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家 분쟁, 남의 일 아니다]8가구 중 1가구는 부모 사후 재산다툼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다툼을 재벌가의 해묵은 상속 분쟁 중 하나로 치부할 수는 없다. 급격한 고령화를 겪는 상황에서 상속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을 바라보는 자산가들의 마음은 편치 않은 것 같아요. 대부분 고령의 나이에 접어들며 경영권이나 재산을 물려줄 시점이 된 자산가들의 경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혈족들끼리 경영권 확보를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남의 일로 보지 않는 거죠.”

이는 고액자산가들의 상속 상담을 주로 담당하는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의 전언이다. 사실 재벌가의 경영권 승계 등 상속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 자산 기준으로 40대 재벌그룹 중 혈연 간 경영권 승계 등 상속 분쟁이 일어난 곳은 19곳에 이를 정도다.

삼성가(家)에서는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차명 주식 분할청구 소송을 내며 갈등을 겪었고, 현대그룹도 2000년 2월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경영권 승계 다툼이 벌어져 이후 그룹이 여러 조각으로 나눠지는 계기가 됐다. 또 형제간 우애와 장자 상속주의로 안정적인 그룹 경영을 이끌었던 두산그룹은 형제간 갈등을 빚으며 급기야 가문에서 제명당한 고 박용오 전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목숨을 끊는 비극이 연출되기도 했다.

최근 경영권 승계 등의 상속 문제는 더 이상 재벌가에만 국한된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중소기업의 경영권 승계는 사회적 현안으로 부각된 지 오래고, 자산가들의 상속재산분할 소송 사건도 해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상속재산분할 소송 사건의 접수는 2011년 154건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이미 176건(8월 7일 현재)을 기록한 뒤 연내 300건을 넘어설 추세다. 최근 5년간 추이를 보면 2011년 154건, 2012년 183건, 2013년 200건, 2014년 266건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 급증
이처럼 상속 재산을 놓고 가족 간 갈등이 늘어난 데는 고령화도 한 몫을 했다. 2050년이 되면 노인 인구가 40%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7월 15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연령은 59.3세로 고령화 정도가 심각하다. 은퇴 시점을 앞둔 CEO들의 경영권 승계나 재산 분할이 향후 봇물처럼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소리다.

대기업의 경영권 분쟁이 언론 보도를 통해 소개돼 이슈로 떠오르지만 이는 중소기업의 사정에 비하면 오히려 상황이 낫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도 대기업들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기업 자체가 사라지는 황당한 경우는 없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상속 과정에서 막대한 세금을 부과받거나 상속인 간 갈등을 겪으며 회사의 영속성 자체가 무너진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국내 종자업계 1위 농우바이오나 세계 1위 손톱깎이 업체였던 쓰리세븐은 창업주였던 고 고희선 회장과 고 김형규 회장이 갑자기 타계하며, 각각 1000억 원과 150억 원이라는 막대한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회사의 경영권을 넘긴 사례고, 30년 흑자 기업이었던 양지실업은 매각 구매자가 없고 상속도 어려워 스스로 회사 문을 닫고 말았다. 또 여성복업계 만년 1위였던 한섬은 후계자 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업승계를 포기한 경우다.

최수령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는 “중소기업의 경우 상속 재산의 상당 부분이 주식으로 돼 있어 이를 상속인들에게 나눠 주거나 세금으로 낼 경우 경영권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며 “사전증여의 경우는 국가에서 비상장 법인의 주식을 물납으로 받아 주지도 않아 상속인들이 세금 마련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충정에서는 경영권과 관련된 주식은 신탁으로 묶어 놓고 상속인들이 배당수익에 대해서만 세금을 내는 방법을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는데, 현행법에서는 상속인들이 유류분(상속인을 위해 법률상 유보된 상속 재산의 일정 부분)을 청구할 경우 신탁으로 해당 주식을 묶어 둘 방도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차이가 나는 배당수익에 대한 세금 부과 등 기술적인 난제들이 남아 있다.

이에 법 테두리 안에서 기업상속공제 한도와 증여세특례 한도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중견기업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이 역시 ‘부자감세’라는 국민정서법의 벽에 막혀 여의치 않다.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은 “가업 상속이 아니라 기업 상속이라고 불러야 맞으며 유럽이나 일본처럼 100년 이상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며 “존경받는 명문장수기업을 키워 내자는 것이 부자감세라는 역풍을 맞고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피도 눈물도 없는 상속 분쟁, 막을 방도는
법조계에서는 이혼 소송보다 상속 소송이 더 살벌하다고 전한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이혼 소송의 경우 부부간에 기여한 부분을 통해 재산을 나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상속 소송은 내 몫을 형제가 가져간다고 생각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소송을 펼칠 때가 많다”고 밝혔다.

장진영 서울가정법원 판사(기획·공보담당관)는 “최근 상속 관련 분쟁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맞다”며 “다른 소송과 달리 상속재산분할의 경우 법원에서도 조정이 힘든 재판으로 분류해 놓고 있을 정도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이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유교적인 영향에 의해 과거에는 장자 우선주의로 장남이 상속 재산을 물려받는 것을 당연시 여겼으나, 최근에는 형제들이 동등한 상속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혈족 간 피도 눈물도 없는 치열한 소송전을 펼치며 가족관계가 파탄이 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전언이다. 상속재산분할 소송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전증여분에 대한 다툼이라고 한다. 부모가 생전에 사전증여를 해 준 부분을 따지며 남은 재산의 상속과 관련해 갈등을 겪고 있는 것.

장 판사는 “상속에 있어 가장 우선적인 부분은 유언이며 그다음이 협의이고, 이게 안 될 경우 상속재산분할 소송이 이뤄진다”며 “최근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93세의 신격호 총괄회장의 치매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는데 상속 재산과 경영권을 놓고 가족들 간 다툼을 막기 위해서는 성년후견제도의 임의후견을 잘 활용하면 좋다”고 조언했다.

임의후견은 일반 성인이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 있거나 부족하게 될 상황에 대비해 스스로 후견계약을 체결해 자신의 재산 관리 및 신상 보호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후견인에게 위탁하는 제도다.
성년후견제도는 2013년 7월부터 시행해 오고 있지만 사실 변호사들조차 이 제도를 모를 정도로 아직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 장 판사의 귀띔.

더불어 간통죄의 폐지 이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제도가 바로 혼외자의 상속분 가액반환 청구다. 혼외자이더라도 나중에 인지 소송을 통해 친자임이 확인되면 상속분에 대해 청구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향후 가족들 간 상속 분쟁의 불씨가 될 공산이 커 유념해야 한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