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도 가을도 애매”…기후변화에 분주해진 패션업계
기후변화로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패션업계의 오랜 판매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봄·여름과 가을·겨울로 나눠 움직이던 전통적인 시즌 구분을 넘어 실제 날씨 변화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하느냐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늦더위가 가을 신학기 시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잦아지자 글로벌 패션업체들이 상품 조달과 출시 일정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통상 이 시기는 재킷이나 코트 등 가을·겨울 의류 판매가 본격화되는 시기지만 더위가 장기화되면서 기존 상품 운영 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서유럽은 올해 6월과 7월 관측 이래 가장 더운 여름을 보냈다.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은 가을 상품의 소재와 구성에 변화를 줬다. 가을 분위기는 내되 기존보다 가벼운 소재를 사용해 늦더위에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남유럽과 아시아, 미국 남부 등 상대적으로 더운 지역을 대상으로는 소재 구성을 한층 세분화했다. 최근에는 일부 가을 상품의 출시 시기 자체를 미루는 등 마케팅 일정 조정에도 나섰다. 다니엘 에르베르 H&M 최고경영자(CEO)는 “여름이 길어지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며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여름철 의류 수요가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제품 출시 전략을 넘어 기업의 생존 문제와도 직결된다. 상품 기획부터 생산·발주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패션산업 특성상 예상을 벗어난 날씨가 이어지면 미판매 재고가 쌓여 결국 대대적인 할인 판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늦더위는 업체들의 상품 조달과 마케팅 일정에 차질을 빚게 하며 재고 부담을 키웠다.

반면 변화한 기후에 맞춘 제품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영국 유통업체 막스앤드스펜서(M&S)의 올해 6~7월 남성용 리넨 바지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83% 급증했다. 휴고보스 역시 더운 날씨에도 출근복으로 활용할 수 있는 테일러드 반바지 제품군을 대폭 확대했다. 무더위가 일상화되면서 과거 휴양지용이나 한여름용으로 치부되던 리넨과 반바지가 평상복과 오피스룩의 영역까지 파고든 셈이다.

그렇다고 늦더위가 가을·겨울 의류 수요 자체를 없앤 것은 아니다. 자라를 운영하는 스페인 인디텍스는 8월 1일부터 9월 7일까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 증가했다고 밝혔다. 폭염이 유럽 전역을 덮친 상황에서도 가을·겨울 신상 컬렉션이 좋은 반응을 얻은 덕분이다. 소비자들이 새 계절 상품을 미리 구매하려는 수요는 여전한 만큼 업체들로서는 가을옷 출시를 무작정 늦추기보다 기온 변화에 맞춰 소재와 품목, 출시 시기를 세밀하게 조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결국 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기후 변동성이 커지면서 실제 기온과 소비자 반응에 맞춰 소재와 상품 구성, 출시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이 패션업계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