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키나와에선 해양스포츠나 골프 투어를 즐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겨울 시즌엔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도심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는 배낭족도 제법 눈에 띈다. 일본 최남단에 위치해 대지진과 방사능 피해가 거의 없어 안전성도 보증된다.
오키나와는 일본과 타이완 사이에 있는 160여 개의 작은 섬과 기다란 본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평양과 동중국해에 둘러싸인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꽃피웠다. 옛 오키나와인 류큐왕국은 예로부터 중국, 동남아, 한국 등 이웃국과의 교류가 잦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미국의 통치를 받아 오늘날 오키나와는 동서양의 문화가 뒤섞인 이국적인 볼거리와 먹을거리로 그득하다. 자세히 보면 원주민은 생김새도 말투도 우리가 아는 일본인과 조금씩 다르다. 본토와 비교해가며 ‘또 다른 일본’을 감상하는 재미도 꽤 쏠쏠할 듯하다.

17세기까지 류큐왕국에 속했던 오키나와는 조선,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와의 무역중개지로 크게 번영했다. 1879년 메이지 정부 때 오키나와 현으로 편입됐는데, 지금도 오키나와 곳곳에서 류큐왕국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당시의 융성했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피기에 ‘슈리성’만 한 곳이 없다. 오키나와 현청 소재지인 나하시 중심에 위치한 슈리성 공원은 500년 류큐왕국의 정치, 외교, 문화의 중심지였던 거성터로 제2차 세계대전 때 폐허가 된 것을 1992년에 복원했다. 화려한 용 그림과 붉은색이 덧입혀진 건축물들이 일본이라기보다 중국을 떠올리게 했다. 계단 위로 높게 솟은 즈이센몬이라 불리는 서천문을 통과하며 호화로웠던 옛 류큐왕국을 잠시나마 그려본다. 책봉사의 진언에 의해 1427년에 조성된 인공 연못 ‘류탄’도 둘러볼 만하다. 오리와 닭이 한가로이 노니는 연못과 물속에 비치는 붉은 단풍의 조화가 우리나라 창경궁 ‘비원’에 버금가는 풍경이다.

류큐무라 입구에서는 오키나와 식 기모노 ‘빙가타’를 입은 노인이 관광객을 반갑게 맞는다. 안으로 들어서니 100~200년 된 고택(古宅)이 즐비하다. 다과를 먹으며 쉬어가거나 전통 의상을 입어보려는 사람들로 북적대니 사람이 살지 않아도 집 안에 온기가 넘친다. 그러고 보니 집집마다 지붕 위에 사자상이 자리하고 있다. 일명 ‘시사’로 불리는 이 사자상은 각 가정의 화마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단다. 그 옛날, 섬사람들의 액받이 역할을 했던 시사는 지금 오키나와 기념품 가게의 인기 선물로 사랑받고 있다.

여행에서 바닷속을 구경하는 일정이 없다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해양박물관에서 아쉬움을 달래면 된다. 나하시에서 2시간여, 오키나와 북부 모토부 반도에는 ‘츄라우미 수족관’이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답다’라는 뜻의 오키나와 말인 ‘츄라’와 ‘바다’라는 뜻의 ‘우미’가 더해진 이곳은 오키나와를 상징하는 관광 명소다. 층별로 ‘산호의 바다’, ‘열대어의 바다’, ‘심층의 바다’ 등으로 나눠져 있다. 8m 고래상어 3마리, 5m 정도 되는 가오리 6마리가 유영하는 모습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탄성을 내지른다.

일본을 대표하는 술, 사케. 이곳 오키나와에서만은 예외다. 타이쌀로 만든 증류주 아와모리는 우리나라 소주처럼 오키나와 사람들의 ‘벗’이다. ‘안남미’로 불리는 타이쌀은 오키나와 물과 유난히 궁합이 잘 맞아 예로부터 이 지역 사람들이 많이 담가 마셨다. 현재 48개 공장에서 수천 종의 아와모리를 생산하고 있으며, 인구 1000명이 사는 섬에서도 자체 공장을 가동할 정도라니 오키나와 사람들이 얼마나 아와모리를 즐겨 마시는지 짐작이 간다. 여행객들 사이에서 ‘숙취 없는 술’로 이름 나 골프 라운딩 후 밤새 마셔도 다음 날 거뜬하게 공을 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사실인지, 양조장 주인장이 퍼뜨린 고도의 입소문 마케팅인지 알 길 없지만 어찌됐든 오키나와 방문객이라면 이 술을 한 병씩 사서 돌아간단다.
126년째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나하시의 명물 즈이센 주조는 오키나와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와모리 양조장이다. 50m 밖에서도 술 익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양조장은 견학도 가능해 매장에 전통주를 맛보려는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아와모리는 소주처럼 스트레이트로 마시기보다는 대체로 오키나와 유리잔인 ‘류큐가라스’에 따라 얼음에 섞어 ‘온더록(on the rock)’으로 즐긴다. 원료의 단맛을 그대로 느끼기 위해서다. ‘오유아리’라고 해 뜨거운 물을 넣어 마시기도 한다. 이때 술을 나중에 부어야 향이 날아가지 않는다. 취향에 따라 우유나 탄산음료에 섞어 ‘칵테일’로 마셔도 좋다.


오키나와의 술들은 모두 이 지역 음식들과 잘 어우러진다. 날씨가 따뜻한 오키나와에서는 살이 무른 생선회보다는 삶은 돼지고기 요리와 해조류, 각종 채소, 과일을 많이 먹는다.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과일과 채소는 타 지역산 대비 각종 영양소가 두 배 이상 풍부하다. 푹 삶아 기름기를 뺀 돼지고기 수육 한 점에 곁들이는 따끈한 아와모리 한 잔은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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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일본)=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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