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주택의 트렌드 변화

부자들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주택을 선호해왔다. 단독주택을 대신해 강남 아파트와 주상복합아파트가 고급 주택 시장의 주류로 부상하더니, 최근에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와 단독주택이 주목 받고 있다. 시대와 함께 변해온 고급 주택 시장의 변천사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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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은 명품을 좋아한다. 명품 선호현상은 고급 주택 시장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 계급사회에서는 계급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지만, 산업화사회에서는 경제력이 그 사람의 현재를 설명하는 척도가 된다. 주택은 거주하는 사람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상징 중 하나다.

부자들이 서울의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을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자들이 압구정동과 청담동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히 고급 주거지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이들 지역은 1980년 이후 30년 이상 형성된 한국 상류층의 대표적인 주거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우수한 교육 시설, 대형 쇼핑몰 등 다양한 편의시설, 양호한 도로 접근성, 오랫동안 발전해온 최고급 소비문화의 집적 등 고급 주거지에 어울리는 최고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압구정동과 청담동에는 다른 지역에서 모방하기 힘든 그 지역만의 희소성이 구축돼 있는 것이다.

지은용 R파트너스 대표는 “부자들은 소비 심리상 항상 최고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안다”며 “명품 주택은 최고의 입지에 위치한 부동산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지 대표는 “부동산 시장에서 최고의 명품은 항상 사고 싶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기에 가장 유동성이 높고 자산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도 그만큼 낮다”고 부연했다.



초기 고급 주택은 남향의 힐사이드에 위치한 단독주택

그렇다면 부자들이 선호하는 고급 주택 시장은 어떻게 발전해왔을까. 초기 고급 주택은 단독주택이었다. 1세대 재벌들과 전문직 종사자들의 보금자리였던 성북동, 평창동, 한남동, 이태원동 단독주택이 그들이다.

재미난 사실은 이 중 평창동에는 유독 예술가들이 많이 산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풍수지리의 영향이 크다. 예로부터 평창동은 바위가 많은 산에 둘러싸여 지세가 강한 곳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예술가, 학자 등이 살기에는 좋지만 사업가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이 강했다. 지금도 평창동은 예술가와 학자들을 중심으로 주택가가 형성돼 있다.

전통적으로 부촌을 형성해온 이곳들은 남향의 힐사이드(hillside)에 위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초기 고급 주택은 이들 단지를 중심으로 소득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군집을 이룬 배타적 거주 공동체 안에 들어섰다. 건축적으로는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게,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지금도 고급 주택은 외부에서 볼 때 대부분 폐쇄적이다. 부유층의 안전 선호 심리를 그대로 반영한 주택 유형이라 할 수 있다.

강남이 개발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단독주택은 압구정동과 청담동 아파트에 고급 주택 시장의 맹주 자리를 넘겨줘야 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아파트 전성시대의 대표 격이다. 방배동을 중심으로 20~30세대 미만의 고급 빌라가 들어선 것도 그 즈음이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하늘을 찌를 듯 위로 올라간 최고층 주상복합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아파트 시장도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당시 주택의 특징은 공동주택의 고급화와 대형화로 축약할 수 있는데, 그 대표주자가 주상복합아파트였다.

단지 내 각종 편의시설과 첨단 보안 시스템을 갖춘 주상복합아파트는 단독주택과 아파트의 장점을 모두 모아 놓은 듯했다. 그런 점이 부각되면서 많은 부자들이 주상복합아파트로 옮겼다. 당시는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시기라 재산 증식의 재미도 톡톡히 봤다. 주상복합아파트의 대표 격인 도곡동 타워팰리스, 삼성동 아이파크, 여의도 트럼프타워 등이 신흥 고급 주택으로 부상한 것이다.

지 대표는 “주상복합아파트는 부자들의 안전 선호와 편의성에 대한 욕구를 주거 공간에서 가장 잘 실현한 주택 상품”이라고 평했다. 단지 내에서 일상생활과 스포츠, 쇼핑, 여가 활동 등 모든 생활이 가능한 ‘원스톱 리빙(one-stop living)’으로 편의성을 극대화한 것이 주상복합아파트다.
[Korean Super Rich Report] 주상복합 지고 반포자이·래미안 선호, 단독주택 재부상
거액자산가의 전유물이 된 주상복합 내 펜트하우스

가족의 안전뿐 아니라 자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보안 시스템은 부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주상복합아파트는 철저한 첨단 시스템을 통해 허락된 이들만 출입이 가능해 각종 사건, 사고로부터 본인과 가족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부자들의 폐쇄성이 허락되는 새로운 공동주택인 셈이다.

주상복합아파트 내에서도 고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는 거액자산가(Ultra-HNWI)들의 전유물이 됐다. 펜트하우스를 선호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다. 좁은 공간보다는 넓은 공간이 제공하는 심리적인 안정감, 시야가 완벽하게 확보된 조망권, 여기에 자신보다 높은 층이 없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 등이 자리하고 있다.

주상복합아파트는 새로운 주거 형태로 관심을 끌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초고층·최고급 주택 문화인 주상복합아파트는 주거의 쾌적성 측면에서 보면 단독주택에 비해 미흡한 면이 많았다. 2000년대 중반 거셌던 웰빙 바람도 주상복합아파트의 단점을 부각시켰다.

청담동과 한남동 등지 고급 빌라도 비슷한 시기에 주목 받았다. 한강변 아파트들이 한강을 등지고 지어진 데 비해 고급 빌라들은 한강 조망이 가능하게 지어졌다. 연예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이 특히 선호한 이들 주택은 한강 조망권과 사생활 보호, 대형 평형과 다양한 내부 평면 등이 특징이다. 이들 대부분이 한강 조망권을 확보하기 위해 고층으로 지어졌다. 내부 마감재와 인테리어에 최고급 수입품을 쓴 건 당연했다.

고급 빌라들은 최고의 한강 조망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희소성 때문에 수요가 형성됐다. 고급 빌라 수요가 유동성이나 투자 가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단지 최고의 희소성이라 할 수 있는 한강 조망권에 대한 만족감이 고급 빌라를 선택하는 이유였다.

주상복합아파트와 고급 빌라의 뒤를 이어 반짝 부상한 것이 타운하우스다. 타운하우스의 최대 장점은 단독주택과 전원주택의 장점에 공동주택의 장점을 결합했다는 점이다. 타운하우스는 신도시 인접 지역과 택지 개발 지역 내에 위치함으로써 기존 전원주택과 단독주택에 미흡했던 주변 편의시설 부족이 해소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중대형 평형을 중심으로 첨단 시설과 보안 시스템을 갖춘 타운하우스가 부유층을 대상으로 공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타운하우스는 태생적으로 주택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도심에서 떨어져 있다는 불편함뿐 아니라 관리상의 어려움 등으로 수도권, 특히 용인 등지에 들어선 타운하우스는 분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최근 고급 주택의 중심은 서울 시내를 비롯해 판교, 양평, 청평 등지에 들어선 단독주택이다. 반포자이·래미안 퍼스티지 등은 젊은 부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고급 주택의 중심은 서울 시내를 비롯해 판교, 양평, 청평 등지에 들어선 단독주택이다. 반포자이·래미안 퍼스티지 등은 젊은 부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신축 단독주택, 청평·양평 등지 넓은 대지에 건물 3~4채 기본

최근 고급 주택 시장의 총아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와 단독주택이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판교에 단독주택을 지은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는데, 부동산업계에서는 이를 단독주택 부활의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글로벌 부동산업체인 DTZ 이희경 이사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부자들 사이에 단독주택 선호현상이 뚜렷하다”고 전했다. 이 이사는 “한남동 등에서는 오래된 빌라를 허물고 단독주택을 짓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삶의 질을 위해 임대 수익을 포기하고 단독주택을 짓는다”고 설명했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풍조는 한옥 품귀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옥이 많은 성북동은 한옥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매물이 없어 매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단독주택 선호 현상은 서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별장촌으로 유명한 양평, 가평 등에 단독주택을 짓는 이들이 늘고 있다. 양평과 가평은 상대적으로 지가는 싼 반면 자연환경이 좋고, 도로 상황이 크게 개선돼 부자들의 주거지로 각광받고 있다.

양평과 가평은 부자들뿐 아니라 이효리, 강호동, 김수로 등 연예인들의 저택이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배우 이영애가 한남동 빌라에서 나와 청평에 집을 짓고 이사했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도우미들을 위해 직원용 숙소를 지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 이사는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양평과 청평으로 옮겨가는 이들 중 대부분이 외국 생활에 익숙한 이들이다. 외국에서 최소 6개 이상 방이 딸린 집에 익숙한 이들이라, 교외에 집을 지을 때 보통 대지 6600㎡에 주택과 게스트하우스, 헬스장, 직원 숙소 등을 함께 짓는다는 게 이 이사의 설명이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중요한 변화다. 반포 자이와 래미안퍼스티지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젊은 사업가와 전문직 종사자들이 특히 선호한다. 반포 자이와 래미안 퍼스티지는 교통뿐 아니라 편의시설이 고루 갖춰진 곳이다. 교육환경 또한 전국 최고를 자랑한다. 자녀를 외국인학교인 덜위치 칼리지 서울(Dulwich College Seoul)에 보내기 위해 집도 보지 않고 거래부터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반포 자이와 래미안 퍼스티지의 내부 구조도 이전 강남 아파트들과 다르다. 대부분의 한국 아파트들은 현관과 침실, 욕실 등이 거실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반면 반포 자이와 래미안은 각각의 공간이 2~3개의 섹션으로 나눠졌다. 이 같은 평면은 외국의 고급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앞으로 고급 아파트들이 나갈 방향을 짐작케 한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