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가 만사 제치고 챙길 일은 ‘핵심 역량과 혁신’ (사진) ‘백 투 더 브릭’ 전략으로 성장을 일궈낸 레고.
[강성호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곱은 빨리 달려야 하고.”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의 말이다. 이는 동화 속 주인공 앨리스의 질문에 붉은 여왕이 답을 한 것이다. 앨리스는 붉은 여왕의 손에 이끌려 한참을 달린다. 그런데도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러자 앨리스는 숨을 헐떡이며 붉은 여왕에게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왜 계속 이 나무 아래인 거죠? 내가 살던 곳에서는 이처럼 오랫동안 빠르게 달리면 다른 곳에 도착하는데 말이에요.”
나는 가만히 있고 싶어도 세상이 움직인다. 그저 지금까지 있던 제자리에만 있으려고 해도 세상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그 속도만큼은 움직여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뒤처져 버리고 만다.
이러한 동화 속의 생각을 경영 이론으로 발전시킨 것이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윌리엄 바넷 교수의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다. 그는 “블루 오션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경쟁은 기피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핵심 동력”이라고 단언한다.
생물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환경의 변화와 이에 따르는 경쟁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바넷 교수가 주창한 붉은 여왕 효과의 핵심적인 메시지다.
경쟁이 일어나면 기업들은 성과를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경쟁에서 밀린 기업도 만회할 방법을 찾고 배운다. 그러다 보면 경쟁력이 쌓이고 이는 다시 경쟁 기업에 자극을 준다. 이런 과정이 연속되면서 기업 모두가 성장하게 된다.
그러니 기업의 성장을 바라는 리더라면 경쟁을 회피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환경이 변화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위기를 새로운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바넷 교수는 강조한다.
경영 환경의 변화에 따른 위기를 극복한 형태와 사례는 무수히 존재한다. 이 중 대표적인 두 가지 방식을 소개한다.
◆핵심 역량에 집중한 레고와 후지필름
첫째는 본연의 핵심 사업,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것이다. 장난감 업체인 레고는 한때 부도 위기에 직면한다. 레고의 주력 시장이었던 유럽과 미국에서 베이비붐이 끝나고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어린이 장난감 시장이 위축됐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서면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등 전자 게임기가 등장하면서 아날로그 장난감인 레고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에 따라 레고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대규모의 적자를 기록한다.
레고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의류·시계·출판·게임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테마파크인 ‘레고랜드’ 사업을 확대했다. 그러나 일시적인 반짝 효과만 거뒀을 뿐이다. 그러자 레고는 가족 경영을 포기하고 2004년에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인 외르겐 비 크누드스토르포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했다.
이후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고 매년 15% 정도의 성장을 통해 2014년 매출 및 이익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장난감 회사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극적 회생의 결정적 요인은 핵심 사업에 집중한 것이었다. 수익이 저조한 사업 및 본업과 무관한 사업들은 매각 및 운영 방식을 변경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리고 전사의 힘을 ‘레고다움’을 회복하는 데 기울였다. ‘백 투 더 브릭(Back to the brick)’은 레고의 전략적 방향 전환을 함축하는 모토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레고의 ‘놀이 시스템’ 철학에 기반 한 신제품을 출시했다. 특히 레고의 추억을 간직한 성인을 대상으로 ‘키덜트(kidult)’ 제품을 출시했다. 고전 건축물들을 블록으로 재현할 수 있는 성인용 아키텍처 시리즈가 대표적인 상품이다.
이는 수십만원에서 100만원에 이르는 고가로 책정돼 매출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블록에 이야기를 입히는 전략을 통해 영화나 방송으로 히트한 스타워즈, 해리포터, 배트맨, 인디애나 존스, 반지의 제왕, 스폰지밥 등을 레고로 출시했다. 그리고 레고의 콘텐츠화도 시도해 ‘레고 무비’ 등 영화도 지속 출시하고 있다.
후지필름의 위기 극복 방식도 핵심 역량에 집중함으로써 가능했다. ‘필름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면서 코닥과 아그파 등 필름 업체들이 사라지는 가운데 후지필름은 위기에서 탈출했을 뿐만 아니라 한 단계 더 성장했다.
필름 산업이 본격적인 위기를 맞은 2000년에도 후지필름의 필름 부문 수익 비율은 70%를 넘었다. 하지만 2003년 CEO로 승진한 고모리 시게다카는 과감하게 ‘탈(脫)필름’을 선언했다. 그는 일차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후지필름의 필름 분야를 과감히 감축했다.
다음으로 ‘본업과 무관한 분야는 절대 진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핵심 역량인 필름 기술과 부품을 다른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제품들이 론칭됐다. 대표적인 것이 액정표시장치(LCD) TV 편광판에 들어가는 ‘TAC 필름’이다. 이는 현재 전 세계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
2007년 출시된 화장품 브랜드 ‘아스타리프트’도 필름 사업을 통해 확보한 핵심 역량을 활용한 아이템이다. 필름의 원자재인 콜라겐 활용 기술과 필름의 산화를 방지하는 기술 등이 응용돼 만들어진 제품이 아스타리프트다.
이뿐만 아니라 필름 개발 과정에서 20만 개 이상의 화학 성분을 다뤄본 경험을 토대로 에볼라 치료제 ‘아비간’을 선보이는 등 혁신적인 의약품을 개발해 나갔다. 후지필름은 화장품과 의약품 분야에서만 약 4조원 이상의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둘째는 과감한 발상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 서부 지역의 대표 은행인 움프쿠아는 ‘스타벅스 같은 은행’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움프쿠아은행의 지점에는 고급스러운 가죽 소파와 테이블, 대형 벽걸이 TV가 갖춰져 있다. 그리고 부드러운 조명과 가벼운 펑크 음악이 흐른다.
인테리어와 분위기는 호텔 로비나 공항 라운지와 비슷하다. 소파에 둘러앉은 10여 명의 동네 주민들이 커피를 마시며 한담을 즐긴다. 초콜릿과 음료수는 얼마든지 공짜로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 은행은 1990년대 후반만 해도 파산 일보 직전까지 갔던 은행이었다. (사진) ‘스타벅스’ 같은 은행을 표방하는 움프쿠아은행.
◆과감한 혁신으로 성장한 움프쿠아와 스와치
움프쿠아은행은 1950년대 오리건 주의 벌목 회사들을 주 고객으로 설립된 소규모 지역 은행이다. 벌목 사업이 번창하면서 이 은행은 주변의 작은 은행들을 잇달아 인수해 지역 대표 은행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벌목 사업이 급속히 쇠퇴하면서 은행은 존폐 위기를 맞았다. 다른 대형 은행에 인수되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로 여겨졌다. 하지만 움프쿠아는 은행의 개념을 변화시키는 과감한 도전을 통해 극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움프쿠아는 은행의 콘셉트를 금융회사가 아니라 스타벅스처럼 고객들이 언제든지 편하게 휴식과 만남을 위해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금융은 거기에 따라가는 부수적인 서비스로 인식했다.
그러면서 ‘은행도 커피 전문점이 될 수 있다’는 광고를 시리즈로 내보냈고 커피·음료수·과자 등을 공짜로 제공했다. 또한 고객들이 책을 보거나 지인들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야간에는 은행 지점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음악 공연도 했다. 지역사회의 문화센터로 거듭난 것이다.
이를 통해 움프쿠아는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냈을 고객을 은행으로 유도했다. 고객들의 인식이 바뀌고 은행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자 자연스럽게 금융거래가 늘고 새로운 고객의 창출로 연결됐다.
이러한 시도 이후 불과 3년 만에 예금액은 2배 이상, 금융 상품 판매액은 3배로 늘어났다. 1995년부터 최근까지 움프쿠아은행은 연평균 29%씩 고속 성장했고 지점 수도 10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스와치도 과감한 발상전환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1970년대까지 스위스 시계는 세계 시장점유율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그 위치가 탄탄했다.
하지만 1980년대 쿼츠 시계를 앞세운 일본의 세이코와 카시오, 홍콩 업체 등이 부상하면서 고사 직전에 놓이게 된다. 쿼츠 시계는 복잡한 부품이 필요 없어 매우 저렴했고 정확도도 기계식 시계보다 높았다. 기계식을 고집한 스위스 시계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경영은 항상 위기의 연속이다
스와치그룹 탄생의 주역인 니컬러스 하이에크는 “이미 세계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저가 시계를 장악하지 못하면 스위스 시계 산업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와치그룹은 우선 저가 시장 공략에 집중했다.
저가 시계 시장을 접수한 아시아 업체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단순 저가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가격 외에 다른 차별점이 필요했다. 이때 스와치가 주목한 것은 패션이다. 사람들이 옷을 여러 벌 사는 것처럼 시계도 옷과 색상, 분위기에 맞춰 여러 개 구입할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쿼츠를 채택한 스와치 브랜드 시계는 플라스틱 시곗줄에 알록달록한 색상을 넣은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백남준을 비롯해 키스 해링, 키키 피카소, 알프레드 호프쿤스트 등 세계적인 예술가와의 공동 작업으로 소비자의 수집 욕구를 자극했다. 한 번 선보인 제품은 아무리 인기를 많이 끌더라도 재출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희소성을 높였다.
제조비용도 대폭 줄였다. 100여 개인 부품을 50여 개로 줄였다. 그전까지 케이스 따로, 부품 따로 조립해 나중에 둘을 끼워 맞추던 것을 케이스 안에 곧바로 부품을 조립해 넣는 단일 제조 공정으로 개선했다. 일본 시계는 정확했지만 패션과 스타일에서 밀렸고 스와치는 저가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적인 혁신은 시계 강국으로서의 스위스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줬다. 스와치그룹은 지속적으로 저가·중가·고가를 아우르는 브랜드를 확충했다. 1992년 블랑팡, 1999년 브레게, 2000년 글라슈테 오리지널, 2013년 해리 윈스턴 등을 사들이며 보유 브랜드를 늘렸다.
현재 스와치그룹은 수천만원대의 브레게와 블랑팡·자케드로뿐만 아니라 수백만원대의 오메가, 200만~300만원대의 론진과 라도, 그 이하의 티소와 해밀턴·미도 그리고 저가의 스와치까지 소비자의 모든 수요를 충족하는 브랜드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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