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상위권을 달리던 증권사 PB 시절부터 부자 고객보다는 소액투자자를 상담하는 데서 보람을 느꼈다. 금융과 투자를 통해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길을 꿈꿨다. 뜻밖의 순간에 터진 유튜브 채널 ‘박곰희TV’가 박동호 대표의 꿈을 실현시키고 있다.
[커버스토리] 박동호 박곰희TV 대표
86만 명이 구독하는 스타 유튜버, 경제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 박곰희TV를 운영하는 박동호 대표에 대한 수식어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여기에 옛 대우증권 프라이빗뱅커(PB) 출신이라는 이력까지 더해지니 ‘고생길’이라고는 몰랐을 것 같은 엘리트 코스가 연상된다. 그런데 박 대표는 뜻밖에도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한다.
뒤늦은 대학 입학…증권사 PB로 승승장구
“제 첫 직장은 LG전자 냉장고 공장이었어요. 20대의 상당한 시간을 대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일만 하면서 보냈죠. 페인트칠도 하고 막노동도 했습니다. 대부분이 일용직이었죠.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이렇게 계속 살다 보면 불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인생을 바꾸기 위한 기회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러다 강남에서 바텐더 일을 하게 됐는데, 금융과 투자를 다루는 사람이 많이 방문하더라고요.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똑같은 조건으로 도전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투자’라고요. 어떤 핸디캡을 가졌든,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느낌이었어요.”
“부자들은 이미 성공한 분들이잖아요. 제가 상담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자산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이죠.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은 저처럼 힘들게 살아온 이들이 투자를 통해 희망을 가지도록 돕는 거였어요. 그런데 PB 업무의 특성상 자산가 고객을 주로 챙길 수밖에 없었죠. 결국 부자는 계속 부자가 돼 가고, 가난한 사람은 오히려 무리한 투자를 해서 돈을 잃는 모습을 정말 많이 보게 됐습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잡고 싶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죠.”
박 대표는 부자들을 관리하는 것보다 창구로 종종 찾아오는 소액투자자와 몇 시간씩 상담하는 데서 더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소액투자자의 상담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강남에 있는 어떤 PB는 금융자산 2000만~3000만 원만 갖고 가도 상담을 2시간씩 해주더라’는 소문이 났다. 박 대표의 창구 앞에 소액투자자의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기 시작했다. 금융 지식이 전무한 젊은 고객이나 형편이 어려운 고객들에게 투자의 길을 하나하나 알려줄 때마다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부정적인 피드백이 나왔다. 상급자로부터 “자산가 고객을 더 챙겨야지, 왜 소액투자자와 길게 상담해주느냐”는 쓴소리도 들었다. 이런 일이 누적되자 PB 일을 통해서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증권사 퇴사 후 선로를 살짝 틀어 자산운용사로도 이직해봤지만, 그곳에서도 박 대표가 원하는 바를 찾긴 힘들었다.
이후 박 대표는 금융사 커리어를 버리고 창업의 길을 택하게 된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금융 교육을 하는 강사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현업에 있을 때는 항상 실적 1위의 커리어를 유지했기 때문에 금융 교육업에 도전한다고 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2019년의 일이다.
“이력서 수백 통을 보냈어요. 단 한 군데서도 연락이 안 왔습니다. 당시 7평짜리 사무실에 책상 하나 놓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백화점 문화센터, 온라인 강의 사이트를 포함해 그 어디에서도 기회를 안 주더라고요. 제가 나중에는 답답한 마음에 왜 강의를 안 열어주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투자 강의는 열어줘 봤자 다단계, 보험 세일즈로 연결되는 바람에 민원만 들어온다’는 답변이 돌아왔어요. 금융사에 다닐 때만 해도 몰랐죠. 바깥 세상에서는 투자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사기꾼처럼 바라본다는 사실을요.”
결국 사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까지 갔다. 회사의 이름표를 떼고 맨땅에서 도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깨달은 순간이었다. 다시 금융사에 재취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박 대표는 미국 월스트리트로 마지막 ‘이별 여행’을 떠나게 된다. 금융인으로서 투자의 본고장에 한 번쯤 방문한 뒤 창업의 길을 마무리 짓자는 생각에서였다. 금융사에 취업한다면 예전처럼 다시 부자들을 만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여행을 즐기면서도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 2주간의 여행 기간 동안 박 대표의 삶에 한 가지 변수가 생기게 된다. 단순히 포트폴리오용으로 개설해 뒀던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갑자기 급격하게 늘어났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유튜브로 교육을 한다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어요. 유튜브는 엔터테인먼트의 공간이었지, 교육의 공간은 아니었거든요. 저도 일종의 클라우드로 쓰기 위한 목적으로 유튜브에 금융 교육 영상 몇 개를 만들어 뒀어요. 강연 업체들에 이력서를 보낼 때 강연 영상을 첨부하기 위한 용도였죠. 일반 대중이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채널이었어요.”
미국으로 떠날 때만 해도 30명이었던 구독자 수가 여행 말미에 밤새도록 늘어나더니 300명을 기록했다. 꿈을 포기하려고 떠난 여행에서 수백 명의 구독자를 얻어 돌아온 셈이었다. 박 대표는 “어떤 강연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지만, 300명이라는 사람이 내 콘텐츠를 필요로 한다면 혹시 유튜브로 무언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며 “딱 한 번만 더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박 대표가 아무 의도 없이 올려뒀던 유튜브 초기 콘텐츠는 말 그대로 투자의 기초 강의였다. 투자자가 가져야 할 원칙,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개설 방법과 같은 기본적인 내용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박 대표는 공항에서 곧바로 사무실로 이동해 유튜브 콘텐츠를 찍기 시작했다. 300명까지 늘었던 구독자는 그해 연말 1만 명까지 증가하게 된다. 그러다 국내 주식 시장에서 동학개미운동이라는 거대한 사이클이 시작되면서 채널 성장에 본격적인 드라이브가 걸린다. 이미 찍어 둔 수십 개의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박 대표 본인도 놀랐을 정도로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정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 모든 것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어요. 구독자 25만 명이 될 때까지는 기획부터 편집까지 전부 제가 했습니다. 이게 제 채널의 경쟁력이었다고 생각해요. 영상에 대한 이해도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거죠. 많은 채널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번아웃과 일종의 ‘캐즘’을 겪기 마련인데요. 저는 한 번 창업에 도전했다가 망해봤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벽을 넘어서기가 나름 수월했던 것 같아요. 매출 0원을 기록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훨씬 안 힘들었거든요.”
유튜브 성공 공식보다는 나만의 길로
박 대표가 채널을 성장시킨 또 하나의 비법은 다른 유튜버들이 건네는 수많은 조언들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섬네일에는 어떤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거나, 영상 길이는 몇 분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유튜브 세계의 철칙을 모두 어겼다. 실제로 박 대표의 콘텐츠는 시청자를 끌기 위해 자극적인 문구를 삽입하는 일이 좀처럼 없다. 이 때문에 영상 클릭률은 상대적으로 낮은 데 비해 시청 시간은 매우 긴 편이다. 한 번 클릭하면 끝까지 보는 시청자가 많다는 뜻이다. 충성 구독자가 많다는 뜻도 된다.
“저희 채널은 ‘유교 방송’이라는 놀림도 많이 받는데요. 제 성격상 자극적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걸 못해요. 물론 ‘그런 방향으로 채널을 운영했다면 더 빨리 성장했을까’라는 생각은 항상 했죠. 실제로 자극적인 문구를 시도해보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이거 없으면 가난해집니다’라는 문구를 써서 올려봤는데, 마음이 너무 불편해지더라고요. 자다가 일어나서 다시 순한 문구로 바꿨어요. 그때부터 성격상 안 되는 건 하지 말자고 결정했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해요. 온라인 마케팅의 룰을 따르지 않고 내 방식대로 채널을 운영했기 때문에 80만 명이 넘었다고요.”
이런 박 대표의 성향에는 ‘미디어’보다 ‘금융업’에서 먼저 활동했던 사람으로서의 책임감도 영향을 미쳤다. 구독자 수나 조회수를 위해 무리해서 콘텐츠를 만들지 않았기에 지금도 항상 마음이 편안하다는 게 박 대표가 자부하는 부분이다.
“강연 행사에 가면 수백 명의 청중이 와 있는데요. 다들 저를 웃으면서 바라봐주고, 강연이 끝나면 사인을 받으러 와줍니다. 그 모든 사람을 제가 웃으면서 맞이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몰라요. 만약에 그중에 저로 인해 손해를 본 사람이 섞여 있다고 생각해보면 무섭잖아요. 이게 제가 택한 길이었습니다. 유튜브는 경쟁이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하는데, 제가 찾았던 것은 가장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길이었죠.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박 대표의 자산관리 철칙은 무엇일까. 우선 조급함을 줄이는 것이다. 많은 투자자가 빠르게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특정 주식 종목에서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자 한다. 박 대표는 이런 투자는 결코 좋은 방식일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그는 ‘자산 배분’이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균형 있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고, 묵묵하고 꾸준하게 장기 투자하는 것을 강조한다. 박 대표가 모든 콘텐츠에서 말하는 자산관리의 원칙이 바로 이것이다.
“올해 조선, 방산 종목을 잘 사서 수익을 많이 내면 성공한 투자처럼 보이잖아요. 실제로는 자산 배분으로 매해 5~7%, 운 좋으면 10%, 운 나쁘면 3%의 수익률을 반복하는 것이 복리의 효과가 훨씬 큽니다. 흔히 복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한 달에 50만 원씩 넣었는데 나중에 몇 억 원이 되는 결과가 나오잖아요. 이걸 허황된 계획으로 볼 게 아닙니다. 그런 사례는 실무에서 너무나 흔하게 일어나거든요. 그렇게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기대수익률을 줄이고 손실 가능성을 없애면 됩니다. 작은 수익률이 반복되면 훨씬 큰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거죠.”
최근 박 대표가 내놓은 베스트셀러 <박곰희 연금 부자 수업>도 비슷한 생각에서 집필한 책이다. 이론적으로 검증된 전략을 차용해서 자산을 차근차근 불려 가는 방법을 모든 사람들이 곧바로 실행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바탕이 됐다. 2020년 말 선보인 <박곰희 투자법>도 같은 결이다. 코스피 3000을 넘어서며 주식 시장이 가장 뜨거웠던 시기, 리스크를 잠재울 수 있는 자산 배분 투자 포트폴리오를 강조한 책이다. 출간 당시에는 거의 팔리지 않았지만, 2022년 시장이 폭락하면서 오히려 책이 역주행했다. 지금도 경제서 베스트셀러로 자리하고 있다.
“제가 강조하는 자산 배분이라는 영역은 마켓 타이밍과 종목 분석을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포한 전략이거든요. 미국 등 전 세계 기금 운용사들은 전부 자산 배분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목돈을 잃지 않으면서도 물가를 이길 수 있는 전략이죠. 반면 섹터를 맞추거나 금리 전망을 통해 수익률을 추구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대수익률을 30% 이상 가지고 간다는 뜻이거든요. 이 경우 내가 잃게 되는 리스크도 -50%까지는 커질 수 있어요. 역사상 단 한 번도 깨지지 않은 수익률이 피터 린치가 기록한 연평균 29%입니다. 그런데 개인투자자가 수익률 30%를 목표로 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일반인이 지향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닌 거죠.”
박 대표가 조언하는 방향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높은 수익률이 아니다. 성공할 만한 투자 종목을 잘 맞춰서 스타가 되고 싶은 생각도 그에게는 없다. 박 대표가 바라는 투자의 정답은 한마디로 ‘범용성’이다. 그는 “투자에 평생 관심을 안 가져본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범용성을 지향한다”며 “우리나라에 있는 수천만 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했을 때 자산 배분이 가장 성공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가장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의 최종 꿈은 무엇일까. 그는 “금융 교육이라는 장르를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책도 집필하고, 오프라인 강연과 금융 교육 플랫폼 ‘곰희스쿨’ 운영까지 병행하는 등 최대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박 대표는 “지구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저라고 생각할 만큼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지금 하는 모든 일이 행복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금융사에서 누구보다 세일즈를 잘했던 직원이었지만, 지금은 세일즈를 하지 않고도 금융을 알리는 일을 할 수 있기에 행복하다는 게 박 대표의 진심이다.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바쁜 요즘이지만, 이 시기를 지나고 나면 금융 약자들을 위한 교육 기부의 비중을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갖고 있다.
“지금도 가끔 무료 강의를 나가곤 합니다. 몸이 불편한 분들이나 보육원에 있는 친구들, 새터민 등 금융 약자들은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공교육에는 금융 교육이 없으니까요. 지금 더 열심히 해서 여유가 생기면 금융 약자들에게 교육하는 일을 공개적으로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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