 산업 투자에서 TSMC는 빼놓을 수 없는 선택지다.
재편되는 반도체 공급망…ETF로 따라잡기
한국, 메모리 왕좌 굳건…
비메모리 격차는 여전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인 D램에서 세계 시장의 약 70%, 낸드(NAND)에서 약 50%를 점유해 메모리 부문에서 글로벌 리더로 자리하고 있다. 첨단 공정은 기술 보전을 위해 국내에서, 한두 세대 뒤진 공정은 중국 등 해외에서 생산하는 전략을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더라도, 메모리 분야에서 한국의 우위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명확한 한계도 있다. 국내 기업들의 주력 분야인 메모리 반도체가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미만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따라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이 분야에 거액을 투자하더라도, 급부상하고 있는 AI 반도체 등 비메모리 분야에서의 경쟁 열위를 만회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재편되는 반도체 공급망…ETF로 따라잡기
설계 분야의 최강자인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전략은 ‘대만·한국 의존도 축소’와 ‘중국 견제’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만과 한국 의존도 축소와 관련해서는, 2~3세대에 이르는 파운드리의 기술 격차를 단기간에 극복하기 어렵고, 미국 국내의 비용 경쟁력도 그다지 높지 않은 데다, 고객사 이전 장벽(IP 재설계 비용)과 같은 현실적 제약도 많다.

인텔이 한때 철수했던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입을 선언했지만 TSMC,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바람과는 달리 설계는 미국, 생산은 대만과 한국이라는 기존 구도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기존의 반도체 공급망의 틈새를 파고들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국가다.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생산국이지만 첨단 반도체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반도체 기술의 내재화를 산업 경쟁력 강화 차원을 넘어 국가 생존이 달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 주도의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재편되는 반도체 공급망…ETF로 따라잡기
그러나 미국, 네덜란드, 일본이 첨단 장비 수출을 통제하면서 7나노 이하 첨단 공정의 진입이 막혔다. 화웨이 등 일부 기업이 자체 장비 개발을 시도하고 있지만, 기술·부품·정밀도 면에서 서구 장비를 대체하려면 최소 10년 이상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기술 난이도가 낮은 일부 메모리 반도체, 전력 반도체, 부가가치가 낮은 조립 등 후공정 분야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여전히 기술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부상에 대한 우려로 반도체 산업의 선도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ETF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투자하는 방법


첨단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 대만 중심의 구도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공급망 체계가 당분간 유지된다고 가정하고 투자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될 것이다.
국내외에 상장된 반도체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들의 상위 구성 종목들을 보면 대부분 미국의 설계 업체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최근 수년간 엔비디아가 차별적인 성장과 주가 성장률을 보여 왔기 때문에 엔비디아를 어느 정도 비중으로 보유하고 있는지가 ETF 수익률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국내에 상장된 ETF 중 반도체 공급망에 포진돼 있는 기업들을 골고루 보유하면서도 시가총액과 가중 방식에 따라 비중을 조절하는 대표적인 ETF는 KODEX 미국반도체(390390)다. 이 ETF에는 엔비디아, TSMC, 램리서치와 같은 설계·생산·장비 업체가 골고루 포함돼 있다. RISE 미국반도체 NYSE(H)(469050)는 아직 규모가 크지 않지만, 국내 상장된 반도체 관련 ETF 중 유일하게 환율을 헤지(H)한다.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를 걱정하는 투자자에게 적합한 투자 상품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반도체 산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AI 혁명 때문이다. 따라서 반도체 산업과 AI에 동시에 투자할 수 있는 TIGER 필라델피아AI 반도체 나스닥(497570)도 주목할 만하다. 앞서 소개한 KODEX 미국반도체와 같이 설계·생산·장비 업체들을 고루 보유하고 있지만, 종목 수를 줄여 집중도가 더 높아진 것이 특징이다. 핵심 기업 공급망 자체에 투자하는 ETF도 고려해볼 만하다.
재편되는 반도체 공급망…ETF로 따라잡기
재편되는 반도체 공급망…ETF로 따라잡기
대표적으로 엔비디아 밸류체인에 투자하는 엔비디아밸류체인액티브(483320), TSMC밸류체인에 투자하는 TIGER TSMC파운드리밸류체인(453950)이 있다. 국내 ETF 투자에는 배당소득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에겐 다소 불리하다. 이 경우 달러로 환전해 미국 시장에 상장된 ETF에 투자한다면 매매차익이 양도소득세로 분리과세가 되므로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투자자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미국에 상장된 대표적인 반도체 ETF는 다음과 같다.

가장 대표적인 미국 상장 반도체 ETF는 SMH다. 미국 시장에 상장된 반도체 기업 중 시가총액 상위 25개 기업을 시가총액 가중으로 편입해 운용하며 개별 기업의 편입 상한은 20%로 반기마다 리뷰를 실시해 리밸런싱한다. 최근 편입 종목들은 비중 순으로 엔비디아, TSMC, 브로드컴 등으로 반도체 업종 이익 개선 국면에서 가장 큰 수혜를 볼 수 있는 종목들로 구성돼 있다.

SOXX는 반도체 산업 전반에 투자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개별 종목별 투자 비중을 10%로 제한해 분산투자를 하고 있다. 한편 XSD는 산업 내 중소형주에 동일 가중 방식으로 투자하는 특색 있는 ETF다.

이희상 KB증권 WM투자전략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