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지난해 전 세계에서 팔린 전기자동차는 사상 처음으로 200만 대를 넘어섰다. 순수 전기차 시대를 연 미국 테슬라의 모델S가 출시된 지 7년 만의 일이다. 중국의 비야디(BYD)와 미국의 테슬라, 전통적인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숨 가쁜 전기차 전쟁은 뜨거운 열기를 뿜고 있다.
중국 최대 전기자동차 회사인 비야디(比亞迪)의 이름은 상당히 독특하다. 창업자인 왕촨푸(王傳福) 회장은 ‘Build Your Dream(당신의 꿈을 설계하라)’는 영어 모토의 약자인 BYD의 중국어로 이 회사의 이름을 지었다.
왕 회장은 말 그대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66년 중국 안후이성의 한 시골 마을에서 목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마치기도 전인 13세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었다. 이후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형 왕촨팡(王傳方)은 학교를 중퇴한 뒤 동생의 학업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형의 헌신적인 지원 덕분에 왕 회장은 1983년 현 중난(中南)대의 전신인 중난채광야금대학 야금물리화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1987년 베이징의 비철금속연구원에 들어가 배터리에 대한 연구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왕 회장은 26세에 실험실 부주임으로 승진하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다.
왕 회장은 1993년 비철금속연구원 산하 배터리 회사인 비거(比格)전지유한공사 대표로 임명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는 앞으로 배터리 분야가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1995년 사촌 형에게 거금 250만 위안(4억 원)을 빌려 광둥성 선전의 낡은 차고에서 충전용 휴대전화 배터리를 생산하는 BYD를 설립했다. 당시 휴대전화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BYD는 2003년 글로벌 2위의 휴대전화 충전용 배터리 생산업체가 됐다.
배터리 회사로서 입지를 다진 왕 회장은 2003년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경영난에 빠진 국영 시안친촨(西安秦川) 자동차 지분 77%를 2억6900만 위안에 인수해 전기차 분야에 뛰어들었다. 배터리 분야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자동차 시장의 미래인 전기차에 접목시키겠다는 야심 찬 도전이었다. 때마침 운도 따랐다. 중국 정부가 2004년 자동차 공장 신설 투자액을 2억4000만 달러 이상으로 제한하며 진입 장벽을 높였고, 친환경 자동차를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면서 BYD는 5년간(2004~2008년) 매출이 매년 2배씩 늘어나는 등 크게 성장했다. 게다가 ‘투자의 귀재’라는 말을 들어온 워런 버핏 미국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2008년 9월 2억3000만 달러를 투자해 BYD 지분 10%를 인수했다.
당시 버핏 회장은 “BYD는 자동차의 미래를 대표하는 업체다”라고 극찬했다. 실제로 BYD는 2008년 말 세계 최초로 양산형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용차 ‘F3DM(Dual Mode)’을 선보이며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F3DM은 1회 충전으로 80~100㎞를 주행할 수 있었다. BYD는 이어 2011년 순수 전기차인 ‘E6’를 시장에 선보였다. BYD는 2015년 총 6만3000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미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5만557대)를 제치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11%)를 차지하기도 했다.
BYD의 고속 성장은 기술을 중시하는 왕 회장의 경영 방식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전기차를 다른 회사의 절반 가격에 판매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기술 개발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평소 BYD 기술자들을 ‘나의 자본’이라면서 중시했다. 왕 회장 스스로 BYD의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다.
찰스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은 왕 회장을 “발명가 에디슨과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을 합친 듯한 사람이다”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기술가와 경영자의 면모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왕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꿈’이다. 회사 이름을 BYD라고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설립 당시 20여 명이었던 종업원들의 숫자가 현재 22만 명에 달하는 BYD는 세계 최대의 전기차 회사라는 말을 듣고 있다.
◆ BYD vs 테슬라, 선두 다툼 치열
전기차 시장조사 업체인 EV세일즈에 따르면 BYD는 지난해 22만9338대를 판매해 테슬라(24만5240대)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특히 BYD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테슬라를 넘어섰다. 중국 선전증권거래소와 홍콩증권거래소에 따르면 BYD A주(내국인 전용 주식)와 홍콩 증시 주식은 올 들어 9%와 6.4%씩 각각 상승했다.
이 덕분에 시가총액이 4월 29일 종가 기준으로 선전 증시에선 1455억 위안(25조827억 원), 홍콩 증시에서 1661억 홍콩달러(24조6000억 원)로 417억 달러(48조5000억 원)를 기록한 테슬라를 간발의 차로 앞섰다. 게다가 BYD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의 영자 일간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BYD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은 7억4973만 위안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2%나 폭증했다. 1분기 매출액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5% 늘어난 303억400만 위안에 달했다. 1분기 판매량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2% 증가한 11만7578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중국 전체 자동차 판매량이 11.32% 줄어든 것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더군다나 BYD의 신에너지 자동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7% 늘어 중국 전체의 신에너지 차 판매 증가율(109.7%)을 훌쩍 넘어섰다. 왕 회장은 “2분기에도 신에너지 차 판매가 호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상반기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3~244% 증가한 14억5000만~16억5000만 위안에 이를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가 시내버스와 택시를 점차 전기차로 바꾸는 것도 호재가 됐다. BYD 본사가 있는 선전시는 전체 시내버스와 택시를 전기차로 운행할 계획이다. BYD는 현재 한국을 포함해 50여 개국에 전기버스를 공급하고 있다.
BYD의 주력 사업인 전기차 배터리 사업도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분기 전기차 배터리 공급량은 4기가와트시(GWh)로 시장점유율 30%를 차지했다. BYD는 내년 전기차 배터리 생산량이 65기가와트시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BYD의 주가 전망도 밝다.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는 홍콩 증시의 BYD 주가 목표를 기존 50홍콩달러 선에서 70홍콩달러 선으로 상향 조정했다.
반면 BYD와 경쟁해 온 테슬라는 부진의 늪에 빠져 있다. 테슬라는 지난 1분기 7억2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3%가 늘어난 45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보조금이 줄면서 영업손실 5억2000만 달러(6075억 원), 순손실 7억 달러(8177억 원)를 나타냈다. 테슬라의 영업적자는 시장 추정치의 3배에 이른다.
테슬라의 1분기 판매대수는 6만3000여 대로, 전년 대비 110% 증가세를 나타냈다. 모델3의 판매는 대폭 증가했지만, 고마진 모델인 모델S와 모델X의 합산 판매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45% 줄었다. 미국은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의 세액을 공제하는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올 초부터 절반 이상을 줄였다.
미국 온라인 매체 쿼츠는 “BYD와 대조적으로 경쟁자인 테슬라는 큰 손실을 기록했다”면서 “이달 초 미국에 이어 최근 중국에서도 주차된 모델S 차량에서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는 등 악재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테슬라는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20억 달러(2조329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테슬라는 5월 2일 미국 증권당국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이 같은 자금조달 계획을 밝혔다. 신주 발행을 통해 6억5000만 달러를, 전환사채 발행을 통해 13억5000만 달러를 각각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신주 발행 규모는 270만 주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신주 발행 가운데 1000만 달러어치를 매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전기차 판매 200만 대 시대, 경쟁 본격화
BYD의 급성장은 중국 정부의 ‘전기차 굴기’ 정책 덕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로이터통신의 금융분석 사이트 브레이킹뷰스는 “BYD의 늘어난 순익의 절반이 정부 지원금에서 나왔다”면서 “이는 지속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해 전기차 대당 7900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 때문에 전기차 구입 가격은 중산층이 살 수 있는 1만500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앞으로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을 높이고 보조금 규모를 줄이겠다”면서 “2020년 이후 전기차 보조금을 전면 폐지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BYD와 테슬라를 비롯해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이 때문에 올해 4월 16일 개막한 상하이 모터쇼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물론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됐다. 왕 회장은 개막식에서 “앞으로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석권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시장분석기관 S&P글로벌플랫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팔린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포함)는 사상 처음 200만 대를 넘어섰다. 2017년 연간 판매대수 100만 대를 돌파한 뒤 1년 만에 2배로 뛰어오른 수치다.
일본 도요타가 1997년 최초의 양산형 하이브리드차인 프리우스를 출시한 지 22년, 순수 전기차 시대를 연 미국 테슬라의 모델S가 출시된 지 7년 만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올해 390만 대에서 2025년엔 2억 대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도 올해 4%에서 2025년 18.9%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다. 중국에선 지난해에만 전년 대비 61.7% 증가한 130만 대의 전기차가 팔렸다. 따라서 BYD, 베이징자동차(BAIC), 상하이자동차, 지리자동차 등 중국과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이 피 튀기는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테슬라의 경우 현재 건설 중인 상하이 공장이 완성되면 내년부터 연간 50만 대의 양산 능력을 확보해 본격적인 중국 전기차 시장 공략에 나설 예정이다.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인 독일의 폭스바겐도 “내년부터 중국에서 전기차 40만 대를 판매하고, 2025년까지는 연간 150만 대를 판매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폭스바겐은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 ‘ID. 룸즈’를 상하이 모터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이 차는 한 번 충전으로 최대 450㎞까지 주행할 수 있으며 2021년부터 중국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첫 순수 전기차인 SUV ‘EQC400’을 중국에 처음 전시했다. BMW는 순수 전기 레이싱카 ‘iFE.18’을 최초로 공개했다. 인피니티는 전기 세단 콘셉트카 ‘Qs 인스퍼레이션’을, 제너럴모터스(GM)는 뷰익 모델의 순수 전기차를, 닛산은 오는 8월 판매를 시작하는 중국 전용 순수 전기차 ‘실피’를 공개했다. 현대자동차도 SUV 코나의 중국형 모델 엔씨노 전기차와 중국형 아반떼 링둥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을 처음 공개했다. 아무튼 BYD를 비롯해 중국과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 간의 대전(大戰)이 벌어질 예정인 가운데 왕 회장의 포부가 실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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