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한용섭 편집장] 당신은 어른인가요? 나이가 들어 저절로 되는 그런 ‘어른’ 말고, ‘어른의 어른’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지 물어본 겁니다. 자신이 없다고요? 하긴 어른이 되면 책임감과 의무와 같은 짐들만 하나 둘 늘어나고, ‘배려와 용서’ 같은 면책 조항은 줄어들기 마련이죠.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어른인 척’, 허세를 부렸었는지도 모르겠네요. tvN 방송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처럼 우리 각자는 허우대만 멀쩡한 ‘초짜 어른’들이었는 데 말이죠. 이 같은 모습은 냉정하게 말하면 ‘어른이의 현실동화’입니다. 어린이의 동화처럼 더 이상 몽상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그런 동화 말이죠.
대만의 국민 작가인 아이리의 <서른이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라는 책을 보면 이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나중에야 알았다. 너무 철이 들어서 놓친 것이 많다는 걸 말이다. 예전에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인생의 많은 걸 선택할 수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른이 지나고 보니 어른의 세계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모든 걸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선택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얻을 수 없었고,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다가왔다. 더 슬픈 사실은 가장 원하는 것은 더 얻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어른이라는 주어진 현실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말이겠죠.
사실 ‘존경 받는 어른’은 현실에서 더욱 희소해지고 있습니다. ‘어른’이라는 단어 옆에 붙어 있던 ‘현명함과 당당함’은 한참 주눅 들어 있을 때가 많죠. 오히려 ‘어른’이라는 단어가 ‘아재’라는 말과 동일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아재’는 가끔 ‘어른’을 계급장처럼 사용하는 수많은
‘별로인 어른’들에게 붙여진 별칭입니다.
한경 머니의 10월호 빅 스토리 ‘멋진 어른의 초상 GREAT GREY’에서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어른이란 호칭은 스스로 붙일 때보다 상대가 자신을 어른으로 인정하고 불러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며 “단지 나이가 많아서, 연차가 쌓여서 혹은 직급이 높아서 자연스레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전합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인 어른’의 문제는 상대가 어른이라고 인정하기도 전에 자신을 이미 어른이라고 규정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흔히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인생 선배의 한 마디는 상황의 부조리나 모순을 관행으로 덮는 데 동원된다. 마주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은 똑같은데 변명만 늘어가는 게 어른의 모습이라면 아무도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생각해봅니다. 앞으로 쓰여 나갈 ‘어른이의 동화’에서 ‘괜찮은 어른’의 선제조건은
‘스스로 대접받기를 포기한 어른’일 것이라고. 상대와 소통하고, 상대를 충분히 어른으로 대접했는가를 스스로 반문할 수 있는 어른. 이제 당신은 정말 ‘괜찮은 어른’이 될 준비가 되셨나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3호(2019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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