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인에게 보장된 최소한도의 상속 지분 ‘유류분(遺留分)’은 마치 폭탄의 뇌관과 같다. 이른바 ‘내 몫’을 좀 더 차지하겠다며 벌이는 유류분 소송은 가족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빠가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기로 했을 때만 해도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며 고개를 숙였던 막내딸 A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오빠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출가외인’이라는 이유로 유산 상속에서 철저히 배제됐던 딸이 정당한 유류분을 주장하며 이른바 ‘딸의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과거 상속 재산은 장남의 몫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집안의 제사를 관장하는 장남에 대한 유산 상속에 형제들은 쉽게 토를 달 수가 없었다. 특히 출가외인으로 불렸던 딸들은 유산 상속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장진영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과거에는 장자 우선주의로 장남이 상속 재산을 물려받는 것을 당연시 여겼는데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며 “과거에 장자는 부모를 부양하고 제사를 지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장자의 권리만 주장하느냐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라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유류분은 복수의 상속인들 중 특정 상속인에게만 불균등하게 유산 상속이 이뤄졌을 때 나머지 상속자들이 균등하게 상속받을 수 있도록 최소한도로 정해 놓은 유산의 분량이다. 유류분은 배우자와 직계비속(아들, 딸, 손자, 손녀)이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에서 1.5대1대1의 비율로 나눠 갖도록 돼 있다.

상속의 시작은 유언이지만 유언장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유류분이다. 아무리 아버지가 일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밝혔다 해도 법을 통해 친절하게도 상속 재산 중 일부를 상속인들의 몫으로 남겨 두도록 강제하고 있다.

“내 몫 내놔”, 끝도 없는 상속 전쟁
2014년 8월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건물 사무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보수를 위해 인부들이 투입됐고 그들은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광경을 보게 된다. 사무실 붙박이장을 뜯어내다가 작은 나무 상자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시가 65억 원 상당의 금괴 130개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금괴에 눈이 멀어 절도를 하게 되고 차후에 경찰에 이 사실이 발각된다.

이 금괴는 경기도의 한 사학재단 설립자인 박 모 씨가 숨겨 놓은 것으로 치매를 앓았던 그는 4명의 부인과 7남 1녀의 자식들에게 금괴의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2003년에 세상을 떠났다. 문제는 피상속인이 사망한 지 10년이 넘어서 존재가 알려진 금괴로 인해 가족들이 뒤늦게 유류분 문제로 재차 상속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유류분 소송에도 소멸시효라는 것이 있다. 피상속자가 사망하기 1년 이전까지의 재산 증여, 지급분에 대해서만 유류분 소송이 가능한데 이는 원래 상속인이 아닌 사람에게 재산이 넘어갔을 때이고 상속자 간 재산 이동에 대해서는 따로 그 한도 기간이 없다.

또 유류분 청구 소송의 소멸시효라는 것이 있는데 ‘상속의 개시와 반환해야 할 증여 또는 유증을 안 때’로부터 1년 이내에 소멸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피상속인이 사망한 것을 알았다 해도 증여나 유증을 한 사실을 몰랐던 상태라면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으니 그 시효라는 것이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가 있다.

여기서 유념해 둬야 할 부분은 유류분을 계산할 때 사망 당시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만 가지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긴 재산에 사망 전 1년간 증여한 액을 더하며, 1년 전에 증여한 것이라도 상속인의 유류분을 침해할 것을 알고 했다면 포함시켜 계산하게 된다. 형제들 간에 수년 전 부모에게 물려받은 증여분을 놓고 멱살잡이까지 해 가며 옥신각신 싸우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융통성 없는 유류분, 유언 자유에 족쇄
100억 원대 자산가인 B씨가 있었다. 그는 슬하에 성장한 남매를 두고 있었는데 남편을 일찍 여의고, 딸과 10년 이상을 살았다. 지병이 있던 B씨는 수년간 병치레로 고생했는데 딸이 곁에서 지극 정성으로 돌봐 주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아들은 그동안 한 번의 연락도 없었던 ‘말뿐인 가족’이었다.

B씨는 병세가 악화됐고 결국 딸에게 임야와 상가를 포함한 재산 대부분을 상속 재산으로 남기겠다는 유언장을 남기고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B씨가 작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아들은 B씨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상속 재산에 대한 유류분을 요구하고 나서 자신의 몫을 챙길 수 있었다.

유류분 제도는 최근까지도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피상속자의 유언의 자유를 상당 부분 구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류분 제도는 평생 소식을 끊고 살았던 가족이나 혼외자에게도 피상속인의 뜻을 거르며 상속 재산을 지켜 준다.

한국가족법학회 소속 정구태 조선대 교수는 “최근 피상속인의 유언의 자유가 보다 강조돼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데 특히 천안함 사태에서 자녀를 전혀 돌보지 않은 부모가 상속인에 대한 사망보상금을 수령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상속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국민 여론이 들끓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실제 가족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에서도 피상속인에 대해 부양 의무를 부담하는 상속인이 의도적으로 그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상속인의 유류분권을 상실시킬 수 있도록 유류분권 상실 제도를 도입하고자 했으나 결국 입법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상용 부산대 법대 부교수는 ‘자녀의 유류분권과 배우자 상속분에 관한 입법론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부모는 자신을 헌신적으로 봉양한 자녀에게 더 많은 재산을 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이러한 의사가 유증으로 표현될 수 있다”며 “유증에 의해 상속에서 배제된 자녀가 유류분 권리자로서 유류분 반환청구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 자녀에게 유류분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독일, 체코 등 유류분제도가 있는 나라에서는 피상속인이 유류분에 대해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민법에는 ‘피상속인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자녀가 조력을 제공하지 않고 방임한 경우’에 자녀의 유류분권을 상실시키도록 하고 있으며, 체코공화국의 민법에는 ‘피상속인이 질병, 노령 기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조력을 제공하지 않은 때’에 직계비속의 유류분을 상실할 수 있도록 했다.

정구태 교수는 “현행 유류분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제도가 경직돼 있다는 것인데 어느 정도 유연화해 자녀에 대한 부양의 필요성이 없는 경우에는 피상속인이 유언에 의해 자녀의 유류분을 감축시킬 수 있도록 하거나, 자녀가 고의로 피상속인을 부양하지 않은 경우와 같이 자녀가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를 한 경우에는 피상속인이 자녀의 유류분을 상실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기업승계 난제 ‘유류분’, 묘수 없나
유류분은 기업에 있어서 경영권 승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40년 넘게 봉제사업을 해 온 C대표는 4남매를 두고 있었는데 60세가 넘어서며 사업을 넘겨줄 후계자로 차남인 D씨를 지목했고, 이 같은 사실을 유언장으로 작성해 놓았다. 하지만 C대표가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자식들은 상속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 주식에 대해 유류분을 요구하고 나섰고, 회사의 경영권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유류분은 유언장으로 구속할 수 없기 때문에 상속받을 형제가 많은 경우 상속인 중 일부가 주식으로라도 유류분을 챙겨서 환매하겠다고 고집을 부릴 경우 경영권 지분의 방어는 힘들게 될 수 있다.

지난해 배우자 선취분 도입이 핫이슈로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에서 배우자가 상속 재산의 반을 선취분으로 먼저 취득하고, 나머지 2분의 1을 다른 공동 상속인들과 현재의 상속분 비율대로 취득하도록 배우자 선취분 제도의 도입을 추진했으나, 재계에서 경영권 승계에 걸림돌이 된다고 반발해 결국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

당초 취지는 고령화에 있었다. 평균수명이 연장되며 노후에 부부만 따로 사는 경우가 늘고, 배우자가 먼저 사망한 경우 자기만의 재산을 형성하지 못한 생존 배우자가 남은 삶을 혼자 살아갈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고민이 출발점이었다. 더구나 부부가 이혼 시에는 재산분할청구권을 통해 재산을 나누는데 배우자가 사망 시에는 직계비속이 여러 명이 있을 경우 유류분으로 가져갈 수 있는 재산은 그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정구태 교수는 “생존 배우자의 노후 생활을 보장한다는 사회·정책적 측면에서도 배우자의 상속분은 증가돼야 한다”며 “배우자 상속분 증가의 반대 논리로 제시되고 있는 기업의 경영권 승계 문제는 이와는 차원을 전혀 달리 하는 문제이므로 별개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가업승계 시 걸림돌이 되는 유류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최수령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는 “다수의 상속인 간에 경영권 지분에 대한 협의가 잘 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 회사가 어떻게 되든 내 재산을 챙겨 가겠다’는 형제가 있을 경우 회사는 분해될 수도 있다”며 “피상속인이 ‘경영권 지분의 경우 상속이 돼도 절대 팔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붙인다 한들 유류분 때문에 법률적인 구속력을 얻을 수 없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에 그 대안으로 고민되고 있는 것이 바로 ‘신탁’이다. 미국 등에서는 기업의 경영권 지분을 신탁으로 묶어 놓고 상속인들에게 배당이나 수익권만 가져가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국내에 도입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최 변호사는 “주식이 유일한 재산인 중견기업의 경우 그 주식을 팔 수 없게 신탁으로 묶어 놓고 상속인이 상속을 받아도 팔 수 없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상속인들은 해당 주식에서 나오는 수익이나 배당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상속세도 이 부분에서 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국내 사례가 없다 보니 기술적인 난제들이 많다”고 밝혔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