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원 장미라사 대표
전국으로 따지자면 500여 군데, 서울에만도 200여 군데에 달한다는 수제양복점. 조금 고상한 말로 ‘비스포크’ 양복점 가운데 ‘장미라사’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1956년 제일모직의 일개 부서에서 시작된 역사는 몇 차례의 굴곡을 거친 뒤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이영원 장미라사 대표는 ‘장미라사’라는 브랜드와 함께 청춘을 ‘즐긴’ 사람이다. 옷이 좋아 옷에 흠뻑 빠져 산 33년.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루치아노 파바로티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춰온 그를, 수제양복의 ‘달인’이라고 불러도 별다른 이견은 없을 듯싶다. “1970년대 우리나라 남자들은 멋쟁이였습니다. 옷을 잘 입는 편이었죠. 그런데 1980~90년대로 넘어가면서 남성 패션이 몰락을 했어요. 여성들이 남편 옷을 사주며 남자들이 옷을 크게 입게 되면서부터죠.(웃음)
옷을 크게 입는 것과 문화 수준은 반비례한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은 넉넉한 아메리칸 스타일보다 더 크게 입습니다. 그래도 최근 4~5년 전부터 남성복에 변화가 오고 있어요. 컬러풀해지고 라인도 슬림해졌는데, 남성패션이 다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죠.”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두 벌의 재킷 중에 이영원 대표는 체크 패턴이 세련돼 보이는 스카이블루 쪽을 선택했다. 하의는 복숭아뼈가 살짝 드러나 보이는 짙은 블루 톤 팬츠를 매칭했다. 그 아래로 보이는 스트라이프 양말과 푸른빛이 살짝 도는 짙은 회색 구두만으로도 그를 ‘패션피플’로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옷’에 흠뻑 빠져 산 30년
‘jangmee’라는 브랜드 로고로도 잘 알려진 장미라사는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이 1956년 당시 제일모직이 생산하던 양복지의 테일러링 테스트를 위한 부서로 개설한 데서 출발했다. 그래서 이름에도 삼성의 상징적인 꽃이었던 ‘장미’가 들어가 있다.
장미라사는 1970년대 미8군을 대상으로 맞춤사업을 전개하는가 하면, ‘버킹검’의 효시인 최초의 기성복 브랜드 ‘댄디’ 신사복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장미라사’와 연을 맺은 것은 1977년. 애초에 ‘장미라사’라는 부서가 개설됐던 삼성물산 공채로 입사했다가 1년 후 장미라사가 제일모직에 흡수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제일모직으로 적을 옮겼다.
당시 장미라사 부서에 2~3년 정도 근무하면 다른 부서로 발령을 내주던 것이 통례였으나 그는 ‘눌러앉기’로 결정했다.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그저 옷이 좋았죠.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뒤 ‘월드베스트’를 강조하면서 수제양복이 대기업과는 맞지 않게 되자 장미라사가 제일모직에서 분사하게 됐어요. 1988년이었는데 당시 대형 양복점으로 독립하면서 제가 총지배인을 맞게 됐죠. 대표이사를 맡게 된 건 1998년 2월입니다. 이후 큰 변화를 겪게 됐어요.”
하필이면 IMF 한파가 몰아칠 때다. 너나없이 가격 파괴 전략을 내걸었고, 소비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싼 제품 앞에서 지갑을 열던 시절이었다. 대표이사로 장미라사의 방향 정립을 두고 치열한 고민이 시작됐다.
그때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다. 장고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장미라사의 태생적인 목적이었던 ‘비스포크(Bespoke; 고객의 요구대로 만드는 맞춤복)’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핸드메이드가 뭔지도 모른 채 만들어내기 바빴던 장미라사의 과거를 버리고 혁신을 결정한 것. 이 대표는 작정하고 품목을 줄였고, 더불어 고객층도 줄였다. “사실 포기할까 하는 고민도 많았었죠.(웃음) 하지만 고객들이 수제양복을 버리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19세기 카메라가 발명됐던 때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몰락할 것이라 했지만, 카메라가 대중화된 뒤 초상화 화가들이 오히려 대접을 받았습니다. 아날로그적인 사업은 차별화만 될 수 있다면 수명이 더욱 길어진다는 생각에 착안하게 됐죠.”
진정한 비스포크 슈트 제작을 위해 그는 여러 방면에서 체질 개선에 착수했다. 일단 원단부터 이탈리아 최고급 원단을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1년에 두 차례 철저한 사전 기획을 바탕으로 주문 생산한다.
가끔은 한두 벌 제작을 위한 원단을 주문할 때도 있다. 이탈리아 ‘매그노퍼스’, ‘G베르디’, ‘더 플라티늄’, ‘슈페르머시’ 등 최고급 원단 브랜드에서 들여온 원단에는 ‘jangmee’라는 브랜드가 새겨져 있다. 물론 제일모직 최고급 원단인 란스미어, 로로피아나,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원단도 선택이 가능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원단 확보를 위해 그는 6명의 스타일리스트와 한 시즌이나 두 시즌 정도는 앞서 사는 것은 보통이다. 1년에 3분의 1은 나라 밖에서 보내는 것도 일상이다. 영국 정통 슈트를 지향하는 그에게 ‘새빌로(Savile Row; 영국 런던의 고급 양복점들이 있는 거리.
19세기 후반부터 주목을 끌기 시작해 신사복 발상지나 영국 정통 양복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는 서울의 명동거리만큼 익숙해진 지도 오래다. 장미라사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국내 한두 피스밖에 없다는 수제 넥타이도 모두 그의 발품이 안겨준 ‘전리품’들이다.
‘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즐기다
장미라사 테일러들의 ‘손맛’은 수많은 마니아들을 양산시켰다. 한때 ‘아저씨 양복’으로 평가절하됐던 수제양복이 ‘비스포크’ 양복으로 대접받는 요즘에는 20~30대 고객층이 눈에 띄게 늘었다.
40대는 여전히 어정쩡한 상태요, 50~60대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노년층 고객들이 많단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멋쟁이는 70대 이상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다는 것도 이 대표의 귀띔이다.
“장미라사는 기본적으로 우아한 슈트를 표방합니다. 장중한 느낌보다는 절제미가 있는 스타일이죠. 남성복은 라인이 너무 과하면 가벼워 보이고, 반면 너무 없으면 둔해 보여요. 비스포크는 입는 사람이 참여하는 오트 쿠튀르 패션이랄 수 있어요.
하지만, 테일러가 자기 색깔을 너무 내서도 안 된다는 원칙이 있어요. 그러면서도 누가 입더라도 장미라사 옷이란 냄새는 나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이 아주 힘들어요.(웃음) 많은 고객들이 있었지만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처럼 옷을 잘 아는 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갖고 계시죠. 그분 옷을 보면 늘 입던 옷 같지 않습니까. 바로 그게 비스포크 양복의 멋이에요. 늘 입던 옷처럼 편안한 느낌 말입니다.”
박 명예회장을 비롯해 전두환 전 대통령도 장미라사의 단골고객이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레이스 당시의 고객으로 취임식 때 장미라사 슈트를 입었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도 장미라사에서 옷을 맞췄다.
이들의 공통점은 방한 전 이미 소문을 확보하고 찾아왔다는 것. 특히 파바로티는 내한 공연 때마다 장미라사의 연미복을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렇듯 화려한 고객 리스트를 자랑하는 양복점이지만 이 대표가 생각하는 최고의 VIP는 마니아 고객이다. 비스포크 양복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옷을 ‘향유’하는 모습을 볼 때 그는 가장 행복하다. 장미라사는 서울과 부산 등에서 VIP 고객들을 위한 파티를 열기도 한다.
소수를 위한 프라이빗 파티로, 파티에서는 사교와 함께 상담과 사이즈 측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양복점에서 고객을 기다리던 시대를 뒤로하고 그는 고객과 더 가까이 호흡하기 위해 다가간다. 그와 고객 사이에는 ‘옷’과 ‘멋’이라는 공통의 화두가 있으니 어색할 것도 없다.
이 대표는 ‘옷’을 통한 사람들과의 소통에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옷’이라는 검색어를 치고 대화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만 같다. 그에게 새빌로는 지금 어떠냐고 물으면 엊그제 다녀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복장사, 문화사, 서양사를 꿰고 있음은 물론이다. 심미안(審美眼)을 갖기 위해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예술품이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여행한다. 그러니 고객을 만나면 ‘할 말’이 너무 많다.
“클래식은 사실 가장 스타일리시한 겁니다. 예전 스타일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고, 지난 100여 년간 나올 수 있는 양복의 디자인은 모두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양한 디자인을 적용하되, 획일적으로 가지 않는 클래식 스타일이야말로 스타일리시한 거죠.”
마지막으로 그가 귀띔한 센스 있는 슈트 선택법을 전할까 한다. 권위 있어 보여야 하는 자리라면 라펠이 넓은 슈트를 고를 것. 반면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는 정치인이라면 중간 사이즈 라펠을, 연예인이라면 좁은 라펠이 적당하다.
금융업계 종사자라면 신뢰를 줄 수 있는 네이비 톤 슈트가 부드러운 이미지가 필요한 외교관이라면 그레이 슈트가 제격이다. 혹 스타일리시해 보이고 싶은 욕심에 ‘이탈리안’ 스타일 운운하며 너무 타이트하게 슈트를 맞출 생각이라면 다시 고민해 보는 것이 좋겠다. 이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진정한 이탈리안 스타일은 ‘타이트’한 것이 아니라 몸에 ‘맞는’ 것이라고 하니.
글 장헌주·사진 이승재 기자 c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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