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mporary Art] 작곡가 고태암

작곡가 고태암 (사진 협조:예술의전당)
작곡가 고태암 (사진 협조:예술의전당)
[한경 머니=이현주] 현대 음악의 좌표 가운데 창작 오페라의 세계가 있다. 작곡가 고태암은 관객과 소통하는 현대 음악, 한국의 정서를 담은 우리 음악을 선보이며 창작 오페라의 대중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예술은 시대 구분을 통해 사조를 지닌다. 음악 사조의 변환기에는 늘 핵심 키워드가 부상했다. 일례로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 시대로 접어들었을 땐 인간의 감정이 중요한 화두였다. 작곡가의 감정을 반영한 음악, 특히 예술 가곡이 새롭게 부상했고 더 애타 오르고 끓어오르는 표현들을 하기 시작한 게 낭만주의 후기의 작품들이었다. 감정의 극적인 부분을 위해 대규모 악기 편성도 등장했다.

낭만주의의 끝에서 작곡가들은 기존의 답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열망을 가졌다. 세계대전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되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현대 음악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흔히 현대 음악의 기준점을 조성(調性)의 유무로 판가름하기도 하는데, 기존의 조성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허물어트린 게 무조 음악의 시작이었다.

현대 음악은 시대적인 반영을 통해 만들어졌다. 전쟁 이후의 불규칙하고 파괴된 세계를 음악으로 표현한 게 초창기 현대 음악의 모습들이다. 기존의 규칙이나 전통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음악들이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시도되고 실험됐다. 무조 음악의 시작점에 아널드 쇤베르크라는 작곡가가 있다면 수많은 작곡가들이 그 영향을 받아 각자의 이론적인 발전을 시도했고, 극한의 수학적인 개념 혹은 논리 정연한 음악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1960년대까지 이어진 이러한 흐름은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음악들을 등장시켰지만, 한편 청중과의 괴리를 낳았다. 새로운 이론의 의해 이전에 접하지 못한 창의적인 음악들이 생겨나면서 작곡가의 개별적인 설명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음악들이 나왔다. 해괴하거나 공포스러운 표현들도 등장했다. 낭만주의 때보다 훨씬 더 극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현대 음악적 사고라는 의미에서 표현주의로 불리기도 했다.

20세기를 대표했던 현대 음악 사조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가는 데 200년의 주기가 있었다면 이제 현대 음악에서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 음악의 특징이라면 작곡가 개인의 이론과 사고에 의해 다채로운 모습으로 전개가 가능하다는 것. 무엇을 하든 허용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에서 표현의 다양성, 융·복합 등의 키워드가 부상했다면 지금 작곡가들의 주된 과제는 무엇일까.

청중의 공감과 참여에서 길을 찾는 작곡가들이 저마다의 방법론을 내놓는 가운데, 창작 오페라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는 작곡가 고태암을 만나 현대 음악의 즐거움에 대해 들어봤다.

현대 음악의 즐거움을 말할 때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지금 현대 음악의 흐름에서 중요한 과제는 공감대 형성이라고 보고, 관객과 소통하는 현재의 음악을 하려고 합니다. 표현적으로는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표현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새로운 음악’보다 ‘더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게 작곡가들의 염원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은 작품을 할 때 그 시대를 반영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내용을 반영하려고 하는데요. 여러 가지 사고에 의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행위예술일 수도 있고 다른 예술과 접목해서 복합적으로 또 다른 것을 표현할 수도 있고요. 사회적 흐름에서 융·복합을 얘기하는데, 음악이 음악만이 아니라 다른 매체와 결합해서 또 다른 어떤 복합예술을 표현하는 게 지금 트렌드죠.”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선호하나요.
“알게 모르게 현대 음악이 청중들에게 다가서 있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SF 영화나 괴기 영화들, 공포물의 음향이나 표현이 현대 음악에서 쓰이는 소재와 다르지 않거든요. 사람들에게 익숙한 그런 소재들을 가져와 예술 작품화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실생활에 적용된 소리이기 때문에 보다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죠. <붉은 자화상>이라는 오페라는 그러한 현대 음악의 음향이나 표현을 쓰면서 또 청중들이 이해할 만한 어떤 멜로디나 화성을 복합적으로 고민한 오페라입니다. 사실 오페라는 대중들을 위한 예술이었거든요. 영화가 없던 시절에 서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쓰기 시작한 게 오페라의 역사가 됐습니다. 소재도 어려운 철학이나 관념이 아닌 대부분 사랑 이야기잖아요. 현대 음악에서 오페라를 쓸 때 현대 음악으로만 구성된 작품을 쓴 분들이 많았지만 그 결과 대중과 훨씬 거리가 멀어졌죠. 물론 그렇게 만든 작품의 가치는 상당하겠지만, 예술은 공감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풀어냈나요.
“<붉은 자화상>은 시대적 배경이 조선입니다. 무엇보다 한국적인 음악 소재가 있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우리나라도 전통 음악에 쓰이는 여러 가지 기법들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떠는 음, 농현(弄絃)으로 연주하는 기법에 주목을 했어요. 음을 떠는 강도에 따라서 표현의 폭이 깊을 수 있다는 게 특징이에요. 서양 음악에서도 비브라토라는 비슷한 명칭이 있지만 비브라토와 농현은 악기도 표현 방법도 달라요. 예를 들어서 현악기에서 비브라토 하는 것을 음에 더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인데, 작곡가가 비브라토를 쓴다면 극적인 부분들을 표현하기 위해서겠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극적이기도 하지만 비브라토의 음의 폭이나 깊이가 서양 악기에서 나타낼 수 있는 방법과 달라요. 우리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보면 위아래로 떨면서 ‘오왕~ 오왕~’도 할 수 있지만 ‘오왕!’과 같은 순간적인 표현도 할 수 있죠. 그러한 전통적인 연주 기법을 음악적인 소재의 출발점으로 삼아 하나의 정통성을 가지려고 노력을 했었죠.”

서양 악기로 한국적인 표현을 시도한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습니까.
“<붉은 자화상>은 조선 말기의 윤두서라는 화가의 삶을 조명한 작품인데요. 그가 그린 그림을 보면 화선지에 먹물의 농도에 따라서 퍼지면서 생동감을 얻어요. 윤두서가 그림을 그리는 표현 방법과 우리나라 전통 연주 기법의 소재를 합쳐서 오페라 서곡의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서곡은 전체 음악의 분위기나 제 음악적인 뿌리가 함축적으로 나와 있는 부분인데요. 가장 공들여 작업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먹물이 퍼져 가는 형상을 하기 위해서는 음들이 여러 갈래로 퍼져 나가는 표현을 해야 합니다. 음의 이동을 통해서 움직임을 표현하는, 서양 음악에서는 글리산도라고 하죠. 이와 같이 음이 미끄러지는 형성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또 오페라 아리아 중에서 ‘마음 감옥’이라는 윤두서의 테마곡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의 내용은 몰라도 아리아는 기억하듯이,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아리아를 만드는 게 작곡가들의 희망이겠죠. 이 밖에 피날레 음악도 손꼽고 싶습니다. 합창과 윤두서의 노래가 더해지면서 마지막으로 향하는 음악인데, 가장 극적이면서 슬픈 정서로 마무리되죠.”

왜 굳이 오페라에 한국적인 것을 담으려고 했나요.
“그것은 정통성 때문이에요. 모든 예술가는 정통성을 가지려고 합니다. 저는 뿌리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근원에서 시작을 해서 출발점을 가지려고 하는 거죠. 유럽의 작곡가들도 마찬가지로 유럽의 정통성을 가지고 발전해 왔어요. 서양 음악을 공부했지만 단지 그들의 것을 흉내 낸다면 정통성을 가질 수 없겠죠. 일례로 외국 사람이 창을 부른다고 하면 모방을 할 수는 있어도 똑같을 수는 없잖아요. 발음이나 구강 구조 자체도 다르고 정서가 다르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유럽적인 표현 양식을 가지고 한국의 음악을 만든다면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음악이 된다고 봅니다. 연주자든, 작곡가든 그러한 정통성을 갖는 것이 예술가들의 경쟁력이 됩니다.”

오페라가 한국에 들어온 지 7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창작 오페라는 설 자리가 적은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 오페라를 만든 이유가 있다면요.
“앞서 말씀드린 현대 음악의 공감대 형성 차원에서 오페라라는 장르를 주목했습니다. 오페라는 그 안에 연극, 문학, 음악, 무용 등이 결합되기 때문에 조금 더 청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봤어요. 또 한편으로는 이제는 창작 오페라가 주목을 받아야 할 때가 됐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2018년 우리나라 오페라 70주년을 맞아 성대한 잔치를 벌였지만 70주년에 걸맞은 한국 작곡가의 정통성 있는 작품을 보기 어려웠어요. 한국 음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케이팝(K-pop)이라는 대답을 하는 친구들이 많죠. 저희 같은 작곡가들도 경쟁력 있는 한국 음악을 만들 수 있고, 충분히 브랜드화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음악들을 만들 계획입니까.
“오페라 이외에 가곡이나 합창곡도 만들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기악곡을 많이 썼고 악기에서 오는 세밀한 표현들에 매료가 됐는데, 점차 오페라를 통해서 성악곡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가곡이나 합창, 또는 오페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관객과 호흡하는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작곡가 고태암 (사진 협조:예술의전당)
작곡가 고태암 (사진 협조:예술의전당)
사진 김기남 기자


작곡가 고태암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작곡과 전공을 했으며, 졸업 후 독일에서 유학을 마쳤고, 스위스 바젤 국립음악대(Musik-Akademie Basel), 독일 함브르크 국립음악대(Hochschule fur Musik und Theater Hamburg), 프라이부르크 국립음악대(Hochschule fur Musik Freiburg)를 거쳤다. 특히, 독일에서 리게티 어법과 스펙트랄 음악과 음색적 색채에 대한 어법을 연구했다. 유럽에서 오페라를 쓰기 시작했으며, 연극 작품 <소설헌>이라는 음악극을 통해 극 음악을 인정받았다. 2014년 대한민국 창작 음악의 대표작으로 선정돼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을 통해 현악4중주 ‘상념(像念)’을 연주했다. 2016 오페라 창작산실 최우수 작품으로 오페라 <붉은 자화상>이 선정됐다. 사단법인 한국작곡가협회 이사이며,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4호(2019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