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의 핵심 기술…‘정보의 분산’ 통해 안전성 높이고 거래 속도·비용 절감 기대 [한경비즈니스=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몇 년 전 처음으로 알려진 비트코인은 암호화폐의 본격적인 등장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각국 중앙은행의 감독 없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자유롭고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다는 비트코인의 아이디어는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미래에는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금융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글로벌 경제 전반에 걸쳐 비트코인을 배우려는 열기가 확산됐다.
비트코인을 비롯해 이더리움 등 다양한 암호화폐가 등장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암호화폐를거래하기 위한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이 각광받고 있다.
작년 세계경제포럼(WEF)은 블록체인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로 선정하고 2025년까지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러 시장조사 기관들 역시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잠재력이 높은 혁신적 미래 기술로 부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보 보안성 강화한 블록체인
블록체인은 온라인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구성원 간 거래 정보를 암호화해 모든 구성원에게 분산하는 기술을 말한다. 각 구성원들의 거래 기록은 금융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정보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금융 활동의 적정성 및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거래 정보가 유출된다면 악의를 가진 사용자가 이를 활용해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중앙 서버가 모든 거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오늘날 금융 시스템과 달리 블록체인은 정보가 복사돼 각 구성원들이 소유하게 된다. 거래 정보는 블록이라는 단위로 저장되는데 새로운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블록이 생성돼 기존 블록과 연결된다는 의미에서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즉 각 구성원들은 매 순간마다 업데이트되는 블록체인을 동일하게 소유할 수 있고 모든 구성원들이 동의해야 신규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블록체인의 원리는 모든 정보가 한 곳에 모여 있으면 공격받기 쉽다는 점을 역으로 활용해 정보의 보안성을 강화한 것이다. 즉 해커가 블록체인 시스템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들의 정보를 정확한 시간에 동시에 공격해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동일한 정보가 분산 저장돼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임의로 거래 정보를 조작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블록체인의 도입으로 보안성 강화는 물론 거래 속도의 증가 및 비용 절감도 기대된다. 블록체인은 거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정보 처리 및 인증 등을 지원하기 위한 중앙 서버가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보다 빠르고 저렴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또한 모든 구성원들이 실시간으로 최신 거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정보의 투명성 및 무결성을 강화할 수 있는 것도 블록체인의 주요 장점으로 손꼽힌다.
◆에스토니아, 시민권에 블록체인 도입
초기에는 비트코인을 구성하는 기술의 하나로만 알려졌지만 현재는 블록체인 자체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블록체인이 가상 화폐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능성이 알려지자 여러 분야의 글로벌 대기업은 물론 스타트업도 앞다퉈 블록체인의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블록체인이 주목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정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과 국가의 보안 시스템이 사이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악성 바이러스 및 랜섬웨어 등 신종 사이버 공격 기술이 등장하면서 민감한 정보들이 무방비로 유출되거나 훼손되고 있다.
게다가 사이버 공격 기술은 방어 기술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정보의 안전한 보관이 정보기술(IT)업계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블록체인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금융업이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의 안전한 거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블록체인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금융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마일리지나 포인트 등 디지털 화폐에도 블록체인을 적용해 안전성을 강화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금융 결제 및 송금에서도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다. 현재는 중개 시스템을 거치는 네트워크를 사용해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결제 처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수수료 부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별도의 시스템 없이도 투명하고 안전한 거래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거래 시간 절감은 물론 수수료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공 분야에서도 블록체인의 시범적 도입을 추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2015년부터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자 시민권 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덴마크나 스페인에서는 결과 조작 방지 및 투표 과정 전체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반의 투표가 실시되기도 했다. 또한 블록체인을 적용해 위·변조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전자 서명 기술 연구도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유수의 글로벌 IT 기업 역시 블록체인을 활용한 다양한 실험에 나서고 있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 데이터의 양이 급증하고 활용 범위도 늘면서 정보의 안전성이 한층 강조되기 때문이다.
특히 일상의 다양한 제품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고도화되면서 업종을 막론하고 보안성의 강화가 기업들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자사의 제품 및 서비스의 안전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IBM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IoT 기기의 유지 관리, 업데이트 등 각종 기능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IoT 플랫폼 ‘어뎁트(ADEPT)’를 개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클라우드 플랫폼 애저(Azure)에 블록체인을 적용해 사이버 공격에 강한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개발하는 한편 다양한 블록체인 기반의 애플리케이션을 애저 플랫폼에서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도 선보였다.
자동차업계도 블록체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도요타는 블록체인을 미래 자동차에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대학 및 스타트업과 협력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와 전기자동차 등 미래 자동차는 현재보다 풍부한 데이터를 산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데이터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새로운 데이터 기반의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 블록체인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 역시 자동차 공유 기업 리프트(Lyft)와 협력해 차량의 등록 및 이전 등 다양한 자동차 금융 계약에 블록체인을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기밀 정보’ 노출될 가능성도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은 산업 전반에 걸쳐 빠르게 늘고 있다. 블록체인이 인기를 끌면서 기업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 블록체인을 연구 및 활용하려는 노력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블록체인이 핀테크·IoT 등 여러 기술 융·복합 분야를 중심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블록체인의 확산을 위한 이종 기업 간 협력도 더욱 심도 있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IT업계 역시 블록체인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하드웨어·이동통신 등 주력 분야와 달리 갈수록 중요성을 더해 가는 정보 보안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블록체인 기술 역량을 확보하는 것은 정보 보안 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주요 과제가 될 수 있다. 또한 블록체인을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를 조기에 발굴하기 위한 노력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물론 블록체인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완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공개와 분산을 근간으로 하는 블록체인의 특성상 구성원들에게 거의 모든 정보가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 중요한 기밀 정보까지 공개될 위험이 크다.
게다가 악의를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래에 참여해 시스템의 운영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자율적 참여로 이뤄지기 때문에 시스템 운영에 관한 전반적 관리와 책임을 담당하는 주체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도 많은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기술적 발전은 물론 이를 위한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직까지는 블록체인 자체의 혁신과 잠재력이 주목받고 있지만 향후 블록체인의 도입이 확산될수록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 및 규제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그러므로 심도 있는 연구 및 공론화를 통해 블록체인의 원활한 사용 및 시장 확산을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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