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도제한 시스템에 대대적인 개편이 예고되면서 재건축 프로젝트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서울시가 용적률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용적이양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부동산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부동산 이슈]
최근 국내 고도제한 시스템에 대대적인 개편이 예고돼 있어 부동산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시가 용적률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용적이양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높이 규제로 주어진 용적률을 다 사용하지 못하는 사업장은 재산상 피해를 보전받고, 거래 상대방은 고밀 개발을 추진할 수 있다. 공항 인근 지역의 고도제한 체계를 규정하는 국제 기준이 바뀌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 서남권 재건축 프로젝트들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풍납동·도심 높이 규제 ‘타격’
서울 송파구 풍납동 일대는 뛰어난 입지 경쟁력을 갖췄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속한 데다 한강이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납토성 주변 문화재 보호 규제 때문에 개발은 매우 더딘 편이다. ‘앙각(仰角: 올려다본 각도)’과 ‘굴착’ 규제 등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앙각 규제란 문화유산 경계에서 27도 위로 선을 그었을 때 해당 범위에 건물이 걸리지 않도록 높이 제한을 두는 것이다. 굴착이란 특정 깊이 이상으로 땅을 팔 수 없도록 하는 규제다.
그러나 보상과 재정비 모두 속도는 매우 느리다. 재건축 단지 중에선 1985년 준공된 풍납미성이 ‘5수’ 끝에 올해 국가유산청 허가를 받으며 정비사업의 첫 발을 뗐다. 주민 반발 등 문제에 부딪혀 2권역과 3권역의 보상도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숭례문과 흥인지문,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종묘, 경희궁, 운현궁 등 4대문 안 주요 국가지정유산 인근에도 앙각 규제가 적용된다. 앙각 규제로 재정비가 지연되면서, 일대 주거 환경이 점점 악화하고 있다. 풍납동 ‘씨티극동’처럼 세모 모양의 기형적 건축물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문화유산 주변 규제를 무한정 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요 문화유산 바로 옆에 고층 아파트를 짓는 게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충족하기 위해 서울시가 고안해낸 수단이 용적이양제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선 이미 보편화돼 있는 개발권양도제(TDR)를 국내에 들여오는 것이다. 지난 2월 서울시가 개최한 한 콘퍼런스에서 ‘서울형 용역이양제’의 밑그림이 공개됐다.
“인접 구역 간 거래 우선 허용”
먼저 용적률 양도와 양수지역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할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미래 도시 가치 유지를 위해 보전이 필요하면서, 규제 완화가 불가능한 곳이 양도지역이 될 수 있다. 양수지역엔 도심 재개발 활력 증진을 위해 전략적 육성이 필요한 지역 등 조건이 붙을 전망이다. 다만 강남의 개발 사업장이 종로에서 용적률을 사오는 행위는 당분간 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양도지역과 양수지역이 동일한 도시관리계획구역 내에 있을 때를 1순위로, 동일 자치구 권역 내에 있을 때를 2순위로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일은 용적률 거래 ‘활발’
해외에선 용적률 거래가 이미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선 ‘공중권’ 개념을 바탕으로 TDR을 운영 중이다. 예컨대 샌프란시스코는 다운타운 역세권보존지구 내 미사용 TDR을 이전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샌프란시스코 박물관과 역사협회 등이 소유한 구 조폐국은 미사용 용적률을 주변 호텔 등에 넘겨 건축물 내진 및 복구 비용을 마련했다. 뉴욕 허드슨야드 일대는 랜드마크 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개발권 양도와 현금 기부 등을 통해 추가 용적률 상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특례용적률 적용지구 제도가 있다. 도쿄역의 미사용 용적률 700%가 이 제도를 통해 6개 빌딩으로 이전됐다. 도쿄역은 이를 통해 보존·복원 비용을 충당했고, 신마루노우치 빌딩 등은 개발권 매매를 통해 용적률을 높였다. 공공은 구역지정과 승인 등 최소한의 역할만 하고, 민간의 참여를 통해 용적률 거래 활성화를 유도한 게 특징이다. 그러나 국내 법체계상 용적이양제가 실현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국내에서 용적이양제와 유사한 제도가 운영된 사례가 있다. 도시정비법 등에 따른 결합개발이 대표적이다. 2개 이상의 정비구역을 1개 사업구역으로 보고 개발밀도를 조정하는 것이다. 동대문구 ‘이문아이파크자이’가 대표 사례다. 이 단지는 역세권 고밀개발구역에 속하는 이문 3-1구역과 구릉지 저밀관리구역에 포함된 이문 3-2구역으로 구분된다. 결합개발을 통해 3-1구역은 용적률을 높였고, 3-2구역은 일부 줄어들었다. 국내에서 이처럼 결합개발이 이뤄진 사례는 총 3개가 있다.
서울시는 조례 개정을 통해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지난 2월 콘퍼런스에서 “용적이양제는 지방자치장에게 위임된 용적률-높이 결정권한을 활용한 도시관리 수단”이라며 “용적률 상향을 위한 공공기여 또는 용적률 인센티브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용적률 거래 도입에 뒤따라야 할 갖가지 세부 제도 정비도 많이 있다. 가격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세금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문제다. 결국 정부와 협의를 통해 국토계획법 등을 개정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ICAO 기준 개정도 ‘주목’
서울 강서구도 용적이양제 도입 시 호재 지역으로 꼽힌다. 1958년 김포국제공항이 문을 열 때부터 강서구 전체 면적의 97.3%가 고도제한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업계에선 용적률 거래제가 본격 시행되더라도, 문화유산 주변 지역이 우선 순위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공항 주변 지역은 후순위로 밀릴 것이란 지적이다. 하지만 강서구는 용적이양제 외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고도제한 기준 변경이란 호재도 안고 있다. 일률적으로 적용되던 장애물제한표면(OLS)이 장애물금지표면(OFS)과 장애물평가표면(OES)으로 나뉘는 게 핵심이다.
매우 엄격한 고도제한이 가해지는 장애물금지표면은 현재 고도제한구역(장애물제한표면)보다 줄어든다. 반면 전체 장애물평가표면은 현재의 장애물제한표면보다 늘어나게 된다. 사실상 전역이 높이 규제에 묶여 있던 강서구는 이번 개정을 반기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이 장애물제한표면과 장애물금지표면에 속하게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이원화’ 조치가 실행되면, 강서구 내에서 기존보다 고도제한이 완화되는 구역들이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선 가양동과 염창동 등이 수혜 지역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ICAO 개정안이 발효되는 시점은 2030년 말이다. 2030년 말 전에 사업시행인가를 마치면 목동 재건축 프로젝트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목동 주민들을 방문해 ‘재건축 속도전’을 강조하며, 주민들의 불안을 달랬다. 무엇보다 ICAO 장애물평가표면 대상지를 정하는 과정에서 각 회원국들한테 자율성이 부여된다. 각 국가는 ‘항공학적 검토’에 따라 대상지를 조정하거나 고도제한을 일부 완화할 수 있다.
만약 국토교통부가 목동에 49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서도 비행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목동엔 이미 69층 짜리 건물(하이페리온)도 있다. 국토부가 목동 전역을 규제지역으로 새로 묶는 결정을 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ICAO의 권고 기준을 배척하면 공항 평가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향후 항공학적 검토를 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고심이 클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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