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노트]섬이 웃는다
[한경 머니= 한용섭 편집장]중년의 세월을 속절없이 지내다 보면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맙니다. 사람이 섬을 꽤나 닮았다는 것을 말이죠. 집과 직장을 쳇바퀴처럼 오가며 존경받는 선배와 든든한 가장으로 잘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인생의 고비 때마다 버텨내야 한다는 중압감과 불안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겠지요. 마치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섬처럼 말입니다.

1000곳이 넘는 우리나라의 섬을 찾아다니며 섬에 관한 시를 써 ‘섬 시인’으로도 불리는 이생진 시인의 <외로울 때>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이 세상 모두 섬인 것을/ 천만이 모여 살아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욕심에서/ 질투에서/ 시기에서/ 폭력에서/ 멀어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떠 있는 섬/ 이럴 때 천만이 모여 살아도/ 천만이 모두 혼자인 것을/ 어찌 물에 뜬 솔밭만이 섬이냐/ 나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우리나라는 전 세계를 통틀어 네 번째로 많은 섬을 갖고 있는 나라로 총 3348개의 섬이 있으며, 그중에 사람이 사는 유인도만도 472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이미 더 많은 섬이 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섬은 외롭고 고독한 공간이기만 했을까요. 섬도 가끔 바다를 건너는 철새들을 만나고, 멸종 위기의 생물들을 품어주기도 합니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대폿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듯 살을 부대끼면서 말이죠. 섬이 고독과 단절의 공간이기만 했다면 국내 도서 지역 일반 방문자 수가 매년 높은 증가 추세를 보이는 기이한 현상은 없었을 겁니다. 실제 한국해운조합의 연안여객선 이용 현황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 관광객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일반인의 도서 지역 방문자 수는 1319만434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섬을 찾는 이유로 ‘경치’나 ‘힐링(치유)’을 많이 꼽는다고 하니 섬이 주는 정신적인 안정과 휴식에 대한 수요가 상당해 보이네요. 분주한 육지에 비해 섬은 다소 과묵합니다. 눈과 귀를 어지럽혔던 전자기기의 공해도 상대적으로 덜할 겁니다. 말없이 조용히 몸을 감싸주는 해수와 해풍, 자연스럽게 펼쳐진 갯벌과 해조류, 토속적인 삶과 먹거리는 섬처럼 고독했던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친구가 될 겁니다. 섬이 해맑게 웃으며, 바닷바람으로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겠죠. “잘 살아왔다고. 정말 수고했다고.”

이른 무더위 속에 한경 머니가 준비한 7월호 빅 스토리 ‘쉼 그리고 섬’에서 국내 유일의 섬학교를 운영하는 강제윤 교장(시인, 섬 여행가)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잃어버린 고향의 원형, 토속적인 먹거리는 도시인들이 추구하는 힐링(치유)의 트렌드와 부합한다”고 전했습니다.

거미줄처럼 얽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섬처럼 외로웠을 당신, 미소가 그립다면 여행 가방을 싸보세요. 바다 한가운데서 섬들이 활짝 웃으며 반가운 인사를 건넬 것을 상상하면 다시 가슴이 콩닥거릴지도 모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0호(2019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