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린 AI 투자, 금융 생태계 바꾼다

[한경 머니 기고=길재식·이영호 전자신문 기자 ]인공지능(AI)에 대한 산업 전반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재밌는 대목은 산업 특성상 보수적인 금융권에서 실제 수익을 창출하는 기술로 과감하게 AI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섭게 투자 시장에 꽈리를 틀고 있는 AI 투자를 전망해 봤다.

AI가 각 산업에서 핵심 키워드로 거론된다. 2016년 알파고가 바둑으로 이세돌 9단을 누르면서 AI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크게 높아졌다. 많은 주목에도 AI가 산업 현장에서 실전 배치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실제 도입됐더라도 대다수의 경우는 시범 단계,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AI를 접목했다는 상징성이 더 크다. 일반인이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AI로는 AI 스피커, AI 비서 서비스, 챗봇(chatbot) 정도가 있다. 상상 속 서비스가 현실이 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아직 AI 서비스가 본궤도에 올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생활에서 밀접하게 쓰기엔 AI 서비스 활용도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AI가 실제 사업에 쓰여 수익을 창출하는 사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물론, 기업 간 거래(B2B) 시장에서 AI 솔루션이 도입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일반인이 체감하기는 어려운 분야다. 현재 대중화된 AI 서비스는 이용자에게 편의성을 제공한다. 서비스 자체가 수익을 창출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에서 AI가 실제 사업에 도입돼 수익을 창출하는 분야가 있다. 금융시장이다. AI가 투자하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가 대표 사례다. 금융소비자는 AI 상용 기술을 언제든 접한다. 산업 특성상 금융권 문화는 보수적이다. 신기술 도입에 조심스럽다. 자칫 고객에게 손해를 끼치는 대형 사고를 낼 수 있어서다. 신뢰는 금융사의 생명이다. 첨단 기술인 AI가 금융시장 최전방에 섰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이유다.
규제 풀린 AI 투자, 금융 생태계 바꾼다

◆로보어드바이저, AI 투자 시대를 열다

AI 투자는 로보어드바이저라는 이름으로 익숙하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과 어드바이저(투자전문가)의 합성어다. 빅데이터, 머신러닝, 알고리즘 기술이 동원됐다. 자동화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AI가 투자 종목을 판단한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데이터를 조합하고 학습한다. 거시경제 지표 데이터로 장기 수익률을 분석한다. 소비자 투자 성향, 금액과 같은 각종 조건을 반영한다. 글로벌 데이터 전문 기업들이 제공하는 고가의 경제 데이터를 실시간 취합하기도 한다. 사람이 운용하는 일반 펀드보다 신속하게 시장에 대응한다. 투자 결정에서 감정을 배제한다.

로보어드바이저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 비용 절감을 꼽을 수 있다. AI가 전문 인력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건비가 절감되고 수수료가 저렴해진다. 또한 AI는 알고리즘을 토대로 시장 변수를 계산·전망한다.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 종목과 비중을 조정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AI는 쉬지 않고 빠르게 처리한다.

로보어드바이저라는 단어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5년이다. 2015년 9월 당시 KDB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도입했다. 디셈버앤컴퍼니, 에임(AIM) 등 국내 핀테크 기업과 협업했다. 전문 기술을 가진 핀테크 기업과 대형 금융사의 협업 사례가 늘어났다. 현재 코스콤 테스트베드센터에 이름을 올린 로보어드바이저만 300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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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투자, 과연 사람보다 나을까
투자 상품을 고를 때 가장 먼저 수익률을 챙길 것이다. 수수료가 저렴하고 오류가 없더라도 수익률이 시장 평균치를 하회한다면? 소비자를 이끌어 내기는 어렵다. 국내 AI 투자 시장은 성숙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투자 성과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 수익률에 긍정적 평가를 내린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코스콤은 로보어드바이저 33개 투자유형별(안정추구, 위험중립, 적극투자) 평균 수익률을 기간별로 분석했다. 코스콤 테스트베드센터에서 로보어드바이저 운용 실태를 모니터링한다.

먼저 3개월 수익률에서는 안정추구형(1.54%), 위험중립형(1.76%), 적극투자형(1.89%) 모두 코스피200 수익률(0.37%)보다 우수했다. 6개월 수익률에서는 위험중립형과 적극투자형 성적표가 우수했다. 각각 7.90%, 10.20%로 집계됐다. 코스피200 지수 수익률 5.92%를 상회했다. 안정추구형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5.71%로 코스피200 지수 수익률을 하회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년 평균 수익률이었다. 코스피200 수익률이 -7.40%를 기록할 때 로보어드바이저는 손실을 모면했다. 안정추구형은 2.96%, 위험중립형은 2.23%, 적극투자형은 0.97%를 기록했다. 코스콤 테스트베드 통과 상품 중 2020년 2월 11일 기준 연환산 수익률이 가장 높은 상품을 검색했다. 지난해 2월 11일부터 운용한 ‘신한-콴텍 가치투자 주식형 3호’가 연간 수익률 26.03%로 가장 높았다.

로보어드바이저가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투자 유형이다. 손실 위험성은 상존한다. 시중 로보어드바이저 가운데 실제 손실을 낸 상품도 있었다. 방대한 데이터, 정밀한 알고리즘으로 무장해도 100% 성공을 보장하진 못한다. 그만큼 시장 예측은 어렵다.

투자 AI 기술도 발전한다. AI 투자 노하우, AI 기술이 고도화되면서다. AI 투자 수익률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신한금융그룹은 딥러닝, 알파고 강화학습을 적용한 ‘신한BNPP SHAI 네오(NEO) 자산배분 증권투자신탁’, ‘신한 네오 AI 펀드랩’을 출시했다. 국내 최초 강화학습 AI 알고리즘을 적용했다는 게 신한금융그룹의 설명이다. 신한금융그룹의 AI 투자자문 자회사 ‘신한AI’가 개발했다.

◆규제 풀린 로보어드바이저…AI 투자 확대 예상

AI 투자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일각에선 AI 투자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가 아직 낮다고 지적한다. 소비자 인식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AI 투자는 시대 추세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규모가 2020년 1조2250억 원, 2021년 1조9021억 원이라고 전망했다. KEB하나은행은 국내 시장규모가 2022년 18조 원, 2023년 25조 원, 2024년 28조 원, 2025년 30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도 로보어드바이저의 판 키우기에 나섰다. 로보어드바이저 규제를 푼 것이다. 지난해 로보어드바이저의 펀드 재산 직접 운용이 허용됐다. 로보어드바이저업체가 펀드·일임 재산을 위탁받아 로보어드바이저로 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자산운용사를 비롯해 라이선스를 보유한 업체에만 펀드의 직접 운용을 허가했다.

AI 도입은 금융 산업 생태계, 자산관리 개념도 뒤바꿀 것으로 보인다. AI가 펀드매니저, 프라이빗뱅커(PB)와 같은 전문 인력 역할을 수년 내에 대체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또 로보어드바이저의 고도화와 보급화는 한국 산업과 일자리 구조에도 직접적인 변화를 줄 수 있다.

자산관리 시장도 AI 접목으로 대중화 시대를 맞이했다는 평가다. 이원부 동국대 핀테크 최고경영자과정 책임교수는 “그간 자산관리 시장이 고액자산가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AI 도입으로 누구나 관리를 받을 수 있는 테크핀 대중화 시대의 물꼬를 틀 것”이라며 “자산관리에 필요한 비용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기 때문에 금융 생태계 전반을 바꾸는 디지털 혁신 채널로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길재식·이영호 전자신문 기자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