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부부가 이혼의 징후를 느낄 때는 언제이며, 무엇이 둘을 멀어지게 한 걸까. 많은 부부들이 이혼의 사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성격 차이’가 아니라 ‘상대의 무시’였다고 한다. 결국 ‘결혼’이라는 울타리를 부수게 하는 것은 소통의 부재였던 것이다.
최근 한 결혼정보 회사에서 재혼을 희망하는 돌싱 남녀 532명에게 ‘언제 이혼의 징후를 느꼈나’를 설문조사했다. 결혼생활 중 이혼의 징후로 남자는 ‘상대의 무시’를 가장 많이 꼽았고, 여자는 ‘배우자의 역할을 제대로 안 할 때’를 들었다. 남자들이 두 번째로 많이 꼽은 이혼의 징후는 섹스리스(23.7%)였고, 시비조 말투, 역할 태만 순이었다. 그에 반해 여자들은 상대가 외면할 때(26.3%) 많은 위기감을 느꼈고, 외박, 시비조 말투 순이었다.
실제로 부부 상담을 해보면 이혼을 앞둔 부부들이 가장 많이 거론하는 것은 ‘성격 차이’가 아니라 ‘상대의 무시’다. 세상에서 가장 나와 가까워야 할 아군인 배우자가 나를 무시하고 외면할 때 부부는 같이 살아갈 동력을 잃어버린다. ‘헌신’이며, ‘희생’이며 하는 아가페적 사랑을 사랑의 제일로 치는 사람들조차 자신을 늘 무시하는 배우자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기애’가 가장 강한 존재들이다. 상대를 위해 하는 것 같지만, 기실 사랑도, 섹스도, 오르가슴도 내가 내 것을 할 뿐 상대의 느낌을 어떻게 알겠는가.
결국 평생의 사랑을 약속하고 다짐했던 부부들에게 ‘결혼’이라는 울타리를 부수게 하는 것은 바로 소통의 부재이며 잘못된 방식의 표현, 즉 잘못된 소통이다. 부부간에 할 수 있는 소통 방식은 대화로 하는 소통과 몸과 마음을 합쳐 하는 섹스가 있다.
연애를 할 때 그렇게 대화가 끊이지 않던 다정한 커플도 결혼 연차가 많아질수록 대화가 줄어든다. 영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1시간에 대략 50분 정도를 대화의 시간으로 사용하던 커플들도 결혼의 시간이 경과할수록 대화에 할애하는 시간은 짧아지는데, 결혼 직후는 1시간 중 40분, 결혼생활 20년 부부의 평균적인 대화는 21분, 30년 된 부부는 16분, 그리고 50년 된 부부는 단 5분 정도라고 한다.
같이 사는 동안 이심전심이 돼서 더는 말로 하는 대화를 통하지 않고서도 상대를 이해하게 돼서일까? 그나마 대화를 중시하는 영국도 이런데 부부간에 대화를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우리나라는 이보다 훨씬 짧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대화를 나누어도 아이들, 시댁, 일, 돈 이야기 등으로 그야말로 부부간에도 비즈니스적인 대화를 할 뿐 자신의 감정이나 상대와의 관계와 비롯된 대화다운 대화를 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몸과 감정을 나누는 ‘섹스’
필자는 부부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에서 자주 ‘나는 배우자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는 퀴즈 작업을 한다. 상대가 지금 좋아하는 연예인, 상대가 요즘 친하게 지내는 친구, 상대가 요즘 힘들어 하는 일, 상대가 좋아하는 반찬, 상대의 18번 노래 등을 짐작해 쓰게 한 후 바꿔 채점하게 하는 것인데, 자신의 배우자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자신하던 참가자들도 채점 후에는 무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 누구도 어제와 같은 사람은 없다. 사람은 늘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며칠만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아진다. 그러니 우리는 같은 사람과 살지만, 늘 새로운 사람과 사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대화를 해야 한다.
또 대화를 할 때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상대에게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상대가 말할 때 이미 나의 답을 준비하느라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대화를 한다고는 하는데 결국 자기말만 하고 ‘불통’임을 가슴 아프게 확인하고 서운해하곤 한다.
대화의 기본은 ‘잘 들어주기’이며 상대의 말을 되돌려주고 확인하며 천천히 나아가는 소통의 방식이다. 특히 여자는 말을 충분히 하면 행복해진다. 아내와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그녀의 존재를 외면당한다고 생각한다.
부부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소통 방식은 ‘섹스’다. 남자들이 두 번째로 많이 꼽은 이혼의 징후는 ‘섹스리스’였다. 여자들도 그와 다르지 않아서 ‘배우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안 할 때’와 ‘외면’을 선택했지만 이 안에 섹스리스가 포함돼 있다고 본다.
남자가 배우자로서 할 역할이 뭔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돌보고,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닌가. 여자는 사랑을 형이상학적으로 말하고 남자는 사랑을 섹스라 말한다지만, 실은 둘 다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랑과 섹스의 거리는 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화가 잘되기 때문에 우리는 섹스 없이도 잘 산다”고 말하는 부부도 속을 들여다보면 허전함과 무시되는 느낌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규칙적인 섹스를 하던 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섹스가 없어지고, 그것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성적 긴장이 쌓이게 되고 거칠어진다. 그러면 서로 견주게 되고, 좋게 말이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섹스리스는 싸움으로 이어지고, 싸움은 섹스리스로 이어진다. 이것은 섹스가 단순히 몸만이 만나 성욕을 푸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섹스는 몸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고, 나의 존재를 사랑스럽게 인정받는 것이다. 그래서 섹스가 없어지면 상대가 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처럼 생각되고, 자신이 성적인 매력이 없어진 것인가 하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또 그 기간이 길어지고 배우자가 자기를 자꾸 거부하고, 외면하게 되면 밖에 다른 사람이 생겼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즉, 누구랄 것도 없이 섹스가 없어지면 결국 사랑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상대가 섹스를 피하고, 거부하는 것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대답한 남편들이 많다. 남편에게서 섹스를 빼앗는 것은 그의 사랑을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아내에게도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말로 하는 것만큼 몸으로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섹스는 사랑의 표현이고 확인이다. 우리는 섹스라는 몸과 마음의 소통을 통해 그 사람과 한 마음으로 결속되고, 더욱 친밀해지며, 자존감이 높아지고, 행복해진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 일러스트 전희성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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