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퇴직하고 난 후부터 사정이 잘되지 않습니다. 몇 번 문제가 되니까 지금은 솔직히 겁이 나서 아내와의 성관계를 자꾸 미루고만 있습니다. 아내는 괜찮다고 하는데 제 마음이 힘드네요.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요?”
“오랫동안 아내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콘돔이나 피임약을 싫어하는 아내 때문에 매번 질외 사정을 해야만 했지요. 이제 아내는 아기를 갖고 싶다고 말하며 질내 사정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 사정이 안 됩니다.”
조루증만큼 흔하지는 않지만, 사정을 하기 어려운 ‘지루증’으로 상담실을 찾는 이들의 고민이다. 발기와 사정은 다른 기전이라 발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정작 사정이 잘 안 되기도 하고 발기는 안 되는데 사정은 문제가 없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성적 문제가 생기면 점점 성기능에 자신감을 잃어 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자에게 발기와 사정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감뿐 아니라 삶의 의욕조차 사라진다. 그건 남자의 성이 여자보다 더 주도적이길 요구하고, 여자를 만족시켜야 하는 능력과 남자의 자신감이 깊이 연관돼 있기 때문에 그렇다.
◆조루와 지루, 무엇이 문제일까
남자는 성적인 흥분이 높아져서 극치감, 즉 오르가슴을 느끼게 되면 사정을 하게 된다. ‘남성 오르가슴 장애’라고도 불리는 ‘지루증’은 너무 빨리 사정이 되는 ‘조루’와 반대되는 증상으로, 사정을 할 수 없거나 하기 어려운 경우다.
모든 성적 문제는 신체적·심리적·관계적인 문제들이 얽혀 있다. 하지만 지루증의 원인은 대부분 심리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부간의 갈등, 여자에게 임신을 시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여자에게 임신을 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심 등이 ‘지루증’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성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환경에서 성장했을 때도 성행위에 대한 죄의식이나 혐오감이 오르가슴의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억압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성적 행위에 대해 과도한 주문을 하거나 상대 여성이 오르가슴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도 남자에게 지루증의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이외에 술, 항우울제, 항정신병 약물, 항고혈압제의 복용, 드물게는 음경 귀두의 피부가 두꺼워지는 질환 탓에 둔감해져서 오르가슴을 못 느껴 ‘지루증’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같은 오르가슴 장애인 ‘조루증’은 사정의 순간이 너무 짧아서 문제인 경우인데,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한 환자들이 병원에 제때 찾아오기 때문에 약, 주사, 수술 등 효과적인 치료의 방법들이 많이 개발돼 있다. 그런데 지루증인 경우는 환자들이 자신의 약함으로 인식하기보다는 ‘무척 강하다’고 자신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를 빨리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지루증에 대한 적절한 치료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자신의 조절 능력이 뛰어나 사정 시간을 길게 연장한다고 생각했던 지루증 환자들은 결국 사정이 잘 안 되는 것임을 알게 되면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고 실제로 섹스를 피하게 된다. 또한 여자로서도 조루인 상대보다 지루인 경우가 더 힘들다.
여기서 잠깐 사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남자들 중에는 ‘사정을 하지 않는 것이 건강과 정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믿어서 지루증을 병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정액을 배출하지 않고 몸에 비축(?)하는 것이 건강에 더 좋다는 생각 때문인데, 아마도 남자들이 성의 경전으로 철썩같이 믿는 <소녀경>의 ‘접이불루(接而不漏: 섹스를 하되 사정은 하지 말라)’나 ‘환정보뇌(還精補腦: 정액을 되돌려서 뇌를 보강한다)’ 같은 방중술이 그 이유인 듯하다.
하지만 <소녀경>의 ‘방중술’ 대상은 상대해야 할 후궁이 몇 십 명이나 되는 제왕이지 우리 같은 일부일처제의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제왕의 경우는 몇 십 명이나 되는 후궁과의 잠자리를 조절하기 위해서 ‘접이불루’가 필요했을 테고 상대인 후궁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왕이 자신에게 사정을 해서 아들을 얻어야 했기에 기를 쓰고 방중술을 익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액은 되돌린다고 뇌를 보강하는 신비의 물질이 아니라 80~90%의 유기물질, 2~6%의 단백질, 1~2%의 염류, 2% 미만의 지방, 그리고 약간의 남성호르몬으로 이루어진 체액이다. 오히려 사정을 너무 하지 않으면 전립샘 등에 문제가 생긴다. 내부 생식기에 울혈이 일어나서 염증이 생길 수 있고, 통증과 함께 배뇨 활동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서구에서는 ‘Use it or Lose it’ 이란 말로 ‘용불용설’을 주장한다. 규칙적인 사정이 오히려 건강에 좋다. 성기관은 자신의 기능을 원활하게 하고 있을 때 건강하기 때문이다.
위의 두 상담은 심리적인 데서 원인을 찾았다. 회사 퇴직 후 사정이 안 되기 시작한 60대 노신사는 전립샘 비대로 치료를 받기는 하지만 그의 지루증의 원인에는 ‘아내의 지나친 의심과 간섭‘으로 인한 분노, 거듭된 지루의 증상으로 인한 불안감과 함께 익숙해져서 더 이상 자극이 되지 않는 섹스 방식이 주요했다. 뒤의 30대 남편은 모든 면에 이기적인 아내에 대한 분노와 그런 능력 있는 아내와 비교해 무력한 자신에 대한 좌절감이 아내에게 임신을 시키고 싶지 않은 무의식적인 억압과 함께 지루증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였다.
다른 어떤 성적 장애에도 배우자와의 관계 개선과 협력이 꼭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지루증 치료에는 더욱 그렇다. 그와 함께 오르가슴을 높이는 더 자극적인 방법으로서의 체위와 기술 습득도 필요하다. 내담자 스스로 자위행위를 통해 오르가슴을 경험하게 해 불안이라는 감정을 조절하게 하는 것 또한 도움이 된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 일러스트 전희성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2호(2018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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