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물가·고용에 인상 압력
트럼프는 저금리 압박
빅테크 회사채까지 쏟아져
日 10년물 30년 만에 3% 돌파
끝나가는 ‘초저금리 시대’
일본에서는 수십 년간 이어진 ‘초저금리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일본은행은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정책금리를 끌어올렸고,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도 약 30년 만에 3%를 넘어섰다. 급락한 엔화 가치를 둘러싸고 미국까지 방어에 가세하면서 일본의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중심에는 금리가 있다. 왜 미국은 엔화 하락을 그냥 두지 못하고, 트럼프가 금리인하를 요구하는데도 Fed는 금리인상을 고민할까. 다섯 가지 질문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을 흔드는 금리의 연쇄작용을 풀었다. 1. 미국은 왜 돈을 써서 엔화 하락을 막을까
일본 정부는 7월 30일부터 8월 26일까지 엔화 가치를 방어하는 데 15조4000억엔, 약 965억달러를 썼다. 다음 날인 31일에는 미국이 가세해 이례적인 미·일 공동 엔화 매수 개입이 이뤄졌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최근 미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엔화의 무질서한 움직임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미국 가계와 기업의 차입비용까지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싼 돈’을 유지한 나라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는 금리를 아예 마이너스로 낮췄다. 돈을 빌리고 쓰게 만들어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국내 채권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낮으니 일본 보험사와 은행, 연기금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미국 등 해외로 돈을 보냈다. 엔화를 싸게 빌려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트레이드’도 이 구조에서 성장했다.
그런데 이 공식이 바뀌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6월 정책금리를 0.75%에서 1.0%로 올렸다.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베선트 장관은 최근 "일본이 디플레이션을 극복했으니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만끽하고 경기부양 정책을 끝내야 한다"며 일본에 사실상 추가 금리인상을 압박했다.
초저금리와 대규모 경기부양을 이어갔던 아베노믹스를 끝내고 금리인상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미국도 엔화 강세에 따른 엔캐리 청산은 부담스럽지만 일본이 미 국채를 팔아 엔화 방어에 나서는 ‘무질서한 약세’보다는 금리인상을 통한 질서 있는 엔화 정상화를 택한 셈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2일 “이번 회의에서 경제와 물가의 위험을 논의하겠다”며 9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시장은 이를 일본의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높이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도 30년 만에 3%를 넘어섰다. 2. 미국은 왜 금리를 내리지 못할까
낮은 금리는 40조달러가 넘는 국가부채의 이자 부담을 줄이고 가계의 모기지와 기업의 차입비용을 낮춘다. 달러 약세는 미국 제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수출을 돕는다.
그런데 금리인하가 쉽지 않다. 오히려 Fed는 인상 쪽을 가리키고 있다. 9월 1일 기준 금리선물시장이 반영한 9월 0.25%포인트 금리인상 가능성은 68.2%까지 치솟았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현재 연 3.50~3.75%로 2024년 5%대보다 상당히 낮아졌다.
물가는 여전히 높은데 예상치의 세 배에 가까운 ‘고용 서프라이즈’까지 터지면서 금리를 올려야 할 이유는 더 많아졌다.
케빈 워시 Fed 의장은 8월 28일 잭슨홀 연설에서 2% 물가안정 목표를 “확고하고 고정된 목표”라고 못 박았다. 시장은 이를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매파적 발언으로 해석했다.
미국의 PCE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3.7%, 최근 6개월 연율로는 4.1%다. 미국 개인소비지출(PCE)을 구성하는 199개 품목 중 최근 1년간 가격이 3% 넘게 오른 품목 비중은 54%로 코로나19 이전 20년 평균(32%)을 크게 웃돈다.
AI 투자 열풍도 경기를 떠받치는 한 축이다. 워시 의장은 최근 4개 분기 미국의 장비·무형자산 투자가 약 9% 늘었고 올해 설비투자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AI 관련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Fed가 고금리로 수요를 억제하려 해도 빅테크들은 AI 경쟁에서 밀릴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투자를 멈추지 않는 셈이다. 여기에 중동발 국제유가 상승까지 겹치며 물가 압력이 다시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고용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자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미국 신용도가 훨씬 높아졌다”며 “금리를 낮추라”고 밝혔다. 그는 “강한 나라일수록 금리가 낮아야 한다”며 “매우 간단하다”고 했다. 이어 “미국은 ‘옛날처럼’ 금리가 세계에서 가장 낮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3. 미국 빚 40조달러가 주는 영향은?
미국 정부는 세금으로 거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부족한 돈은 국채를 찍어 메운다. 미 재무부는 올해 7~9월에만 시장에서 순액 기준 7390억달러, 10~12월에는 6280억달러를 추가로 빌릴 계획이다. 시장에 국채가 많이 쏟아질수록 이를 사줄 투자자를 확보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할 수 있다.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수익률은 올라가는 구조다.
미국 정부만 돈을 빌리는 것도 아니다. AI 데이터센터와 모델 개발에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해지면서 빅테크들도 채권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알파벳·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 등 5대 AI 하이퍼스케일러가 올해 발행한 채권은 이미 2200억달러를 넘어 지난해 연간 발행액의 두 배 이상이다.
AI 투자를 위한 차입이 늘면서 올해 전 세계 회사채 발행액은 지금까지 4조900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국채와 회사채는 서로 다른 상품이지만 결국 같은 투자자의 돈을 놓고 경쟁한다. 미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쏟아내는 동시에 우량 빅테크들까지 높은 금리를 제시하며 회사채를 발행하면 투자자의 선택지는 많아진다. 워싱턴과 실리콘밸리가 같은 자금을 놓고 경쟁하면서 국채금리 상승 압력도 그만큼 커진다.
가장 안전한 미국 정부조차 10년 동안 돈을 빌리는 데 5% 가까운 금리를 지급해야 한다면 기업과 가계, 다른 나라 정부가 돈을 빌릴 때 요구받는 금리도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다. 4. 글로벌 금리인상 속 채권금리 계속 오를까최근 세계 채권금리가 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금리인상 공포’였다. 미국에서는 Fed가 다시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커졌고 일본과 유럽에서도 추가 인상 전망이 힘을 얻었다. 한국은행은 이미 두 차례 연속 금리를 올렸고 추가 인상을 시사했다. 채권금리는 기준금리처럼 누군가 정해주는 숫자가 아니다. 앞으로의 물가와 경기, 중앙은행의 정책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채권을 사고팔면서 결정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수록 채권금리도 계속 올라갈 것 같다. 하지만 채권시장에서는 정반대 전망도 나온다. Fed가 실제로 금리를 올리면 오히려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민지희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Fed가 실제 금리인상에 나서면 채권시장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시장이 “Fed가 물가를 잡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받아들이면 장기 물가에 대한 불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가가 잡힐 것이란 믿음이 커지면 투자자들이 10년, 30년짜리 국채에 요구하는 금리도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민 애널리스트는 “미국채 10년물 4.7% 이상은 오버슈팅 구간”이라며 “한 차례 정도의 금리인상 기대가 이미 선반영돼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인상이 이뤄지면 채권금리가 추가로 치솟기보다는 오히려 내려갈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5. 증시는 어떻게 될까?채권시장보다 금리인상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는 곳은 주식시장이다. 가장 먼저 투자자의 계산이 바뀐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비교적 안전한 자산에서도 이전보다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예금이나 채권투자로도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면 가격이 크게 오르내리는 주식을 살 요인이 줄어든다. 기업에도 부담이다.
은행 대출금리와 회사채 금리가 높아지면 돈을 빌려 공장을 짓고 회사를 인수하거나 신사업에 투자하는 비용이 커진다. 투자 비용이 늘고 소비까지 둔화하면 결국 기업 실적에도 영향을 준다.
특히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주요국이 동시에 돈줄을 죄는 만큼 증시를 떠받치던 유동성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금리인상이 곧 증시 급락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이 이미 상당 부분 대비하고 있어서다. 결국 고금리 부담을 상쇄할 만큼 이익을 늘리는 기업이 주가를 방어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지영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워시 의장 발언이 매파적으로 해석됐지만 뉴욕증시 하락폭이 제한된 점을 보면 시장의 감당 가능 범위를 넘어서지는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금리인상 여부가 확정되면 증시를 짓누르던 불확실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가 가파르지 않으면 단기 금리가 인상될수록 장기 금리는 안정된다”며 “정책 방향이 뚜렷해질수록 달러는 더 단단해지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미국 주식시장도 다시 힘을 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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