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마르뜨’ 골목 속 걷기 좋은 코스로 주목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에 있는 언덕, 절두산(切頭山).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형태라고 해서 조선시대 ‘양화나루 잠두봉(蠶頭峰)’이라고 불리던 이곳은 선유봉과 잠두봉 사이 이나루에 쏟아지는 붉은 노을 덕에 마포 8경으로 꼽혔다. 이 아름다운 장소는 1866년을 기점으로 비극의 현장으로 변한다.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천주교 신자가 참수되자 ‘머리를 베다’라는 뜻을 가진 절두산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절두산은 1997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사적 제399호로 지정됐고 신앙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투쟁의 역사도 현재까지 생생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절두산 주변 합정동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서울시가 지난 4월 합마르뜨(마포구)를 비롯해 양재천길(서초구)·장충단길(중구)·선유로운(영등포구)·오류버들(구로구) 등 5곳을 ‘로컬 브랜드 상권 육성 사업’ 대상지로 선정하면서부터다. ‘골목이 살아야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를 모토로 하는 이번 사업은 상권당 최대 3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각종 시설과 인프라·콘텐츠를 갖춘 서울 대표 상권으로 발전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중 마포구 ‘합정동’과 ‘몽마르뜨(Montmartre : 순교자의 언덕)’의 합성어인 합마르뜨 상권은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7번 출입구 쪽 구역을 가리킨다. 홍대 상권 및 ‘마포 디자인·출판 특정개발진흥지구(마포구 서교동)’와 인접해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마포구 중심지보다 조용하고 한적해 새롭고 독특한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발길이 향하는 지역이다. 합마르뜨 골목 사이사이 트렌디하고 개성 있는 맛집·카페·독립 서점이 속속 들어서며 한강 변에 있는 절두산 일대도 덩달아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연부터 역사·문화까지 모두 이곳에합정역 7번 출입구에서 걸어서 10분 남짓이면 절두산 순교 성지에 도착한다. 감각 있는 카페와 독립 서점이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아기자기한 길목이다. 입구로 접어들자 선선한 가을 공기와 한강 바람이 머리카락을 보드랍게 어루만진다. 푸른 하늘을 향해 높이 뻗은 대나무 숲에서는 금방이라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외침이 들릴 듯하다. 첫인상은 순교 성지라기보다 커다란 공원 같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순례자의 발걸음이 닿는 곳곳마다 가슴 아픈 역사가 떠오른다. 성녀 마더 데레사상을 비롯해 성인 김대건 아드레아 신부상, 성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상, 절두산순교자기념탑까지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올리는 이들의 경건한 마음이 전해질 듯하다. 절벽 끝에 자리 잡은 절두산 기념 성당과 박물관은 이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1956년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순교 성역화 사업을 추진했고 병인박해 100주년 이듬해인 1967년 절두산 순교 성지 성당과 박물관이 완공됐다.
당시 절두산 주변은 허허벌판에 산 아래로 모래와 강이 이어져 있어 터를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성당과 박물관의 역할을 동시에 하되 주어진 대지의 모양을 변형시키지 않는다’는 까다로운 설계 조건도 더해졌다. 공모 결과 건축가 이희태 씨의 설계안이 채택됐다. 초가지붕 모양의 지붕은 순교자의 갓을, 건물 중간에 있는 탑은 천주교인을 참수한 칼을 상징한다. 성당 내부 공간은 입구 쪽에서 제대를 향해 좁아지는 마름모꼴로 아늑한 느낌을 선사하고 제대에서 신자석을 바라보면 넓은 품으로 안아주는 듯하다. 순교의 상징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교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건축물이 탄생한 것이다. 절두산 성당과 박물관은 건축 25년상을 비롯해 가톨릭 미술상을 수상했다.
절두산 순교 성지는 천주교 교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열린 곳이다. 박물관에서는 상설 전시 ‘눈으로 걷는 순례 : 한국천주교회사’를 비롯해 정기적으로 기획 전시가 열린다. 현장을 찾았을 때는 2022 특별기획전 ‘지향 Intentio’을 보기 위한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서울 강변북로 너머 노을을 바라보며 오래전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바친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절두산 순교 성지
주소 : 서울 마포구 토정로 6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관람 시간: 09:30~17:0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박소윤 기자 한경무크팀 기자 sos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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