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 대표 “일하는 문화 개선해야 인재 이탈 막을 수 있어”

[인터뷰]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 대표가 한경비즈니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서범세 기자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 대표가 한경비즈니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서범세 기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2·3항)’이 시행된 지 3년이 됐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면서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사건은 2019년 2130건에서 2020년 5823건, 2021년 7337건으로 늘었다. 가해자뿐만 아니라 이를 묵인·방조한 회사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괴롭힘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방치한 사용자는 가해자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법원의 해석이다. 지난 7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에게 부당한 전보 조치를 내린 사업주에 대해 대법원이 처음으로 유죄를 확정하기도 했다.

직장인은 물론 경영자에게도 중요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이 법의 산파 역할을 했던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 대표에게 현주소를 물어봤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동안 한국은 시민 사회로 가는 뚜렷한 계기가 없었습니다. 부당한 일이 있어도 참고 넘어가거나 목소리를 내면 불이익을 받았죠. 그런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으로 사람들이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했어요. 말단 직원부터 경영진까지 구성원 모두 말이나 행동을 ‘막’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조직 내 ‘갑질’이 무엇인지 인지하게 된 겁니다.

또 취업 규칙을 활용해 법의 실효성을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10인 이상 사업장은 취업 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발생 이후 조치 사항을 반영해야 합니다. 반영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하죠.”
법 시행 후 신고 횟수만 줄고 강도는 세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법 시행 후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증가하다 보니 물리적·신체적 괴롭힘은 줄어들고 과도한 업무 부여나 마감 시한 임박 등 주관적 기준에 따라 판단이 모호한 괴롭힘 영역에 대한 분쟁 사례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짚고 넘어갈 점은 근로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괴로움’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모두 괴롭힘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직장에서 단순히 상사가 일을 많이 시킨다고 해서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닙니다. 이 법은 일하는 문화를 개선하자는 것이지 노동자들이 일을 적게 하도록 하자는 취지가 아니기 때문이죠. 지위나 관계 우위를 이용해 상식선의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설 때 괴롭힘이 되는 겁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상사도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라떼는(나 때는)은 하지 마시고 카드만 주세요’라는 식의 후배들의 태도도 수적인 우위를 이용한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선 이 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법을 적용하면 감독 기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영세 사업장까지 감독이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이 한계입니다. 그럼에도 영세 사업장의 문제는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근로 감독에 의한 보호는 사실상 어렵겠지만 법 적용을 전 사업장으로 확대한다면 민형사상 책임은 물을 수 있어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회사도 노동자도 알아둬야 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집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괴롭힘 금지법이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모순이 많습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상사와 후배의 행동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신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묻는 글이 올라옵니다. 기업은 급증하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합니다.

‘회사도 노동자도 알아둬야 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이에 대한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구상했습니다. 회사와 노동자들이 알아야 할 괴롭힘에 대한 개념은 물론 기업의 인사노무 담당자와 경영자들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한 이후 조치해야 할 법적 의무와 절차 그리고 조직을 조기에 안정시키는 노하우를 담았습니다.”
괴롭힘 금지법은 왜 준수해야 할까요.
“괴롭힘은 사건‧사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괴롭힘이 근절됐을 때 결국 회사의 생산성과 연동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기업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은 ‘사람’이죠. 인재들이 이탈하면 그 기업은 어느 순간 망하게 됩니다. 괴롭힘 금지법을 계기로 기업들이 일 잘하는 인재들이 나가는 것을 막고 지속 가능한 조직이 되도록 문화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실태 조사입니다. ‘조기 감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죠.”
실태 조사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실태 조사는 단순히 괴롭힘이 ‘있었다’, ‘없었다’를 조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괴롭힘이 시작된 원인을 파악하는 게 핵심이죠. 예컨대 괴롭힘의 한 원인으로 세대 차이가 있습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4050대는 신념도 경험도 커뮤니케이션 방법도 다릅니다. 커피 심부름 등 동일한 상황을 두고 해석이 매우 다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태 조사를 통해 서로간 가치관 차이를 보여주고 조직 내 지켜야 할 ‘약속’을 제시하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한일연구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직장 내 괴롭힘 문제 등을 주제로 연구합니다. 또 일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주제로 연구합니다. ‘일’터가 안전해야 일하는 사람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안정되고 주어진 사회적 기능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Who is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 대표는 1993년 노무사시험에 합격한 이후 노사정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회장 등을 역임했다. 미국 페퍼다인대 로스쿨 유학 후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2016년부터 수십 차례 관련 포럼을 주도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입법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 대표. 사진=서범세 기자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 대표. 사진=서범세 기자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