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 부르는 무기 패러다임 시프트 ⑪
트럼프,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정확한 언급 피해 … 당국은 ‘완전한 비핵화’ 못박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북한 김정은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회담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이 회담 공동성명에서 북한 비핵화는 뒤로 밀려 세 번째 항목에 원론적으로 들어갔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북한 김정은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회담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이 회담 공동성명에서 북한 비핵화는 뒤로 밀려 세 번째 항목에 원론적으로 들어갔다. 연합뉴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확한 입장은 뭘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와 행정부의 공식 반응이 달라 혼란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 핵 정책의 목표가 ‘비핵화’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한·미 합동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을 대폭 축소할 것을 지시하며 북한 김정은에게 대화 메시지를 잇달아 발신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연내 만날 것”이라고 한데 이어 “김정은의 응답이 있었다”고 했다.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선 답을 피했다. “북한이 57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그의 발언 속엔 비핵화는 돌이킬 수 없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는 분석들이 나왔다. 이 때문에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미국의 북한 비핵화 기조를 수정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트럼프의 1기 집권 시 이뤄진 김정은과의 세 차례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는 뒷전으로 밀렸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회담에서 나온 공동선언문의 골격은 크게 네 가지다. △새로운 미·북 관계 수립 △한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공동 노력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노력 등이다.
세 차례 트럼프-김정은 회담, 비핵화는 ‘뒷전’

북한 비핵화 부분이 세 번째로 밀렸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CVID의 핵심인 ‘VI(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는 빠지고 원론적인 표현에 그쳤다.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 정도라도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2005년 6자회담 결과로 발표된 9·19 공동선언보다 뒤로 밀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9·19 공동선언에서는 ‘모든 핵무기,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 포기와 함께 구체적인 실천 계획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복귀 등 합의가 이뤄졌다. 물론 북한은 이를 지키지 않았고 이후 6차례 핵실험을 강행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CVID를 명시하지 않은 것은 미국에 굴복해서 비핵화를 한다는 인상을 북한에 주지 않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CVID는 오늘 주제의 핵심이 아니었다”고 했다. 김정은은 비핵화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라는 예상하지 못한 지시를 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두 정상에 찬사를 보낸다”고 하면서 한·미 훈련은 대폭 축소됐다.

트럼프-김정은 회담을 위해 당시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가 있었다. 동북아 안보 권위자로 꼽히는 조엘 S 위트의 ‘폴아웃’에 따르면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뜻을 전달했다.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사, 대량살상무기(WMD) 시험을 중단하겠다는 약속, 한·미 연합훈련에 반대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과 만남을 원한다는 것 등이었다. 한 백악관 보좌관은 훗날 “대부분 헛소리였다”고 했으나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회담 제의를 즉각 수용했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회담은 잘 알려진 대로 아무런 합의 없이 결렬됐다.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전면적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이외 은닉된 우라늄 농축시설 등 폐기를 압박하면서 ‘노딜’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제안에 “미사일, 핵탄두 무기 체계가 빠져 있어 합의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건 표면적인 이유이고 존 볼턴 당시 안보보좌관은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다른 주장을 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과 같은 시기 진행된 자신의 ‘러시아 트럼프 타워 프로젝트 거짓 증언 지시 의혹’ 등과 관련한 마이클 코언 변호사 청문회 이슈를 덮기 위해 합의보다 협상 파기가 더 파급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위트도 ‘폴아웃’에서 “트럼프는 참모들과 이동하는 차 안에서 (회담)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과 부분적 합의에 서명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큰 뉴스가 될지 따져보았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했다가 트윗 제의로 2019년 6월 이뤄진 김정은과의 판문점 회동도 합의문이 없었다. 후속 협상을 하기로 했지만 북한은 한·미 훈련을 핑계로 응하지 않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김정은을 향해 여러 차례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국무부, 전략적 차원 역할 분담?

트럼프의 모호한 입장과 달리 토미 피곳 국무부 대변인은 8월 26일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가 여전히 완전한 북한 비핵화임을 재확인해 줄 수 있나’라는 연합뉴스 질의에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계속 전념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당국자도 같은 질의에 “미국의 정책에는 어떤 변화도 없다”고 말했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미국 당국의 공식 입장은 ‘북한 비핵화 유지’였다. 백악관은 지난 5월 미·중 정상회담 결과 팩트시트(설명자료)에 ‘북한 비핵화 목표 확인’을 담았다. 국무부도 지난 6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공약 지속 입장을 밝혔다.

미국 행정부 내에서 이런 엇갈리는 메시지를 내는 것에 대해 트럼프 특유의 ‘거래의 기술’ 일환이고 고도의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종의 역할 분담론도 제기된다. 트럼프 거래의 기술의 핵심은 ‘예측 가능한 패턴을 안 드러내야 상대를 흔든다’이다. 김정은에게 핵을 용인할 것처럼 비춰 회담장으로 끌어내 담판을 벌이겠다는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당국의 공식 입장은 그럴 수 없다. 당국마저 북핵 인정 신호를 보일 경우 ‘핵 도미노’ 등 그 후폭풍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핵무장론이 다시 일고 있고, 일본 정치권에서도 ‘비핵 3원칙’이 흔들리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핵 확산 움직임이 나오는 마당이다.

트럼프의 이런 전략이 먹힐까. 김정은이 선뜻 손을 내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2018년 김정은이 미국과의 대화에 나선 건 당시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도 유엔의 대북제재에 찬성할 만큼 불만을 가졌다. 김정은으로선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그러나 지금 중국, 러시아가 북한 뒤에서 지원군 역할을 해주고 있다.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으면 어떤식으로든 핵문제를 논의할 텐데, 이미 핵보유를 천명하고 이를 법제화시킨 마당에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이다. 북한은 경제적으로도 2018년과 달리 중국과 러시아의 도움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미국을 향한 최강경 대응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고 한 것도 이런 외교안보 정세 때문이다. 김정은이 대화에 응한다면 더 이상 '하노이 노딜'은 없다면서 협상 문턱을 대폭 높여 제재 철폐 등 훨씬 큰 양보 보따리를 풀어놓으라고 할 것이다. 북한 의도대로 비핵화 문제는 뒤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⑫회에 계속)

홍영식 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전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