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건강할지언정 현대인의 고질적 질병,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치료 전문가인 오스테인과 에리치는 현대인들이 건강하지 못한 원인을 급속한 도시화에서 찾는다.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단절시키면서 ‘현대인들의 마음과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 간의 부조화’가 우리를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병들게 하고 나약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30대 산림청장을 지낸 신원섭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는 우리 국토의 64%인 ‘숲’이 그 부조화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에게 숲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주는지 환경 자원과 경제 자원을 넘어 숲의 사회적 기능을 조명한다. ‘숲의 전도사’ 신원섭 교수가 안내하는 ‘치유의 숲’,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2017년 공직(산림청장)에서 내려온 뒤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다시 학교로 돌아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전공인 산림복지 분야는 숲을 통해 국민의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쓰이는 학문입니다. 최근에는 숲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민들과 만나 강연과 상담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 교수님이 숲을 조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간의 정체성을 돌아보고 삶의 모습을 재조명하는 데 중요한 자원이 바로 숲입니다. 많은 분들이 숲을 경제적 자원이나 환경적 자원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 숲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에 근원적인 답을 제시합니다. 숲은 인류가 쭉 살아온 모태, 즉 고향입니다. 인류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은 인간이 약 200만 년 전에 동아프리카 사바나 숲에서 출현했다고 주장합니다. 숲의 풍부한 물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었을 뿐 아니라 인간을 맹수와 같은 자연의 적에게서 보호해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랬던 인간이 숲으로부터 나온 것은 약 1만 년 전에 불과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시간을 자연의 일부가 돼 보내다가 농사를 시작하면서 거주지를 옮기게 된 것이지요. 인간사의 대부분이 숲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진화적인 측면에서도 우리 인간은 숲에 최적화된 유전자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숲(자연)에서 멀어진 현대인들이 숲으로 들어갈수록 깊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유전적 성향이 숲에 최적화됐다는 말이 다소 낯설게 들립니다.
“숲이 현대인의 정신적 나약함과 육체적 질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해준다는 사실은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실증하고 있습니다. 윌슨의 ‘바이오필리아(biophilia)’ 가설이 대표적인데요. 바이오필리아란 생명을 뜻하는 바이오(bio)와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philia)의 합성어로, 인간의 마음과 유전자 속에 자연에 대한 애착과 회귀 본능이 내재돼 있다는 학설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자연은 인간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물질을 공급하므로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연에 의존해야 합니다. 도시의 인공적인 환경보다 자연적인 환경을 더 선호하고, 여유가 된다면 그런 자연환경에 살고 싶은 인간의 심리가 이를 증명하는 것이지요.”
-산림 치유 연구에 중점을 두고 계신데요. 산림 치유란 무엇인가요.
“산림 치유란 숲에 존재하는 다양한 환경요소를 활용해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회복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산림 치유가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란 질문은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숲은 현대의학이 지닌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고, 많은 사람들의 체험을 통해 그 효과가 증명되고 있으니까요. 지금의 연구는 어떻게 그러한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입증해내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지요. 2011년 설립된 충북대학원 산림치유학과는 숲의 어떤 기능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지에 대해 수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복합적인 성격을 띤 학문이기에 임학박사를 중심으로 의학, 인문,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교수진으로 합류해 연구를 진행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구 결과들은 단순 이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치유의 숲을 디자인하거나 숲 치유 프로그램 조성에 반영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숲이 주는 효능이 궁금합니다.
“산림 치유 효과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실증 연구들은 숲이 우울과 불안 등의 정신적 질환뿐만 아니라 고혈압 등과 같은 육체적 질병에 효과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숲에서의 활동은 자연살해세포(NK세포) 수와 활력을 높여 면역력을 증가시켜 건강을 유지시킬 뿐만 아니라 빨리 질병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실제 일본 니혼의과대 연구팀이 도시 직장인에게 산림욕을 하게 한 뒤 세균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제거하는 NK세포의 활성도를 조사한 결과 산림욕 전 18%에서 산림욕 첫날 21%, 둘째 날 26%로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숲속의 지형,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음이온·산소 등의 건강물질,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심리적 탈출, 새소리·물소리·바람소리 같은 감각 요소 등을 활용한 숲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분명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에 특히 효과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얼마나 빠르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인데, 정답은 숲뿐입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면 네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숲은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요. 먼저 스트레스를 받은 곳에서 벗어나는 일이 중요합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회피하려면 집도 예외가 돼서는 안 됩니다. 그럼 어디로 벗어나야 하는가. 아름다운 지역으로 벗어나야 합니다. 오염이 있어서는 안 되고 깨끗한 곳이어야 하지요. 또 협소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면적을 갖춘 곳으로 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벗어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바로 숲입니다. 사람들은 숲에서 걱정거리를 잠시 접어둠으로써 혈압이 내려가고 스트레스 호르몬 양이 낮아지는 등의 생리적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이 도심에서 멀어져 숲을 선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입니다. 깊은 산에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생활권 주변에서 얼마나 쉽게 숲을 접하느냐가 선진국을 논하는 하나의 기준입니다. 숲을 활용해 일상에서 쌓인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바로바로 회복할 수 있느냐, 숲이란 건강 자원에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느냐가 잘 사는 나라인지, 국민이 행복한 나라인지를 구분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도심생활권 주변에 숲을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정부가 도시숲을 많이 조성하고 있지만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숲은 도시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산 주변에 많이 있기 때문에 이용에 장애가 있지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자투리땅을 도시숲으로 만들어 시민과 공유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강구해야 합니다.”
-거동이 불편해 숲을 이용할 수 없는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꼭 직접 숲에 가지 않더라도 숲의 치유 효과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진행된 많은 연구들은 숲 사진을 통한 시각적 체험만으로도 간접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창밖의 숲을 본 환자가 그렇지 못한 환자에 비해 회복력이 훨씬 빠르고 통증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빈도도 매우 낮았다는 연구 결과와 창밖의 숲을 본 수감자들이 그렇지 못한 수감자들에 비해 발병 횟수가 적었다는 연구 결과들이 대표적이지요. 창을 통해 숲을 볼 수 없다면 최소한 숲 사진이라도 붙여 놓으면 다소 감정이 안정되고 긍정적으로 바뀌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주변에 조그마한 식물을 키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실내 식물이 작업 능률성과 직업 만족도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유명하지요. 최근에는 간접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가상현실(VR)을 통한 숲 연구도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혈압이나 맥박 등 생리적 지표에서 상당한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숲 전도사’가 추천하는 국내 최고의 숲이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첫 치유의 숲이 자리한 경기 양평의 산음자연휴양림입니다. 국내 최초의 치유의 숲이다 보니 아무래도 애착이 큽니다. 전남 장성의 편백나무 숲도 치유의 숲길이 많이 있는 곳이고요. 대형 프로그램 위주의 산림 치유를 받으려면 경북 영주 국립산림치유원 다스림을 방문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은 숲은 가까운 숲입니다. 저 역시 매일 퇴근길에 집 근처 뒷산에 오르는 일을 가장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 신 교수님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는 국가 주도로 산림복지 체계나 법률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복지 자원으로서의 숲이 일자리가 되고, 수익이 되고, 산업이 되려면 민간에서도 많은 직업들이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는 산림 치유와 접목돼 상담치료사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치의처럼 심리 상담을 하고, 숲속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우울할 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찾듯이 새로운 활력을 찾고자 할 때 산림치유지도자들을 쉬이 찾을 수 있도록 치유의 숲뿐 아니라 가까운 곳에 산림치유지도자들을 배치해 숲 치유 프로젝트를 활성화시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산림 치유가 각 분야에 접목되면 보다 효과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이 과정에서 산림을 가진 분들이 혜택을 받고 산림을 통해 국민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습니다.”
◆신원섭 교수는…
충북대 임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캐나다로 유학길에 오르면서 사회적 가치로서의 숲을 조명했다. 이후 1993년 충북대 농과대학 산림과학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조교수와 핀란드 국립산림과학원 방문연구원, 한국산림치유포럼 부회장을 지냈으며, 지난 2013년 3월부터 2017년 7월까지 30대 산림청장을 역임하는 등 산림복지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현재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 겸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산림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6호(2019년 03월) 기사입니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