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규모별로 알아본 맞춤형 가업승계
가업승계는 단순히 자식들에게 경영권 지분을 넘기는 일이 아니다. 미래 성장을 위해 그동안 쌓아온 기업의 노하우와 인프라를 후대에 건네주는 작업이다. 산업화 1세대 오너들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제 가업승계는 숙명 같은 과제가 됐다.

일본의 천년 고도였던 교토의 한 거리를 지나다 보면 외면하기 힘든 달콤한 향기가 온 동네를 휘감는다고 한다. 바로 170년 전통의 별사탕 전문점 료쿠주안시미즈에서 새어 나오는 매혹적인 향내다.

별사탕이라고 하면 건빵 봉지에 들어 있는 설탕 덩어리를 떠올리기 쉬운데 1847년에 창업된 이 가게에서는 독특한 제조 방법을 갖고 한 알의 별사탕을 만들기 위해 약 14일 동안 공을 들인다고 한다. 이처럼 기업의 고유한 가치를 키워 가는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만 3113개에 달한다는 일본은 ‘가업승계’라는 말 대신 ‘기업승계’라는 말로 기업 가치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있다.

뒤늦게 한국 정부에서도 지난 3월 29일 <중소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45년 이상 한 우물만 판 명문 중소기업을 선정해 지원키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다만 정부 지원이 중소기업 위주로 진행되는 점은 아쉽다는 평가다.

통상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분류에 따라 자산 5조 원 이상은 대기업군으로 부르며, 대기업이 아닌 기업 중 자산총액 5000억 원 이상이거나 업종별로 3년 평균 매출 400억~15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은 중견기업이라고 한다. 또 자산총액이 5000억 원 미만인 기업들은 광범위하게 중소기업으로 부르고 있다.

기업의 규모가 확연히 갈리는 만큼 그에 따른 가업승계 전략도 달라져야 할 터. 한경 머니가 기업 규모별 맞춤형 가업승계 전략을 짚어봤다.

중소기업
A가방 회사 박 사장의 가업승계는
중소기업중앙회가 2013년에 실시한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업승계 저해 요인’을 묻는 질문에 답변자의 71.7%가 ‘상속·증여세 부담’을 꼽았으며, ‘조세 부담으로 인한 영향’에 대해서는 폐업·도산(28.0%), 사업 축소(28.0%), 일시적인 경영난(26.1%) 등을 예상했다.

연매출 100억 원 규모의 A가방 회사를 운영하는 박 모(50) 사장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5년 넘게 키워온 회사를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싶어도 최고세율이 5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를 생각하면 앞길이 캄캄했던 것.

그동안 가방 분야에서 갈고닦은 노하우는 유럽의 명품 가방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하지만 막대한 세금을 내고 나면 자칫 정성들여 키워 온 회사를 타인에게 넘겨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좌불안석이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기우에 가깝다. 중소기업들의 가업승계를 지원하기 위한 각종 특례제도들이 세 부담을 최소화해 승계 작업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박 사장이 우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중소기업의 원활한 가업승계를 지원하기 위한 ‘가업상속공제’다. 매출 3000억 원 미만 중소기업 또는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최대 500억 원(10년 이상~15년 미만 200억 원, 15년 이상~20년 미만 300억 원, 20년 이상 500억 원)까지 공제를 해주는 제도다.

박 사장이 사망 후 자식들이 이 제도를 활용해 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박 사장(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 회사 경영을 했어야 하고, 전체 가업 기간의 50% 이상 재직했거나 상속 개시일부터 소급해 10년 중 5년 이상 재직했어야 한다. 10년 이상 재직했다면 사전 승계도 가능하다.

아들(상속인)은 상속 개시일 현재 18세 이상이어야 하고, 상속 개시일 전 2년 이상 직접 가업에 종사했어야 한다. 또 상속세 신고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하고 신고기한으로부터 2년 내 대표이사에 취임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과거에는 상속인 1인이 가업을 전부 상속해야 했으나 2016년 2월부터는 가업이 둘 이상일 경우 기업별 상속이 허용되고, 1개 기업을 공동 상속한 경우에도 대표이사 승계자의 상속분은 공제할 수 있도록 제도가 유연해졌다.

가업상속공제는 사후관리 요건이 깐깐한데 박 사장의 아들은 경영을 물려받은 뒤 10년 동안 업종(소분류 내 업종 변경 허용), 자산(가업용 자산 20% 이상 처분 금지), 고용(매년 정규직 평균 인원 기준 고용 인원의 80% 이상 유지), 지분(최대주주 지분 유지 및 대표이사 유지, 1년 이상 휴·폐업 금지) 등에 대한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A가방 회사의 상속 시점 주식 가치가 100억 원이고, 사업용 자산 비율이 80%라고 가정할 경우 일반 상속 시에는 약 36억 원, 가업상속공제를 받으면 2억 원의 세금을 내면 된다. 또한 박 사장이 지병 등의 이유로 생전에 기업을 물려줘야 할 경우 ‘증여세과세특례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중소기업 또는 직전년도 매출액 3000억 원 미만 중견기업이 이 제도를 이용해 주식 및 출자지분을 증여할 경우 5억 원을 공제한 후 10%의 특례세율을 적용 받는 게 가능하다. 또 30억 원을 넘으면 초과 금액에 20%의 세율을 적용해 증여세가 과세된다.

과세특례를 받기 위해서는 증여자가 해당 기업을 10년 이상 계속 경영한 60세 이상 부모, 수증자는 증여일 현재 18세 이상인 자녀여야 하며 자녀는 증여세 신고 기간까지 가업에 종사하고 증여일로부터 5년 이내 대표이사에 취임해야 한다.

증여세과세특례도 사후관리 요건이 만만치 않은데 7년간 업종(소분류 내 업종 변경 허용)을 유지해야 하며, 최대주주 지분 및 대표이사를 유지하고 1년 이상 휴·폐업이 금지돼 있다.
단, 과세특례 적용 증여재산가액은 기간에 관계없이 상속재산에 가산된다.

10년 전에 한 증여는 차후 상속세 계산에서 제외되는데 그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업승계 증여세과세특례는 미래 시점의 기업 가치 변화 등을 고려해 적용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사후관리 의무 위배 시 기존 과세특례를 부인해 증여세 및 이자상당액(연 10.95%)을 추징하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창업자금 증여세과세특례’도 자녀에게 증여하는 방법으로 유용하다. 18세 이상 자녀가 60세 이상 부모로부터 창업자금을 증여 받은 후 1년 이내에 창업을 하고, 3년 이내에 창업자금으로 사용하면 증여세 과세가액(30억 원, 10명 이상 신규 고용 시 최대 50억 원)에서 5억 원을 공제하고, 그 잔액에 대해서는 저율(10%)의 증여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또 자금 운용에 여유를 주기 위해 5년간 연부연납도 허용된다.

이외에도 ‘중소기업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 배제’(중소기업 주식에 한해 2017년 12월 31일까지 상속·증여 받는 경우 최대주주라도 주식가액 평가 시 할증평가 하지 않음), ‘가업상속에 대한 상속세 연부연납제도’(상속재산가액 중 가업 상속재산가액의 비율에 따라 최대 3년 거치 후 12년간 분할 납부 가능) 등도 좋은 활용 팁이 될 수 있다.
[big story]규모별로 알아본 맞춤형 가업승계
중견기업
B제약 회사 김 대표의 출구 전략은

사실 중견기업 정도로 회사 규모가 커지면 정부의 특례제도는 ‘그림의 떡’이 되기 십상이다. 회사 매출 규모나 사후관리 요건을 충족시키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중견기업의 경우 3800여 개의 기업이 있으며, 법인세 33조 원 중 8조 원(전체 25%)을 부담하고, 2013년 기준으로 전체 기업의 0.12%(3846개)에 불과하지만 총 고용의 9.7%(116만1000여 명)를 담당하는 등 한국 경제의 허리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가업승계 지원에 있어서는 사각지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업상속공제 건수(국세청 2015 통계연보)가 2010년 54건, 2011년 46건, 2012년 58건, 2013년 70건, 2014년 68건 등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도 특례 요건을 맞출 수 있는 기업이 그만큼 한정돼 있다는 방증이다.

20년 넘게 회사를 운영해 오며 B제약 회사를 연매출 4000억 원의 중견기업으로 키워 온 김 모(63) 대표는 중소기업을 거쳐 중견기업으로 올라섰지만 정부의 지원 혜택이 줄며 한숨만 늘었다. 특히 가업승계를 지원 받을 수 있는 가업상속공제가 매출액 3000억 원 미만이어서 특례제도를 활용한 승계 작업은 애당초 포기했다. 국회에서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연 매출 5000억 원 미만 기업까지 확대 적용하는 개정안이 추진될 때만 해도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부자 감세 논란으로 개정이 보류되며 희망을 접었다.

법조계에서는 정부의 각종 특례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은 사실상 중소기업에 국한돼 있으며, 중견기업이 이 제도의 수혜를 보기는 힘든 구조라고 말한다. 사실 오너의 고령화로 가업승계의 필요성이 가장 절실한 곳은 중견기업들인데 은퇴 시기가 다가와도 제대로 된 출구 전략을 구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한홍규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명문장수기업센터장(M&A센터장)은 “독일에서는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적용 받게 하고 사후관리 요건도 기업 경쟁 환경에 대응할 수 있게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음을 볼 때 적어도 우리나라도 궁극적으로 중견기업 수준에서는 규모에 관계없이 가업상속공제 한도 적용 대상으로 열어주는 것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6월경 정부 지원을 받아 ‘중견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를 진행, 중견기업들의 정확한 니즈를 파악해 정책에 반영토록 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B제약 회사처럼 정부의 측면 지원사격을 받기 힘든 중견기업들은 2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하나는 기업 인수·합병(M&A)이나 기업분할 등을 통해 회사를 매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상장 지주회사를 통해 회사의 지배구조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지난 3월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기존 명문장수기업센터에 더해 M&A센터를 만들어 중견기업들에 대한 지원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상장 지주회사를 활용하는 방법은 기존 대주주→상장사→계열사의 구조를, 대주주→비상장 지주사→상장사→계열사의 구조로 변화를 주는 것이다. 비상장 지주회사 개편의 목적은 승계 비용의 최소화와 안정적인 경영권 지분 확보다.
코스닥 상장 반도체 전자재료 업체 동진쎄미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3년 12월 동진쎄미캠의 최대주주인 이부섭 회장은 부인과 함께 보유 지분 24.84%(1044만 주)를 J&J캐미칼에 현물출자하고, J&J캐미칼은 대신 이 회장에게 신주 186만 주를 교부했다. 이로 인해 J&J캐미칼은 기존에 보유한 지분 4.40%를 합쳐 동진쎄미켐의 새로운 최대주주(지분율 29.24%)로 올라섰다.

이를 통해 이부섭 회장이 동진쎄미켐을 직접 지배하는 구조에서 이 회장(81%)→ J&J캐미칼(29.24%)→동진쎄미켐의 구조로 바뀌었다. 이 회장이 보유 지분 28.84%를 증여했다면 최대 50%에 달하는 증여세율을 적용 받아 이 회장의 장남과 차남이 실제 물려받는 지분은 12% 수준으로 ‘반 토막’이 나게 되고, 자칫 경영권도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차후에 이 회장이 자신의 J&J캐미칼 지분 81%를 물려주면 50% 증여세율을 적용 받더라도 두 아들은 40.5%의 지분을 확보하게 되는데, 기존에 두 아들의 지분 9.55%를 합치게 되면 지주사 지분 50.05%를 보유하게 돼 경영권도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대기업
C그룹 한 회장의 경영승계 선택은

대기업으로 넘어오게 되면 가업승계는 더 이상 비빌 언덕을 잃게 된다. 최근 자산 5조1000억 원인 인터넷 기업 카카오의 대기업집단 지정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그만큼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많기 때문이다. 중견기업의 가업승계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는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대기업에서는 이미 철지난 이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집단 중 18곳(2014년 공정거래위원회 자산 기준)이 혈족 간 상속 및 경영권 분쟁을 겪었거나 현재 진행형이다.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4년 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수조 원대 유산전쟁을 벌인 바 있는데, 이제는 망자가 돼서 자신의 혼외자가 벌이는 유산소송을 무덤 안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또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두 아들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은 신격호 명예회장에 대한 후견인 지정 문제를 놓고 아직도 신경전이 여전하다.

40년 동안 국내 굴지의 C그룹을 이끌어 온 한 모(70) 회장도 최근 신문지상을 뒤덮은 재벌가의 상속 분쟁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자신에게도 2남 3녀의 자식들이 있는데 자신의 건강이 좋을 때는 몰라도 자칫 정신줄이라도 놓게 되면 언제 가족들의 갈등이 폭발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권 승계를 위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가업승계는 세제상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전략적 부분보다는 피상속인과 상속인 간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진단한다. 더불어 유류분(遺留分, 상속인 간 공평을 도모하기 위해 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돼 있는 상속재산의 일정 부분) 문제도 고민이다. 경영권을 한 명에게 몰아주자니 유류분이 걸리고, 공평하게 지분을 나눠주자니 향후 경영권 다툼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박영욱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여러 자녀 중 한 명에게 다 몰아주겠다고 하면 유류분 문제가 발생하고 그걸 피하기 위해 상속인들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다. 기업 오너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쌓이게 되는 것이다”라며 “지분을 사전에 나눠주지 않더라도 갑자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문제가 없도록 회사를 사업의 종류나 계열사별로 정리만 해 놔도 상당 부분 가업승계에 대한 고민은 줄어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면 회사에 여러 사업이 혼재돼 있는 경우 D, E, F 등으로 사업을 나눠 성격에 맞게 계열사를 정리하고, 회사를 분할해 주식을 본인이 갖고 있다가 이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유언장 등을 통해 해당 사업별 주식을 상속인들이 나눠 갖도록 하는 것이다.

조건부증여를 하는 방법도 있다. 상속인에게 조건을 달고 그 조건을 달성하지 못하면 회사 지분 등의 증여를 되돌릴 수 있도록 옵션을 달면 생전증여에 따른 걱정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영욱 변호사는 대기업의 구조적 특성상 가업승계 작업이 내부에서 진행되기가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가업승계는 상당히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상속인이나 기업 내부의 사람은 물론 피상속인 본인조차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쉽지 않은 과제라는 것.

박 변호사는 “같은 이야기라도 외부에서는 할 수 있어도 내부에서는 절대 못하는 말이 있다”며 “가업승계 작업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지 말고 외부 전문 기관의 조력을 받아 기업의 구조 합리화 작업을 진행하며 자연스럽게 가업승계 화두를 꺼내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