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뷰] 벼랑 끝에 선 한국 산업, 성공 ‘마약’에서 깨어나라
(일러스트 김호식)

[김도훈 전 산업연구원장] 사람이나 기업이나 산업이나 성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은 상식이다. 이런 노력이 인간의 발전, 기업과 산업 성장의 열쇠이면서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여 성공하고 나면 그 성공을 그대로 유지해 나가기 위해 이전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도 그 자리에 서 본 사람들은 잘 안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성공을 억지로 유지하기 위해 무리한 수단을 사용할 때도 많다.

1988년 서울올림픽 100m 달리기 결선 때 전광석화 같이 달려 전 세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금지된 근육강화제를 사용한 것이 적발돼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벤 존슨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이미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 성공의 단맛을 맛봤기 때문에 그 성공을 유지하기 위한 유혹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홈런왕에 올랐던 배리 본즈도 홈런 신기록을 달성하려는 유혹에 빠져 근육강화제를 사용해 전설의 자리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기업이나 산업도 마찬가지다. 지금 강제적인 구조조정의 압력 속에 놓여 있는 조선 산업과 해운 산업이 바로 성공이라는 마약에 취해 추락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다. 기실 한국의 조선 산업은 세계 1위(수주량·건조량 어느 기준으로나)를 구가하며 성공 가도를 달려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호황에 길들여진 조선업·해운업

그렇게 성공 가도를 달리던 한국의 조선 산업은 그 성공의 단맛을 연장하기 위해 (특히 ‘빅3’라고 불리는 기업들이) 발주처가 제시하는 조건이 무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분별한 수주전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단기적인 실적 달성에 내몰린 경영진이 점점 더 발주량이 줄어들 것을 느끼면서도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기는커녕 줄어드는 발주량을 독차지하려고 이전투구를 벌여 왔다는 점이다.

근로자들도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들도 미래의 일감이 줄어들 것을 알면서도 단기적으로 얻어진 수익을 미래에 투자하기보다 당장 호주머니를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운 산업도 마찬가지다. 한때 늘어나기만 하던 한국의 무역량 덕에 누렸던 호황의 맛에 길들여져 무리하게 용선을 늘려 왔고 무역량이 정체하는 가운데서도 사업을 선제적으로 구조조정하는 지혜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던 오너들의 자세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어디 이런 모습을 보이는 산업이 조선·해운에만 한정될까. 그 산업에 필수적인 원료 하나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들로 우뚝 섰다고 자랑해 왔던 철강·석유화학 등도 지금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스스로 해 나가지 않으면 어려움에 처할 것은 불문가지다.

세계적인 수요가 침체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일본·한국이 가진 과잉 생산 시설은 가까운 미래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한국이 자랑하는 정보기술(IT) 분야의 산업들도 성공의 단맛에만 취해 있을 겨를이 없다.

한국이 걸어왔던 길을 더 빠른 속도로 중국의 경쟁자들이 추격해 오고 있고 한국보다 앞선 선진국 기업들은 더욱 잰걸음으로 새로운 산업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가운데 지금 성공을 얻은 한국의 산업들과 기업들의 자리가 언제 위태롭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골프에서든 야구에서든 지난 시즌에 대성공을 거둔 선수들일수록 겨울 시즌 동안 자신의 기술을 가다듬고 새로운 필살기를 배우기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겨울 훈련량에 따라 그다음 시즌의 성적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들은 이미 잘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이라는 마약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산업이나 기업들도 지금의 성공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이른바 ‘대박’이라고 하는 큰 성공을 거두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성공의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자신을 갈고닦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마침 정부도 이러한 산업구조 재편의 필요성을 느끼고 산업과 기업들의 산업 구조조정 노력을 지원할 목적의 제도적 장치를 착착 마련해 가고 있다. 산업의 모든 구성원들, 즉 오너·경영인·근로자들도 지금의 성공이 얼마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모두가 성공의 마약에서 깨어날 때다.
[리더스뷰] 벼랑 끝에 선 한국 산업, 성공 ‘마약’에서 깨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