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미·중 무역전쟁에 중국이 꺼내든 반격카드는 희토류다. 현재 비축량, 생산 규모, 수출량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중국 스스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이 1992년 1월 남순강화(南巡講話) 때 언급한 말이다. 희토류(稀土類)는 말 그대로 희귀한 흙으로, 정확한 명칭은 ‘희토류 원소 또는 금속(rare earth elements or metals)’이다. 원자번호 57번부터 71번까지 란탄 계열 15개 원소와 21번 스칸듐 및 39번 이트륨을 합친 17개 원소를 통틀어 일컫는 희토류는 열과 전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전기, 전자, 광학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사용된다.
화학적 성질이 비슷해 분리하기 어렵고, 천연적으로 서로 섞여 산출되는 양이 아주 적다. 희토류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고온 초전도체, 하이브리드 자동차, 풍력발전 터빈, 휴대전화,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항공기부품, 광학렌즈, 컴퓨터 디스크, 특수자석, 석유화학 촉매제 등 21세기 첨단 산업에 두루 쓰이는 핵심 원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용되는 분야를 보면 유로퓸은 액정표시장치(LCD)에 들어가며, 에르븀은 광섬유 케이블에서 광신호를 증폭시키는 작용을 돕는다. 이트륨은 발광다이오드(LED) 제작에 사용되며, 란타늄은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핵심 소재다.
네오디뮴과 디스프로슘은 전기자동차에 장착되는 모터 생산에 필수적인 물질이다. 테르븀은 저에너지 전구에, 세륨은 디젤엔진 촉매 변환 장치를 만드는 데 각각 들어간다. 또 스텔스 전투기, 미사일, 레이더, 야간투시경, 레이저 등 각종 군사용 장비와 무기를 제조하는 데도 사용된다. 희토류는 이런 용도 때문에 ‘첨단 산업의 비타민’이라고 불린다. 희토류는 이런 점에서 볼 때 21세기 첨단 산업의 성패를 좌우할 전략 자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희토류는 또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광물에 속한다.
그런데 희토류는 채굴이 어렵고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때문에 생산하는 국가들이 많지 않다. 세계 희토류 생산량은 지난해 기준 17만 톤(t)으로 이 가운데 중국이 71%인 12만 톤을 생산했다. 호주(2만 톤)는 물론 미국(1.5톤)도 희토류를 생산하지만 중국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중국은 현재 희토류 비축량, 생산 규모, 수출량에서 압도적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세계에서 유통되는 희토류의 절반이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바오터우(包頭)에 있는 바얀오보 광산에서 나온다. 중국 남부의 소규모 광산들이 나머지를 생산한다. 희토류 중 디스프로슘과 테르븀은 99%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따라서 석유 부국인 중동 국가들이 전 세계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듯이, 중국도 21세기 첨단 산업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는 셈이다. 덩샤오핑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대미 보복 위해 ‘희토류 카드’ 꺼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월 20일 미·중 무역 협상의 중국 대표인 류허 부총리를 대동하고 장시성 간저우시에 있는 희토류 가공 업체인 진리(金力)영구자석과기유한공사를 방문해 “희토류는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다”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간저우는 중국 내 주요 희토류 산지이자 가공 공장이 밀집한 곳이다.
시 주석의 시찰 이후 중국 경제정책 계획과 집행을 담당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5월 28일 미국을 겨냥해 희토류를 보복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6월 4, 5일 이틀간 3차례에 걸쳐 희토류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을 불러 대미 보복카드로 활용할 경우 예상되는 파장 등을 논의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은 이미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 중국의 5월 희토류 수출량은 3640톤으로 전월보다 16%나 감소했다. 사실상 희토류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연간 기준 1만1000톤 규모의 희토류를 수입하는데, 중국이 80%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엔 희토류 정련 공장이 한 곳도 없고, 캘리포니아주 마운틴패스 광산에서 희토류 채굴만 이뤄지고 있다. 중국이 사실상 희토류 카드를 꺼내든 것은 이처럼 희토류가 미국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10년 동중국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가쿠열도)를 놓고 일본과 영유권 분쟁이 고조됐을 때도 희토류 수출 중단 카드로 일본을 압박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 해상자위대 순시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해 중국 어선이 일본 해상보안청에 나포됐었다. 중국 정부는 자국 어선의 선장과 선원들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법대로 처벌했다면서 이를 거부했다.
이에 맞서 중국 정부가 희토류 수출을 전격 중단하자 일본 정부는 사태 발생 18일 만에 선장과 선원들을 석방하면서 손을 들었다. 중국 관영 언론 매체들은 “반도체 산업처럼 희토류 산업도 단기간에 일으킬 수 없다”며 “미국이 희토류 산업 체인을 건설하려면 15년이 걸릴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희토류 카드를 꺼낸 다른 이유는 미국 정부의 관세 조치에 대응할 실탄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7월과 8월 각각 340억 달러, 16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맞서 중국 정부도 동일한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동일한 보복관세로 대응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9월 2000억 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관세 10%를 부과하자, 중국 정부는 이에 맞대응해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5~10%의 관세를 매기며 보복했다. 미국 정부가 5월 10일 2000억 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25%로 올리자, 중국 정부도 6월 1일 미국산 제품 600억 달러어치에 대해 품목별로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맞대응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앞으로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국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이 총 5395억340만 달러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에서 수입하는 제품 전체에 관세를 매기겠다는 말이다.
반면 중국 정부는 더 이상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없는 입장이다. 중국의 지난해 대미 수입액이 1135억 달러였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11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5~25%의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중국 정부로선 결국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비장의 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희토류 수출 통제가 ‘전가의 보도(傳家之寶)’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통상 전문가들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이 단기적인 충격을 줄 수 있지만, 미국은 대안을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전문가인 메리 B. 티가든 선더버드 글로벌 경영대 교수 겸 부학장은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며 “대안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케이토(Cato)연구소의 사이먼 레스터 부소장도 “단기적으로 혼란이 유발될 것”이라면서도 “미국 기업들은 방법을 찾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희토류 대비 카드는
중국 정부의 희토류 카드에 대비해 왔던 미국 기업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화학 기업인 블루라인은 호주 희토류 생산업체 라이너스와 합작기업을 세워 미국에 희토류 정련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라이너스는 호주 마운트 웰드(Mount Weld) 광산에서 희토류를 채굴해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정제한다. 존 블루멘털 블루라인 최고경영자(CEO)는 “합작기업은 미국과 전 세계에 안정적으로 희토류를 공급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 합작기업은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생산 규모가 가장 큰 희토류 업체가 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는 희토류의 자국 내 생산을 늘리고 각국과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대책을 마련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상무부는 6월 4일 공개한 ‘중대 광물의 안정적 공급 확보를 위한 정부 전략’ 보고서에서 자급자족 체계 구축을 위한 61개 정책을 제시했다.
상무부는 또 캐나다, 호주,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과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미국이 희토류의 해외 공급망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군사 및 경제 분야 양쪽에 잠재적인 전략적 취약 지점이 됐다”면서 “비축량 확대 등 단기적인 대책과 광물 탐사 및 채굴과 관련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미국 내 제조업 공급망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로스 장관은 “정부는 희토류 등 필수불가결한 광물들의 공급이 끊기는 일이 없도록 하는 전례 없는 계획들을 추진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국방부도 방산물자 생산법에 따른 ‘희토류 보고서’를 백악관과 의회에 제출하고 미국 내 희토류 생산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며, 아프리카 등에서 희토류 공급망을 물색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말라위의 ‘음캉고자원’, 부룬디의 ‘레인보희토류유한회사’ 등 전 세계 희토류 업체들과 전략 광물 공급을 논의했다.
영국 런던 소재 시장조사 업체인 로스킬의 희토류 전문가 데이비드 메리맨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은 당시 호주 등 다른 나라들에서 해결책을 찾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이 2010년 희토류 수출 쿼터를 40%로 제한한 뒤 가격이 급등하자 다른 국가들도 다시 희토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희토류 생산업체가 늘어나면서 전 세계 희토류 생산량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97%에서 지난해 70.6%까지 낮아졌다. 대신 호주(11.8%), 미얀마(2.9%), 러시아(1.5%), 인도(1.1%) 등이 희토류 생산 비중을 높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 정부의 희토류 카드가 자칫하면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중국 정부의 희토류 전략 무기화가 탈(脫)중국화를 부추겨 다른 희토류 생산 국가들의 반사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희토류 생산과 수출을 축소하면 단가 인상으로 다른 국가들의 생산을 촉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호주, 말레이시아, 말라위 등에서도 희토류 채굴이 최근 들어 활발해지고 있다. 또 베트남, 브라질, 러시아 등에서 희토류 채굴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히라야마 코타 SMBC 닛코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 정부의 대미 희토류 수출 통제는 일시적으로 미국에 피해를 줄 수는 있겠지만 대체품 개발이 더욱 가속화하며 장기적으로는 중국 자신이 타격을 입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미국 웰스파고투자연구소는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는 것은 자기 발에 스스로 총을 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아무튼 중국의 희토류 카드가 오히려 부메랑이 될지 여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희토류가 전략 자원인 만큼 앞으로 이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로서도 미·중 간 ‘희토류 전쟁’이 강 건너 불이 아닌 셈이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0호(2019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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