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아트 컬렉터> 김정환 저자 인터뷰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평범한 샐러리맨이 ‘어쩌다 컬렉터’(?)가 됐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면서 작가라는 이름도 얻었다. 그렇게 감상자에서 컬렉터로, 그리고 생산자로 성장하며 ‘안목’을 높인 지식과 경험을 책으로 엮었다. <샐러리맨 아트 컬렉터>의 저자 김정환을 만나 그림을 모으고 그리는 즐거움에 대해 들어봤다.
증권맨, 아트 컬렉터로 ‘인생’에 투자하다
여기 매일같이 화려한 변신을 하는 이가 있다. 낮에는 증권사 샐러리맨으로, 밤에는 화가이자 서예가, 서예 평론가로 낮과 밤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김정환 저자. 이와 같은 특별한 삶을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아트 컬렉션의 노하우를 담은 신간이 <샐러리맨 아트 컬렉터>다.

숫자와 분석이 편한 애널리스트가 왜 감성과 느낌의 세계인 아트에 대해 이야기할까. 김 저자는 “지금까지는 애널리스트로 ‘돈을 잘 버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썼다면, 앞으로는 ‘돈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그중에서도 미술품 감상과 컬렉팅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지름길이다”고 말했다.

컬렉터는 누구이며 미술품을 모으는 이유는 뭘까. 그는 자산가나 미술 애호가뿐만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도 누구나 컬렉터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실제 그는 바쁜 일상 가운데에서도 짬짬이 시간을 쪼개 미술 공부를 했다. 퇴근 이후에는 여의도 증권가를 벗어나 전시회를 찾아다녔고, 미술품 컬렉터로서 또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치는 작가로서 본격적인 궤도를 수정했다.

김 저자는 “컬렉터가 누릴 수 있는 유익 중에서 첫손에 꼽는 것은 좋은 작품을 보는 눈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안목을 높여야 컬렉터로서도, 작가로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 수익은 덤으로 따라온다. 그가 10여 년 동안 수집한 그림들은 대부분 100만 원 내외이고, 판화나 드로잉 작품이다. 그중 어떤 작품은 7~8배의 수익을 가져다줬다. 꾸준히 모으다 보면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포트폴리오 관리’가 되면서 수익은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효과라는 설명.

뒤늦게 미술대학원에 진학하고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 김 저자는 그동안 모은 100여 점 수집품을 통해 작품에 필요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작가의 사인이 담긴 작은 소품이라도 가까이서 보고 즐기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정신적으로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경험담을 풀어냈다.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만큼 작가로서도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했을 터. 그의 작품 세계에는 ‘흑과 백의 조화’가 있다. 흑과 백의 대비를 통해 다양한 감정의 언어, 시어를 표현하는 게 주특기다. 검은색과 흰색이 서로에게 스며들며 자연스러운 번짐을 만들어내는데, 그 번짐이 주는 울림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가 된다.

최근 ‘문화 소비’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가운데 ‘평범한 직장인도 컬렉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셨는데요. 미술품을 수집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미술을 통해 위로를 얻곤 했습니다. 처음엔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전시를 찾아다니는 감상자로 시작했는데, 작품을 사 모으는 컬렉터가 되고 작가가 됐습니다. 처음엔 ‘어쩌다 컬렉터’였다면, 지금은 제 작업의 수준을 더 향상시키기 위해 수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환기 화백은 ‘예술은 미학적, 철학적, 혹은 문학적 학설이 아니다. 예술은 하늘과 산, 그리고 돌처럼 존재하는 것이다’고 했는데요. 예로부터 훌륭한 미술가는 훌륭한 컬렉터이기도 했습니다. 서양에서는 렘브란트가 대표적인 화가이자 컬렉터였고, 고갱은 주식중개인 시절부터 그림을 사 모았죠. 고갱은 열렬한 세잔 숭배자였는데 실제 세잔의 회화 기법에 영향을 받았어요. 인상파 거장인 모네도 화가이자 컬렉터였고요. 국내에서는 생존 작가 중 김종학 화가가 저의 롤모델입니다. 유명한 화가이면서 골동품 수집가죠. 저도 좋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 안에서 작가적인 장점들을 흡수하고 이를 토대로 제 작품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미술품을 수집합니다.”

‘안목이 없을 때 미술품을 수집하는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증권사에 취업을 했는데 하루 종일 자본시장과 주식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게 마땅찮았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갤러리나 미술관을 많이 다녔고 인사동이나 사간동에서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미술품을 수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이라고 하는데요. 주식시장과 비교해서 말하자면 기업에 투자할 때는 지속적으로 성장이 가능한지를 몇 가지 재무제표나 기업 탐방 등을 통해 확인합니다. 미술품을 보는 안목은 지난한 시간과 단계를 밟아 길러지기 마련인데요. 무엇보다 여러 전시나 작품을 많이 보고, 또 여러 번 보면서 유사한 다른 대상과 비교하는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애널리스트로 일하면서 미술 취향을 확립해 나가는 일이 쉬워 보이진 않습니다. 어떤 동력이 있었습니까.
“대학 시절부터 서예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일찍이 서예 작품들을 많이 봐 왔습니다. 글씨를 열심히 써서 대한민국서예전람회에서 특선을 하기도 했어요.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미술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서 한양대 교육대학원에서 미술 이론을 공부하기도 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감상자의 시각에서 미술 작품을 보고 즐겼는데요.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새벽 2시에 택시를 타고 가던 중에 잠시 졸거나 아차 하는 순간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죽기 전에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 그렇다면 미술을 진지하게 해봐야겠다는 결론에 이른 거죠. 전시회를 열 계획으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첫 전시회를 연 게 2008년의 일입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매년 작품을 발표하면서 제 나름대로 고심의 결과물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감상자, 컬렉터, 생산자 입장에 따라 작품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나요.
“감상자 입장에서는 평면만 보지만 생산자가 되면 옆도 보고 뒤도 봅니다. 하나의 상품으로 완성도를 높여야 하고 또 팔려야 하니까요. 컬렉터 입장에서는 소품 하나를 사더라도 작가를 보고 결정하게 되죠. 작가들 중에서도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경우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개성 있는 작품, 또 해당 작가가 최고 전성기 때 그린 작품을 선호하게 되는데 이런 작품들은 가까이 걸어 놓고 보면 어떤 기운이 느껴져요. 그것들이 제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작업에 영향을 미치게 되죠. 예를 들어 추상표현주의를 주도한 빌럼 데 쿠닝(willem de Kooning)의 경우 교과서에서만 보던 화가인데, 1988년에 제작된 판화를 하나 구입할 기회가 있었어요. 데 쿠닝은 92세까지 장수했지만 마지막 10년은 알츠하이머를 앓으면서 말년에 그린 그림이 대체적으로 전작에 비해 저렴한 편이에요. 그는 아픈 와중에도 붓만 쥐어주면 신들린 사람처럼 붓질을 했고 어느 시기보다도 많은 341편의 작품을 쏟아냈다고 해요. 그래서 판화이지만 그 밑에 데 쿠닝의 사인 하나를 보면서 깨닫는 바가 있는 거죠. 처음 한두 점 사 모을 때는 몰랐는데 몇 십 점 쌓여 가면서 그림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같은 작가라 하더라도 완성도나 제작 시기, 작가정신이나 작가의 의도를 보게 되죠.”

실제로 영향을 많이 받은 소장품이 있다면 하나 소개해주세요.
“윤형근 작가의 작품 가운데 <태운 암갈색-군청색의 블루>는 제목부터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 작품은 ‘태운 암갈색’과 ‘군청색의 블루’라는 두 가지 색, ‘물감과 종이의 만남’이라는 단순한 형식을 지니고 있어요. 윤 작가는 생전에 ‘절제된 숭고미와 공간감을 우리 고유의 전통 재료인 한지를 사용함으로써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회화적 실험의 독립적 결과물’이라고 스스로 평가한 바 있습니다. 그는 김환기 화백의 사위예요. 김 화백의 점묘화가 수만 개의 점을 찍고 있다면 하나하나의 번짐이 어떤 정서적인 울림을 주는데 그런 번짐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재밌는 건 화선지, 종이만이 번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거예요. 캔버스에서는 잘 번지지 않아요. 저도 화선지에 번짐을 표현하기 때문에 이러한 작가들의 작품을 더 유심히 보게 되죠. 또 이응노 작가의 선 작업에서도 영향을 받았어요. 이분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서대문에 있던 호암아트센터에서였어요. 고난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작품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다는 것을 알면서 불굴의 작가정신을 존경하게 됐어요. 결국 회화는 선으로 작업이 되는데, 목탄이나 연필을 부러트려서 표현했고 특히 동양의 전통 위에서 서양의 새로운 방식을 조화롭게 접목한 창작 세계를 구축한 점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일과 병행하면서 어떤 식으로 작품 활동을 하십니까.
“2010년도에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좋은 교수님들을 만나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매일 퇴근 후에 2~3시간씩, 주말이면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하고요. 저는 심플한 작업을 선호합니다. 보통 캔버스의 두께가 1.5cm라고 한다면 저는 화선지를 세 겹 정도 붙여서 5cm 정도로 만들어요. 세 겹이 되면 캔버스의 천이 보이지 않고, 톡톡 두들겨보면 둥둥 북소리가 납니다. 여기에 제가 원하는 이미지를 긋기 위해 한 달 동안 묵힌 먹을 사용하고 그 위에 돌가루를 붙이는 작업을 합니다. 화면 자체가 하나의 시어라는 생각으로 소리 없이 시를 읊는다는 뜻에서 제목은 다 묵음으로 붙입니다. 검은색을 중심으로 쓰고 흰색을 최소한으로 사용해서 여백의 미를 살리는데, 재밌는 점은 흰색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화면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화면 안을 주도하는 건 흑인데 백의 쓰임에 따라 감각이 요동친다는 점에서 감상자에게 철학적인 물음을 던져줍니다. 이런 식으로 흑백의 조화에 따라 화면 안에서 감성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가를 주목합니다.”

컬렉션 노하우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합니다.
“주식시장과 비교해서 말씀을 드리면, 주식 열 종목을 산다고 할 때 한두 종목이 올라서 전체적인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제 경우에는 윤형근 작가의 작품이 단색화 열풍과 만나면서 생각지 않았던 투자 수익을 얻게 됐습니다. 미술품을 투자의 목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작품을 보는 안목을 찾으려는 목적으로 수집할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창 서울 인사동에 다녔던 1990년대 후반을 떠올리면 당시 언론에서 각광받고 잘나가던 작가들이 있었어요. 그중에서는 아직까지 작품성이나 대중성을 인정받는 작가도 있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작가도 많습니다. 단기간의 유행을 좆지 말고 긴 안목으로 성장주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동안 저는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많이 말하고 다녔는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돈을 버는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쓰는 법을 모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 작가 사인이 들어간 판화 하나라도 소장하고 감상할 줄 아는 것이 인생을 어떻게 풍요롭게 바꾸는지에 대해서 강조하고 싶습니다. 미술품 컬렉션은 돈이 있다고 해서 완성되는 게 아니라 10년 이상의 긴 안목으로 나만의 취향을 완성하고 컬렉터로서의 색깔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증권맨, 아트 컬렉터로 ‘인생’에 투자하다
김정환 저자는…
낮에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주식시장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로 일한다. 그러나 퇴근 후 저녁 시간과 주말에는 화가, 서예가, 서예 평론가 등으로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한다. 애널리스트로서는 1994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시황 분석(기술적 분석), 스몰캡, 지주회사 분석 등을 거쳐 투자 전략을 담당했다. 저서로는 <차트의 기술>, <주가차트 보는 법>이 있다. 예술가로서는 서울, 인천, 수원, 일본 고베 등에서 8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스코프바젤, 스코프뉴욕 등 해외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묵음>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다.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 작가이며, 서예 전문지 월간 까마의 책임편집위원을 역임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4호(2019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