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콩 확보에 사활을 건 이유는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중국인들에게 있어 돼지고기는 주식과도 같다. 실제 중국은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이자 소비국이기도 하다. 중국 양돈 농가에서 돼지에게 주는 사료가 바로 대두(콩)다. 최근 중국이 콩 확보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이 있다.

중국에서 ‘육(肉)’이라는 글자는 단순히 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를 의미한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에는 대부분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따라서 중국인들의 주식은 돼지고기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중국인들이 경제 발전에 따라 소득이 늘어나면서 돼지고기 등 육류 소비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중국이 농가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4억 마리나 된다. 중국의 돼지 생산량은 전 세계에서 6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양돈 농가의 수는 6000만 가구에 달하고, 전체 양돈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1억 명이 넘는다.

중국 양돈 농가는 돼지에게 주는 사료로 주로 대두(콩)를 사용한다. 대두에서 기름을 짜내고 남은 대두박(콩깻묵)은 단백질이 풍부해 돼지의 사료로 안성맞춤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대두를 수입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대두 수입국이자 소비국이다.

중국의 지난해 대두 소비는 1억1080만 톤으로 전 세계(3억4380만 톤)의 32%를 차지했다. 중국의 지난해 대두 생산은 1420만 톤(4.2%)으로 세계 4위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상당히 부족하다. 이에 따라 중국은 매년 9600만 톤 이상의 대두를 수입해야만 한다. 수입의존도가 무려 87.2%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이 콩을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는 브라질로 전체의 52.8%를 차지했다. 그다음으로 많은 국가가 35.1%를 차지한 미국이다. 금액으로는 140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이 콩 확보에 사활을 건 이유는
◆미·중 관세전쟁에 불똥 튄 대두 수입

중국 정부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대두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 식량비축관리그룹공사는 미국을 상대로 한 중국의 무역전쟁을 거들기 위해 지난 6월부터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중단했다. 중국 식량비축관리그룹공사는 2000년 설립된 국유기업으로 안보 위기 상황에 대비해 곡물·식량 자원의 비축 관리를 맡고 있다.

이런 와중에 중국 민간 기업들 가운데 대두를 가장 많이 수입해 온 산둥 천시그룹이 지난 7월 만기 도래한 채무를 상환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며 산둥성 지방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중국의 500대 민영기업 중 26위를 차지하고 있는 천시그룹의 매출 중 60%는 대두 수입을 통해서 나왔다. 천시그룹은 미국산 대두에 중국 정부가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대두 수입 가격이 늘어나 자금 압박을 받아 왔다. 중국은 대두 가격이 비교적 비싼 브라질 등에서 구입할 수밖에 없어 중국에서 대두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대두는 중국인들에게 중요한 농산물이다. 대두는 중국인들의 식탁에 올라가는 두부, 콩국, 간장, 발효 두부 등 각종 요리의 재료가 될 뿐만 아니라 콩기름의 원료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요리할 때 식재료를 대부분 기름에 튀기고 볶는다. 이때 식용유로 콩기름을 사용한다. 대두는 식용유는 물론 돼지고기 가격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두 가격 상승은 사료 가격 상승에 이어 돼지고기 가격 상승을 불러와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요동치게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인들에게 대두와 돼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인들이 매일 먹는 돼지고기 가격이 전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다. 또 콩기름의 가격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돼지고기와 식용유 가격 동향은 그동안 중국 국민들의 체감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왔다. 대두 가격이 10% 오르면 1개월 후 식품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가 오르고 이는 CPI를 0.21%포인트 상승하게 만든다. 중국 정부는 항상 돼지고기 등 식품들의 가격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식품 가격 상승이 자칫하면 중국 국민들의 정치적 불만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89년 발생한 톈안먼(天安門)사태의 원인들 중 하나도 물가 상승이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정부로선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따른 부작용인 대두 가격 상승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24개 성·시·자치구에서 유통되는 50대 주요 상품의 7월 하순 시장가격을 조사한 결과 이 중에서 돼지고기 1㎏ 가격이 13.2위안으로 7월 중순보다 4.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미국산 대두를 겨냥해 고율 관세를 부과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콩이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대두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도 중요한 농산물이다. 미국의 대두 생산량 비중은 전 세계의 35%를 차지한다. 주요 생산지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핵심 텃밭인 중서부에 있는 ‘팜 벨트(farm belt, 농장지대)’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2014∼2017년 미국 대두 생산 상위 10개 주를 보면 일리노이·아이오와·미네소타·네브래스카·인디애나·미주리·오하이오·노스다코타·사우스다코타·아칸소주 등으로, 모두 팜 벨트 지역이다. 팜 벨트 지역에서 생산된 대두는 미국 전체의 95%에 달한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일리노이와 미네소타를 제외한 팜 벨트 8개 주에서 승리하면서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중국 정부의 의도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고율 관세 부과 조치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이 지역 농민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압박을 가해 무역전쟁을 중단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이 콩 확보에 사활을 건 이유는
◆콩 확보 놓고 양보 없는 파워게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정부의 이런 조치로 자신의 발등에 불똥이 떨어지자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농가를 대상으로 최대 120억 달러(13조5900억 원) 규모 내에서 자금을 지원하거나 농산물을 매수하기로 결정했다. 소니 퍼듀 농무부 장관은 “농가들이 정부로부터 직접 자금을 지원 받거나 잉여 농산물을 정부에 팔 수 있다”면서 “농가 지원은 상품금융공사(Commodity Credit Corporation, CCC)를 통해 이뤄질 것이다”라고 밝혔다.

CCC는 농무부(USDA) 산하기관으로 1933년 대공황 극복을 위한 이른바 ‘뉴딜정책’의 하나로 설립됐다. 퍼듀 장관은 “지원 대상은 대두나 사탕수수, 유제품, 과일, 돼지고기, 쌀, 견과류 등을 포함해 모든 농축산물”이라면서 “이런 조치는 불법적인 보복관세로 발생한 무역 피해에 대응해 농가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자 미국의 굴복을 압박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이 우리의 농가를 협박할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이 우리 농민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면서 “중국이 악랄하게 굴고 있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EU)과의 무역전쟁도 중단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3월 EU산 철강 제품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부과했고, 이에 EU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와 리바이스 청바지, 버번위스키,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매겼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EU산 자동차에 2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이 때문에 미국과 EU의 관계는 크게 악화됐었다.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7월 25일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산 대두 수입을 즉시 확대하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도 늘리겠다면서 화해의 카드를 내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융커 위원장의 이런 제의에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에 따라 EU가 미국산 대두 수입을 크게 늘리고 있다. 지난 7월 EU의 미국산 대두 수입량은 35만9305톤으로 전달에 비해 3.8배로 확대됐고, 전체 수입량에서 미국산 대두가 차지하는 비율도 9%에서 37%로 높아졌다.

대두 문제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처럼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됐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 주석은 정부에 대두 수입을 다변화하고 자국의 대두 생산량을 늘릴 것을 강력하게 지시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무엇보다 미국 이외의 국가들로부터 대두를 확보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브라질로부터 콩 수입을 대폭 늘리고 있다. 그런데 브라질의 대두 생산은 미국의 글로벌 농업 기업들이 대부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 정부의 급박한 사정을 악용해 대두 가격을 상당히 올렸다. 8월분 선적 기준 브라질 대두 가격은 미국산보다 70% 높다. 중국 정부로선 높은 가격에도 브라질로부터 콩을 수입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브라질의 주요 수출 품목은 농산물이다. 그중 대두가 가장 큰 수출 품목이다. 대두가 전체 수출의 86%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브라질은 자국산 대두는 높은 값으로 중국으로 수출하고 자국용 대두는 미국으로부터 싼 값에 들여오고 있다. 브라질로선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꿩도 먹고 알도 먹고 있는 셈이다.

중국 정부는 또 러시아로부터 대두 수입을 늘리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7월부터 지난 4월까지 10개월간 중국에 85만 톤을 수출해 전년 동기 대비 2배나 물량을 늘렸지만 더 이상 크게 확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지난 7월 1일부터 한국과 인도, 방글라데시, 라오스, 스리랑카 등 아시아 5개국에서 수입하는 대두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지만, 물량이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카자흐스탄을 비롯해 중앙아시아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참여 국가들로부터 대두 수입을 모색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지난해 처음으로 중국에 대두를 수출했다. 중국 정부는 일종의 ‘새로운 대두지로(大豆之路: Soybean Road)’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카자흐스탄의 국경 도시인 호르고스의 내륙 항만 지분을 인수하는 등 일대일로 중요 거점인 카자흐스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대두 수입을 늘리는 것은 한계점도 있다. 양슈 란저우대 교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구소련 시절에 건설된 낙후한 인프라 시설로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면서 “앞으로 중국의 대두 수요를 완전히 맞추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또 자국 농가에 대두 생산을 늘리라고 하면서 개량종자와 보조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수입한 만큼의 대두를 생산하려면 중국이 필요한 땅은 7억6000만 무(畝)인데, 중국의 농업용지 전체 면적은 21억 무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이 전체 농업용지의 3분의 1을 대두 재배에 투입할 수는 없다. 또 대두가 심자마자 생산되는 것도 아니고, 미국처럼 기계화 농업이 자리 잡지 않은 중국에서 대규모로 수확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중국의 주요 산업들은 그동안 눈부실 정도로 발전해 왔지만 농업은 상당히 쇠퇴해 왔다. 토양 오염으로 생산성이 낮은 데다 농업 종사자의 고령화 등이 원인이다. 대두를 충분하게 확보하기 어렵게 되자 중국 정부는 대두 대신 옥수수를 돼지 사료로 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이 무역전쟁에서 미국을 이기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일러스트 허라미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0호(2018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