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서울시 전·월세 종합지원센터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시 전·월세 종합지원센터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직장인 김 모(30대‧인천 송도) 씨는 요즘 전셋집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부모님과 여태 함께 산 그는 자취방을 구하는 게 처음이다. 김 씨는 “서울에 있는 직장으로 이직하면서 통근 시간이 1시간 반을 넘어가더라. 모아둔 돈이 있어 전세를 구하려 하는데 연일 보도되는 전세 사기 뉴스에 월세를 택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김 씨 같은 고민을 토로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전세 사기 피해자의 안타까운 소식이 잇달아 들려오고 보증금을 보존 받기는커녕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피해자들이 속출하면서 이들의 고민은 더 깊어져만 간다.

작정하고 속인다면 속수무책 당하겠지만 전세 매물을 찾을 때부터 계약·입주까지 임차인이 점검해야 할 주의 사항을 충분히 숙지하면 ‘내 보증금을 지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세 계약 전 꼭 확인해야 할 필수 ‘체크 리스트’를 짚어 봤다.
◆깡통 전세는 거르고 보자
대표적 전세 사기 피해 유형인 깡통 전세(전세 보증금이 매매가에 이르는 경우) 사례를 살펴보자.

470여 채가 넘는 주택을 보유한 이 모(65) 씨는 2017년 6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서울 강서구 일대에서 무자본 갭 투자(전세 끼고 매입) 방식으로 임차인 43명에게서 총 84억원의 임대차 보증금을 편취한 혐의(사기)로 지난 4월 구속됐다. 지난 1월에는 서울 화곡동을 무대로 무자본 갭 투자 사기를 벌여 30억원이 넘는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강 모(55) 씨가 구속 기소됐다.

두 사례의 공통 키워드는 ‘무자본 갭 투자’다. 전세 사기 일당들은 대부분 임차인이 지불한 보증금으로 해당 주택을 매입하는 계약을 ‘동시’에 진행한다.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주택 소유권을 취득하는 ‘무자본 갭 투자’ 방식이다.

이 경우 집값이 오를 때는 전셋값이 올라도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해 줄 수 있지만 집값이 전셋값보다 가파르게 떨어지는 ‘역전세’ 상황에서는 전세 사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집주인이 보증금 상환을 회피하면 보증금을 떼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깡통 전세 매물은 일단 피하고 봐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집값 시세를 파악해야 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 실거래가 등기 확인 사이트 디스코, KB부동산 등 여러 부동산 사이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세 보증금은 매매가의 70%를 넘지 않는 게 좋다.

다음은 인터넷등기소에서 부동산등기사항증명서(등기부등본)를 확인해야 한다. 등기부등본은 해당 주택의 집주인과 권리 관계 설정 등을 보여준다. 갑구·을구에 전세 들어오기 전 돈을 빌려준 ‘선순위 채권자’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등기부등본상 선순위인 근저당권 등 담보 물권(을구)이나 가압류 등 권리 침해 내역(갑구)이 없어야 한다. 선순위 근저당 금액이 있으면 세입자는 후순위로 밀리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보증금을 온전히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임대인이 신탁사나 법인일 수도
등기부등본에 신탁 등기가 표기돼 있는지도 봐야 한다. 이 경우 등기부등본상 부동산 소유자는 신탁회사로 등기된다. 법원 등기소에서 신탁 원부를 반드시 발급받아 신탁사 확인 후 임대차 계약 동의를 받아내는 게 중요하다. 이 절차가 없다면 임대차보호법 대상에 들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신탁 원부에서 은행·증권사 등 우선 수익자(선순위 채권자)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임대인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등기상 임대인과 계약을 진행하는 사람이 동일인인지 신분증·인감증명서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임대인이 신탁사나 법인인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법인 임대인은 파산이나 청산할 때 직원의 밀린 임금 채권 등이 우선시된다. 개인 임대인보다 돈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임대인이 전체 부동산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 일부 지분만 갖고 있다면 임차인은 지분권자 모두와 계약해야 한다.

하지만 집주인이 ‘바지 사장’을 내세우면 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바지 사장들은 대부분 일정 금액을 받고 자신의 명의를 넘겨 해당 부동산의 새로운 임대인이 된다. 이 경우 세입자는 서류상 임대인인 바지 사장에게 전세금 반환을 요청해야 하지만 이미 전세 보증금은 이전 임대인이 가로챘고 명의상으로만 집주인인 바지 사장은 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없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이삿날 전입신고‧확정일자는 필수
전세 계약 잔금일과 입주일이 일치하는 게 좋다. 거주(점유)를 시작해야 전입신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정일자를 받고 전입신고를 해야 돈을 돌려받을 권리인 대항력을 갖게 되고 경매에 넘어갈 때 먼저 돈을 받을 수 있는 우선 변제권이 생긴다. 다만 확정일자 이전에 발생한 채권이나 저당권에 앞설 수는 없다.

전세권 설정도 확정일자와 마찬가지로 선순위는 절대 못 이긴다. 굳이 비싼 등기비용을 들여 전세권을 설정하기보다 확정일자를 받아 두고 요건이 되는 경우 전세보증보험을 받아 두는 게 좋다. 전세보증보험은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보증 기관에서 집주인 대신 전세 보증금을 주고 보증 기관은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서울보증보험(SGI)의 전세금보장신용보험,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전세지킴보증 등이 있다. 다만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수도권은 7억원 이하, 지방은 5억원 이하의 전셋집만 가입할 수 있다.

다른 세입자들보다 늦게 입주하고 늦게 확정일자를 받았더라도 가장 먼저 변제받을 수 있는 사례도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소액 보증금’ 기준에 해당하는 경우다. 소액 보증금과 우선 변제 금액 기준은 지역이나 빚이 생긴 시점에 따라 차이고 있는데 ‘안심전세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등기부등본, 계약 후에도 확인!
등기부등본은 계약 후에도 떼어 보는 것이 좋다. 집주인이 전입신고하는 당일 대부 업체 등에서 집을 담보 받고 대출받는 새로운 유형의 사기 수법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의 맹점을 이용한 경우다. 임대차 계약을 맺고 확정일자를 받고 전입신고를 하게 되면 그 효력인 대항력은 신고 당일이 아닌 다음 날 0시부터 생긴다. 정리하면 하루 차이로 선순위 채권자가 생겨 대항력이 생겨도 후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실제 2020년 3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59㎡ 아파트를 놓고 대항력을 이용한 전세 사기가 있었다. 당시 이 아파트 시세는 21억원이었는데 시세보다 2억원 더 비싸게 매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A 씨다. 그 대신 그는 집주인 B 씨에게 보증금 12억5000만원에 2년간 전세로 거주해 달라고 요구했다. B 씨는 이를 수용해 A 씨에게 집을 팔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계약 당일 전입신고와 함께 확정일자까지 받아 놓았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B 씨는 전세 사기의 피해자가 됐다. A 씨가 계약 당일 대부 업체에서 주택 담보 대출 21억5000만원을 받고 주택에 근저당으로 25억8000만원을 걸어 놓았던 것이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순간 전세 보증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세금 체납 사실도 파악해야 한다. 집주인이 사기 의도가 없을지라도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아무리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빨리 했다고 하더라도 체납된 집주인의 세금이 변제 순위에서 앞선다. 다만 올해 4월부터 국세 당해세만 법정 기일(세금이 발생한 날) 임차인의 확정일자보다 늦으면 임차인의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수 있다.

또 4월 3일부터 임차인은 임대차 계약 기간이 시작되는 날까지 임대인의 동의 없이도 집주인의 국세·지방세 체납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전세보증보험도 활용하면 좋다. 계약 후 임대인의 세금 체납 발견 시 계약을 해지하고 보증금을 반환한다는 내용을 넣으면 유용하다.
◆신축 빌라는 조심
신축 빌라 거주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신축 빌라는 앞선 거래가 없어 시세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전셋값을 부풀려 주변 시세나 분양가에 근접하게 만들기 쉽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첫 거래부터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도는 ‘깡통 전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신축 빌라 등 시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주택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전세피해지원센터에 문의하면 된다.

근린 생활 시설도 피하는 게 좋다. 근린 생활 시설은 상가 등 주택가와 인접해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다만 이를 주거용으로 개조한 ‘근생 빌라’는 불법이다. 근생 빌라에 거주하는 임차인은 전세 대출을 받을 수 없고 전세보증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다. 사기 등 문제가 생겼을 때 임차인은 최후 순위에 해당해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다.

근린 생활 시설 여부는 건축물대장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정부24 등에서 열람할 수 있고 공인중개사 측에 요구해도 된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