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인터뷰 : 대중문화 평론가 김작가
K팝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내며 팬들을 하나로 묶고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데는 세계관의 역할이 컸다. 팬들이 만든 파편화된 가상의 스토리를 철저하게 준비해 세련된 세계관 형태로 소개한 것이 바로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엑소(EXO)다. 2011년 데뷔한 엑소는 멤버들이 ‘엑소 플래닛’이란 가상의 행성에서 날아왔고 멤버별로 초능력을 갖고 있다는 독특한 세계관을 팬들에게 소개하며 시작됐다.엑소 세계관의 성장에 고무된 SM은 이후 SMCU(SM Culture Universe)라는 이름으로 소속 아이돌 그룹들을 위한 세계관을 통합해 관리했다.
SM이 시스템 안에서 세계관을 녹여 내려는 시도를 했다면 하이브의 방탄소년단(BTS)은 이를 자연스럽게 성공적으로 전 세계에 정착시켰다. BTS는 불안정한 청춘이 소비하는 공간과 시간들을 ‘BU 세계관(BTS Universe)’ 안에서 담아내 팬들에게 전달했다.
이 밖에 팀 내에 존재하는 세 개의 유닛 그룹을 중심으로 독특한 ‘루나버스’ 세계관을 확장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여성 아이돌 그룹 ‘이달의 소녀’부터 ‘지구에 불시착해 사라진 멤버를 찾는 휴머노이드’라는 세계관 안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남성 아이돌 그룹 ‘온앤오프’까지 다양한 아이돌이 각자 개성 있는 세계관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작가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이돌 기획사들이 다양한 세계관들을 통해 어떻게 비즈니스를 확장시키는지, 세계관 형성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팬들과 아이돌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소통하는지 살펴봤다. 이승윤 건국대 교수(이하 이승윤) 가요계 쪽의 세계관은 다른 영역들과 비교해 어떻게 정의될 수 있나요.
김작가 평론가(이하 김작가) 콘셉트죠. K팝에서는 기존에는 아이돌이 본체 자체와 미디어에서 비처지는 캐릭터 등 두 가지 요소가 존재했어요. 그러다 2010년대 엑소 때부터 구체적으로 콘셉트와 스토리가 설정됐습니다. 그러면서 실제 인물과 미디어에서 비쳐지는 모습에 가상의 배경이나 스토리를 넣고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음악 활동뿐만 아니라 팬덤이 상상하는 세계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자아이자 하나의 캐릭터라는 식으로 연결되죠. 즉 스토리를 갖춘 브랜드가 돼 가는 그 과정, 그것을 위한 장치가 바로 이 음악에서의 세계관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승윤 K팝 아이돌 세계관의 깊이가 만들어진 것이 언제쯤인가요.
김작가 시작은 1990년대 H.O.T.와 젝스키스 시절부터 시작된 팬픽이었죠, 아이돌 멤버에 설정을 불어넣은 소설을 쓰던 팬들의 놀이 문화가 누적됐고 언더그라운드에 있던 팬 문화가 엑소 데뷔부터 신화적인 설정이 붙여진 캐릭터가 만들어졌어요. 기성 세대는 바로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팬들에게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고 이를 SM에서 아예 공식적으로 설정을 붙여 데뷔시켰죠.
이승윤 이런 세계관이 엑소 외에도 음악 영역에서 퍼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김작가 스트리밍의 시대가 되면서 모든 콘텐츠가 경쟁하게 됐어요. 자신이 음악을 듣는 데 쓰는 시간이 다른 음악을 듣는 시간이 아닌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는 시간과 경쟁함으로써 모든 콘텐츠가 경쟁 상대가 됐죠. 그렇다면 사람들을 어떻게 스트리밍 서비스에 잡아 둘 수 있을까. 팬덤 안에 둘 수 있을까. 그때 이 세계관이 굉장히 유효한 장치이자 답이 됩니다. 세계관의 도입을 통해 상상하기 힘들었던 부분을 채워 주고 그 대상에 대한 몰입을 키우고…. 다른 콘텐츠로 계속 파생되는 거죠. 세계관의 어떤 요소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CD도 사고 팬북도 사고 뮤직 비디오 속 설정들을 연결해 몰입해 보고 그러면서 팬들끼리 콘텐츠의 자발적인 서플라이 체인을 만드는 거죠.
이승윤 만약 아이돌이나 아니면 특정 가수들이 세계관을 만들어 성공시키려면 중요하게 고려해야 되는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김작가 BTS에서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을 듯해요. 하이브에서 세계관을 기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팬들이 BTS의 콘텐츠와 활동을 해석하면서 만들어졌죠. 특히 K팝은 아직까지 세계에서는 비주류 계층의 음악이라고 볼 수 있는데 비주류로서의 자아, 고민 뭐 이런 것들을 일상에서 공감하게 만드는 포인트가 BTS 세계관의 핵심이었죠. 그 메시지가 지금까지 팝에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관을 구축하는 효과를 냈어요. 1950년대 록부터 시작된 이른바 팝에서의 서브 컬처 청년 문화, 록이든 힙합이든 EDM이든 청년들의 하위 문화에서부터 출발한 모든 장르는 기본적으로 기성 세대에 대한 불만을 내포하고 이를 비교적 거친 방법으로 구현하려는 욕망이 있죠. 하지만 K팝은 그렇지 않아요. 가사에 섹스·폭력·마약도 없는 거죠. 부모들도 우리 자식이 K팝을 들음으로써 활기가 생기면 안심할 수 있는 거죠. 지금까지 기존 서브 컬처가 가지지 못했던 세계관을 K팝이 구축하고 있고 그 효시가 바로 BTS예요. 즉 팬들의 처지에서 공감할 수 있고 격려해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중심에 둔 세계관이죠. 그런 부분이 K팝 세계관의 현 상태이자 중요한 부분일 것 같습니다. 이승윤 디지털에 연결된 세계관 상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김작가 몰입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팬 커뮤니티 관리가 정말 중요한 듯합니다. 뉴진스는 공식적인 세계관이 없지만 어쨌든 디지털에 연결된 음악의 가장 큰 상품 중 하나인 뮤직 비디오만 봐도 어떤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하면 팬들이 그것을 분석하기 위해 10배, 20배씩 돌려본다는 말이에요. 또 각종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등도 디지털에서 세계관을 담아내죠.
이승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하면서 버추얼 가수라든지 아이돌 데뷔 등이 많아졌는데 그들의 캐릭터 설정을 하다 보면 세계관이 폭넓어질 가능성이 있겠네요.
김작가 점점 넓어지겠죠. 팬들의 처지에서 공감과 격려를 하는 BTS 모델이 성공할지, 광야라고 하는 엔터테인먼트의 MCU(Marvel Cinematic Universe)를 꿈꾸는 그 세계관이 성공할 것이냐에 따라 미래는 또 달라지겠죠. 다만 세계관이 정교해지더라도 하나의 장치로 작용해야지 아이돌 산업의 메인이 되는 순간 대중의 진입 장벽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엔드게임’ 이후 디즈니플러스 드라마가 병행되는 마블과 똑같은 길을 걷게 되는 것이거든요. 이승윤 음악 쪽 세계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기존의 세계관을 발전시키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좋은가요.
김작가 오히려 세계관이란 말이 등장하기 이전 콘셉트들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과거에 존재했던 수많은 청년 장르들이 있지 않습니까. 록 중에서도 펑크가 있고 얼터너티브가 있고 힙합도 동부 힙합이 있었고 서부 힙합이 있었고 레게라든지 굉장히 많은 장르들이 있잖아요. 그 장르들은 다 청년들의 하위 문화에서 출발한 장르인데 그 하위 문화가 어떤 식으로 팬들을 하나의 체인으로 묶었는지. 어떤 트라이벌 컬처(tribal culture)를 만들어 냈는지 등을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닥터마틴’, ‘리바이스’, ‘프레디페리’라는 브랜드는 어떻게 펑크록의 성장과 함께 맞물려 왔는지 등을 연구하는 것이 브랜딩 혹은 마케팅으로서의 세계관 이해에 훨씬 더 도움이 될 겁니다. 뿌리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거죠.
이승윤 마지막으로 김작가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김작가 K팝을 새로운 방식으로 쓰고 말할 방법론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1990년대 홍대 인디신의 탄생부터 봐 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 트라이벌 컬처의 역사를 책으로 정리해 볼 계획입니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대학 마케팅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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