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의 중심부에 위치한 센트럴파크. 지금은 뉴욕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연간 2500만 관광객이 찾는 세계 최대의 도심공원이지만, 170년 전인 1850년대에는 채석장이자 무단 입주자들의 판자촌으로 시의 골칫거리에 불과했다. 당시 뉴욕시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의 골칫거리를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결심했다.
3.34㎢의 장방형 부지에 10만 수레의 돌과 흙을 퍼붓고, 50만 그루가 넘는 나무와 관목을 심었다. 새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과 풀밭, 인공호수도 함께 조성했다. 빌딩숲으로 가득한 맨해튼의 한가운데에 세계 최대 인공 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여의도 면적(8.40㎢)의 절반, 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노른자위를 공원으로 내준 뉴욕시의 판단은 당시에는 많은 반대에 부딪쳤지만, 170년이 지난 지금은 도시문제를 해결한 선진 모델로 평가받는다. 도시숲이 ‘도시의 허파’이자 ‘삶의 샘’으로서 시민들에게 치유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자연으로
도시숲을 찾는 사람들 최근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책으로 도시숲이 각광받고 있다. 도시숲이란 도시의 생태계를 회복하고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도시에 조성된 숲을 말한다. 환경 및 도시환경 전문가들은 “도시숲이 대기질 개선에 주요 열쇠가 될 수 있다”며 “뉴욕 센트럴파크처럼 최단 시간 내 도심에서 자연으로 이동할 수 있는 도시숲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 축구장 1개 크기인 1만㎡의 숲은 매년 168kg에 달하는 미세먼지(PM10), 이산화질소(NO₂), 이산화황(SO₂), 오존(O₃)을 흡수한다. 나무 한 그루가 연간 미세먼지 35.7g을 흡수하는 꼴인데, 이는 에스프레소 한 잔의 양과 맞먹는다.
도시숲의 효과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미국 뉴욕주립대 환경과학임업대학과 이탈리아 나폴리 파르테노페대 연구진이 공동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 영국 런던,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등 세계의 주요 거대 도시 10곳에서 도시숲이 제공하는 사회적 편익이 연간 5억500만 달러(약 5404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회적 편익 가운데 95%가 넘는 4억8200만 달러가 대기오염물질 저감과 관련된 사회적 편익이었으며, 특히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 저감이 큰 몫을 차지했다.
도시숲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이른바 ‘숲세권’에 대한 수요는 나날이 급증하고 있다. 현실적인 이유로 도심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미세먼지 공습을 피하기 위해 도시의 허파로 모여드는 것이다.
80대 노모를 모시는 김은경 씨 역시 지난해 3월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숲 인근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호흡기 질환을 앓던 어머니의 병세가 미세먼지로 더욱 악화되지는 않을까 우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김 씨는 “서울을 벗어나 외곽으로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아이들의 교육, 직장과의 거리 등 현실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며 “고민 끝에 도시숲과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의 이주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시숲의 혜택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의 64%가 산림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녔지만, 도시 지역 내에서 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생활권 도시림은 산림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실정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서울의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5.35㎡ 수준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권장 기준인 1인당 9㎡에 미치지 못한다. 영국 런던(27.0㎡), 미국 뉴욕(23.0㎡), 프랑스 파리(13.0㎡) 등 글로벌 주요 대도시와 비교하면 국내 생활권 도시림 실정은 더욱 열악하다.
생활권 도시림이 적다는 것은 시민이 일상생활 속에서 녹지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자, 미세먼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도시의 허파, 삶의 샘
‘치유의 숲’으로 가자 도시숲의 필요성은 자연 공기청정기 역할에서 그치지 않는다. 도시숲은 환경 자원을 뛰어넘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건강 자원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맨해튼에 센트럴파크를 설계할 당시 찬성론자들이 반대론자에게 “만약 맨해튼의 중심부에 큰 공원을 설계하지 않으면, 5년 후에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찬성론자들의 말처럼 1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숲은 현대인의 가장 무서운 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로 통한다. 아름답게 우거진 녹색의 휴식공간은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보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산림 치유’라는 개념도 생겨났는데, 피톤치드와 음이온, 햇빛 등 숲에 존재하는 다양한 환경요소를 활용해 인체 면역력을 높이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회복시키는 치유 활동을 말한다.
실제 숲에서 15분간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농도가 15.8% 낮아지고, 혈압도 2.1%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는 산림 치유의 개념을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전국 각지에는 산지를 활용한 ‘치유의 숲’이 곳곳에 조성돼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위치해 도시민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부도 시민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위해 도시숲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확충에 나서고 있다. 올해에는 산업단지와 발전소 주변 등 미세먼지 발생원 주변을 중심으로 도시숲이 조성될 예정이다.
차단숲, 바람길숲 등을 통해 미세먼지 이동·확산을 막아 주변 주거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를 저감한다는 전략이다. 도시 외곽 산림에서 정화된 공기를 도시로 유입해 도시열섬 현상을 줄이는 효과는 물론 도시민의 스트레스 완화에도 최적의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숲과 함께하는 삶이 꼭 거창하거나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의 저자 정재경 씨는 미세먼지 걱정 없는 에코 플랜테리어를 추천한다. 정 씨가 반려식물을 기르면서 집 안 실내 초미세먼지 수치는 10㎍/㎥ 미만인 좋은 상태, 건조한 겨울에도 습도 60% 선을 유지했다. 반려식물이 선사하는 마음의 안정과 행복은 덤이다.
동서양의 많은 학자들은 아주 오랜 기간의 연구 끝에 ‘자연과 재화합하는 것이 인간이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길이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인간이 다시 참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면, 자연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루소의 말을 다시금 생각해볼 때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6호(2019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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