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은 라면·팔도는 HMR 시장 진출…기존 영역 파괴하며 영토 확장

[비즈니스 포커스]
김홍국 하림 회장이 이번에 출시한 ‘더 미식 장인라면’을 직접 소개하고 있다.  사진=하림 제공
김홍국 하림 회장이 이번에 출시한 ‘더 미식 장인라면’을 직접 소개하고 있다. 사진=하림 제공
닭고기의 대명사 격인 하림은 10월 14일 ‘더(The) 미식 장인라면’을 출시하고 농심과 오뚜기 등이 장악하고 있는 라면 시장에 당찬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번에 하림이 선보인 라면은 일반적인 라면과 차별화한 것이 특징이다. 라면 스프에 흔히 들어가는 MSG(L-글루타민산나트륨)를 과감히 뺐다. 그 대신 사골과 쇠고기, 각종 채소 등 자연 재료를 20시간 끓여 만든 스프로 라면 특유의 감칠맛을 냈다.

스프의 형태도 분말이 아닌 국물을 그대로 농축한 액상 형태로 제작했다. 분말 스프를 만들기 위해 육수를 건조하는 과정에서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격은 2200원.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면보다 2~3배 정도 비싸다.

하림 관계자는 “육수부터 건더기 스프까지 최상급의 재료들을 사용해 신경 써 만든 라면인 만큼 다소 비싼 가격을 책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오로지 제품의 질과 맛으로 승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림은 더 미식라면의 광고 모델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배우 이정재 씨를 내세우는 등 대대적인 마테팅을 전개하며 시장 안착을 노리고 있다.

최근 식품업계가 신사업 확장에 여념이 없다. ‘선택과 집중’, ‘한 우물 파기’ 등 과거의 성공 방정식은 이제 옛말이 됐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한 분야만 잘해서는 이제 더 이상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며 최근 관련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외연 확장에 열을 올리는 배경에 대해 분석했다. 하림 역시 그중 하나다. 닭고기로 대표되는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종합 식품 기업’으로의 도약을 새 목표로 정하고 다양한 제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치열해지는 경쟁이 신사업 진출 배경하림은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18년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다. 하림은 당시 본사가 있는 전북 익산에 라면과 가정 간편식(HMR) 등의 제품들을 생산할 수 있는 3개의 식품 공장 착공에 들어가며 종합 식품 기업으로의 변신을 위한 본격적인 수순을 밟았다.

이후 약 3년의 시간이 흐른 올해 초 마침내 3개의 공장을 완공하면서 하나둘 결과물을 내놓기 시작했다. ‘순수한 밥’이라는 이름의 즉석밥을 비롯해 국·탕·찌개 등 HMR 제품을 출시하더니 최근에는 라면까지 내놓았다. 신제품 출시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림 관계자는 “라면이 끝이 아니다”며 “계속해 시장에 다양한 HMR 제품들을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 라면 시장의 강자들 또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라면이라는 한 우물 파기에만 집중해 온 농심이 대표적이다. 농심은 대체육과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본격적인 육성에 나섰다.

식품업계가 신사업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첫째는 해를 거듭할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이다.

식품 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경기 흐름을 타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고 나쁨에 관계 없이 소비자들은 끊임없이 식품을 소비한다. 이런 특징을 갖고 있다 보니 대기업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지 않은 기업들도 시장에 뛰어들며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문제는 한정된 시장이다.

“출산율 등의 감소로 인구 증가율은 정체됐는데 기업 간 경쟁이 더 심해지다 보니 결국 계속 성장을 이어 가기 위해선 새로운 사업에 눈을 돌려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제품을 출시할 수밖에 없다”고 한 식품 대기업 관계자는 말했다.
CJ제일제당·대상은 배양육 점찍어둘째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 소비자의 성향이다. 한 제품을 진득하게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계속해 새로운 것을 찾는다. 이런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림의 더 미식 라면처럼 기존에 없던 차별화된 제품으로 강자들이 즐비한 시장에서도 승부수를 띄우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라면과 음료를 주력 사업으로 하는 팔도도 이와 비슷하다. 팔도는 최근 ‘틈새’ 브랜드를 앞세워 강자들이 즐비한 HMR 시장 확대에 잰걸음 행보를 펼치고 있다.

강렬한 매운맛을 특징으로 하는 ‘틈새치즈떡볶이’에 이어 ‘틈새맛 김치’ 등 기존 제품들보다 훨씬 더 매운맛 제품을 판매하며 브랜드 이름처럼 HMR 시장의 틈새를 공략 중이다.

팔도 관계자는 “최근 이색 HMR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며 제품 출시 배경을 설명했다.

동원그룹은 9월 계열사인 동원홈푸드에 ‘축육부문’을 신설하고 축산업 사업을 본격화했다. 사업 다각화를 통해 실적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동원홈푸드 축육부문은 기존 동원홈푸드의 금천사업부와 최근 동원그룹이 인수한 축산 기업 세중이 통합돼 구성됐다.
‘한 우물만 파면 망한다’…식품업계의 이유 있는 사업 다각화 경쟁
동원홈푸드는 그동안 금천사업부를 통해 정육점·식당·도매업체 등 B2B를 대상으로만 축산물을 판매해 왔다. 축육부문 신설을 계기로 이를 넘어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판매 영역을 넓힌다.

이를 위해 최근 정육점과 일반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미트큐 딜리버리’라는 애플리케이션을 론칭하기도 했다. 동원그룹은 참치로 대표되는 수산물에 이어 축산물 부문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종합 단백질 식품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른바 ‘미지의 영역’ 도전에 나선 식품 기업들도 있다. 일찌감치 사업 다각화에 성공한 기업들이 최근 이런 행보를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비록 당장엔 수익이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미래의 유망 분야로 꼽히는 식품 산업을 선점해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까지 넘보겠다는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대체육을 넘어 배양육 개발에 글로벌 식품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배양육은 동물 세포를 배양해 세포 공학 기술로 생산하는 인공 고기를 뜻한다.

도축 과정 없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만큼 친환경 육류라고 볼 수 있다.콩과 같은 식물성 단백질을 조합해 만든 대체육보다 난도가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한국 기업들도 관련 제품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 배양육은 아직 상업적 대량 생산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상은 최근 스페이스에프와 엑셀세라퓨틱스 등 배양육 선도 기업들과 잇달아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대상 관계자는 “배양육을 실제 제품화하려면 대략 5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면서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관련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말했다.

기술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 대상은 배양육 대량 생산을 위한 배양 설비를 도입하고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한국보다 파이가 큰 해외 시장을 위주로 제품을 선보이며 실적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에이티커니는 2030년 글로벌 육류 소비량의 10% 정도를 배양육이 대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40조원에 이르는 규모다. 2040년에는 육류 소비량의 35%를 배양육이 대체할 정도로 시장 전망이 밝다.

CJ제일제당 역시 배양육 시장의 진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알레프 팜’, ‘시옥 미트’ 등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들에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