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家 분쟁, 남의 일 아니다]롯데에서 배우다 상속의 5가지 교훈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부자간,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막장극을 연출하고 있는 롯데家 분쟁에서 배울 점 5가지를 꼽아본다.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장

롯데가의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경영권 분쟁에서 과연 누가 경영권을 차지할 것인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시작은 창업주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장남을 밀어내고 차남을 후계자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였다. 하지만 얼마 후 후계구도에서 밀렸던 맏아들이 부친이 자신을 지지한다는 육성녹음을 공개했고, 이에 대해 동생은 부친의 정신 상태와 판단이 흐려진 상태라고 일축했다.

이는 과거 현대가의 분쟁과도 매우 흡사하다.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이라고 불렸던 당시에도 지병으로 인해 입원해 있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불러 공개적인 석상에서 누가 후계자인가를 놓고 형제간 팽팽한 경쟁을 벌였다. 그 후 계열사를 분리하며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지만, 형제간 주도권 경쟁은 창업주인 정 명예회장의 사후에도 반복됐다. 삼성그룹도 고 이병철 창업주가 장남인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을 제치고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후계자로 지정하며 형제간 상속 분쟁을 겪었다. 그리고 끝내 형제간 화해하지 못하고 최근 장남인 이맹희 회장이 유명을 달리했다.

왜 기업마다 후계자 선정을 둘러싸고 비슷한 일이 계속 발생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대기업뿐만 아니라 1970~ 1980년대 창업한 수많은 중소·중견기업들이 세대교체를 앞두고 있어 롯데가의 분쟁을 남의 일이라고 불구경하듯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승계를 준비하는 경영자라면 롯데의 사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고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1.원칙 없이
경쟁시키지 마라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가족이든 회사 임직원이든 승계 시점이 코앞에 닥칠 때까지 후계자 선정 문제에 대해 쉬쉬하곤 한다. 그만큼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문제의 주도권을 가진 오너경영자들조차 이 문제를 애매하게 다룬다. 누구든 능력 있는 사람이 결국 회사를 맡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거나, 어떤 기준이나 원칙도 세워 두지 않은 채 자녀들을 경영에 참여시켜 경쟁을 유발하는 것이다. 롯데가도 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결국 대부분의 승계를 둘러싼 자녀 갈등은 자녀들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후계자 선정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생긴다. 자녀들은 왜 경쟁심을 갖게 될까? 부모의 의중을 모르고 후계자 선발 기준에 대한 정보도 없으니,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막연한 불안이나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원칙 없는 경쟁이 형제간의 분쟁을 초래하는 것이다. 후계자 선정이 경쟁의 장이 돼서는 안 된다. 최고를 뽑는다는 미명하에 원칙 없는 경쟁으로 자녀들을 밀어 넣었다가는 자칫 가족과 회사 모두를 망가뜨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모호한 승계 기준은
갈등 유발의 주범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장자 우선주의 때문에 성별이나 출생 순서로 후계자를 선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장남이 아닌 다른 자녀가 승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자녀들은 대개 후계자 선정 기준이 무엇인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선정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부모 눈치만 살피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권력욕을 갖고 있는데, 불확실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경영권을 놓고 형제 또는 부자간 갈등이 생기게 된다. 롯데가의 경우도 후계자들의 나이가 60세가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해 전까지 후계구도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다 최근 들어 그룹의 대권을 둘째 아들에게 넘길 것이라고 추측만 떠돌았다.

이와 같이 불확실한 상황이 오래되면 가족관계가 파괴되는 극단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므로 후계자 선정 문제는 감정적이거나 개인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문제인 만큼 최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너 경영자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승계위원회를 구성해 가족, 이사회, 경영진 등이 함께 의견을 모으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위원회에서 승계 진행 일정 등을 정하고 구체적인 후계자 선정 기준에 합의하는 것만이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3.은퇴를 모르는 군주형 리더는
말년의 고난을 피할 수 없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90세가 넘은 최근까지도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 하며 사업을 총괄했다. 그리고는 후계구도를 불투명한 채로 남겨 두었다. 창업주인 신 총괄회장은 가업을 일으키고 성장시키는 데는 큰 역할을 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승계구도를 제대로 마련해 놓지 않아 자녀들을 경쟁에 몰아넣고 이로 인해 기업에도 리스크를 주게 된 것이다.

‘왕관을 쓰고 죽는다’는 말이 있다. 군주는 일생 동안 국가를 통치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많은 창업주들이 군주와 같이 기업을 운영한다. 그들은 사회적 정년인 65~70세가 넘어서도 매일 회사에 출근해 일상적인 업무 처리를 하며 누구도 자신을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자신의 은퇴 시기나 경영권 이전 기한을 정해 놓는 일이 거의 없다. 경영자가 자기 믿음이 강할수록 권력을 다음 세대로 이양하기가 어려운데, 후계자와의 갈등과 상속 분쟁을 겪는 기업들이 대개는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자신이 승계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경영자 또한 거의 없다.

피터 드러커는 “위대한 영웅인 최고경영자(CEO)가 치러야 할 마지막 시험은 얼마나 후계자를 잘 선택하느냐와 그의 후계자가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도록 양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최소한 자녀가 45~50세 정도 중년이 되면 그들의 기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물러나서 자녀들의 조언자 역할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4. 자녀의 능력을
맹신해선 곤란하다

자신의 자녀들이 대를 이어 기업을 성장, 발전시키기를 원하지 않는 경영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의 확률상 창업주인 자신만큼 유능한 후계자를 얻을 확률은 아주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가들이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자질이나 적성, 능력에 관계없이 자녀들을 기업에 참여시키는 경우가 많다. 마치 기업이 가족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다 형제간 분쟁이 생기면 가족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나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각자 특정한 한쪽 편에 서서 갈등을 더 확대시키기도 한다. 모두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가족 간의 문제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무엇이 기업에 최선인가를 기준으로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해외 장수기업들은 기업을 우선으로 하는 지배구조 철학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자기 세대에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고 기업을 성장시켰더라도 세대 이전에 실패한다면 이는 결국 가족과 기업, 사회에 모두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5. 자녀들이 배제된
승계 플랜은 위험하다

창업주들이 승계 시기나 후계자 선정 등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설령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족이나 이해관계자들과 협의하지 않고 단독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때문에 자녀 간 잠재적인 갈등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미래를 책임질 사람은 결국 자신이 아닌 가족 아닌가? 그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계획은 그대로 지켜질 가능성이 없다. 그러므로 승계 계획은 경영자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가족이 함께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가족들이 대를 이어 가문 내에서 기업을 성장, 발전시키겠다는 ‘가족 공동의 꿈’에 합의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