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 실업률은 3.7%지만 청년(15~29세) 실업률은 8.3%에 달했다. 이는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소득을 올리지 못하는 청년만 집계한 수치인데 실상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까지 포함한 청년 체감 실업률은 10월 기준 24.4%다. 4명 중 1명이 일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8명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삶의 질이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최근 벼룩시장 구인구직이 성인남녀 1638명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를 주제로 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7%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삶의 질이 하락했다’고 답했다. 삶의 질이 낮아진 원인으로는 △소득 감소로 인한 불안감, 우울함(27.9%) △취미·문화생활의 제한으로 인한 답답함(25.5%)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불안감(13.8%) △(무급휴직, 정리해고 등) 고용 불안감 확대(10.6%)를 꼽았다. 100세 시대 자산관리 중요성 부각 문제는 이러한 미래 불안감이 코로나19 변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짜 게임은 따로 있다. 저성장 시대, 저출산·고령화사회,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 등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자, 시대적 과제다.
우리나라는 이미 2017년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전체 인구의 14.2%를 차지하며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2000년 고령화사회가 된 이후 불과 17년 만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머지않아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 징후는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년퇴임의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그저 남의 일 같았던 치매 사례도 그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 자료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10.25%(약 84만 명)이며, 2050년에는 15.91%(약 300만 명)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여기에 인구절벽과 저금리 기조까지 더해지는 상황에서 노후 관리는 미뤄도 될 과제가 아닌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할 의무가 돼 버렸다. 뿐만 아니다. 나날이 증가하는 상속·증여 문제와 100세 시대 장기적인 자산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면서 맞춤형 종합자산관리 서비스 수요가 늘고 있다. 그 중심에 신탁이 있다. ‘믿고 맡긴다’는 뜻의 신탁(信託)은 예금, 펀드 등 금융자산은 물론 부동산과 같은 비금융자산에 대한 안정적 관리와 함께 고객의 재산을 생전부터 보관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정할 수도 있어 자신의 노후를 위한 방법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신탁계약 자체가 재산의 유언과 같은 효력이 있어 수탁자에 의한 상속 집행을 통한 가족 간 다툼의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 상속인이 어리거나 자산관리 능력이 부족한 경우까지 보살필 수 있는 관리 방법도 준비할 수 있다. 신탁 플랫폼을 기반으로 부동산자산의 경우에도 다양한 솔루션이 가능하다. 매각 후 상속할 경우와 상속으로 갈 경우 세금의 차이를 비교함은 물론이고, 그 부동산을 보유할 경우 관리 방안과 자산 가치를 증식하기 위한 사전증여와 신축 콘셉트 등에 대해서도 동반자로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이미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신탁 상품이 출시돼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지고 있다.
늘어난 신탁고, 활용도 높이려면 국내 신탁 시장의 외연도 넓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기준 신탁 수탁고는 1020조8000억 원으로 1000조 원을 돌파했다. ‘신탁법’ 개정으로 금융권에서 유언대용신탁 등 각종 금융상품이 나오기 시작한 2011년(410조 원) 이후 10년 만에 2.5배가량 늘었다. 매년 10%씩 증가한 셈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공모펀드 손실 위험이 커지고, 국내에 저금리 기조가 가시화되면서 신탁이 종합적인 재산 관리 도구(tool)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에는 고령화 시대와 맞물려 신탁은 투자 기능뿐만 아니라 재산 관리의 고유 기능을 활용해 생존신탁(가족을 수익자로 지정해 생존 시 파산, 질병 등의 위험으로부터 가족의 생활비 등을 보호)이나 유언신탁(사망 시를 대비해 상속재산 처분 계획을 미리 설정), 사회안전망 역할을 담당할 후견신탁이나 복지신탁 등 다양한 변주를 시도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신탁업을 둘러싼 은행과 증권사 간 영업권 갈등, ‘신탁업법’ 제정에 대한 금융위원회와 정부의 미진한 태도로 국내 신탁이 오롯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신탁의 유연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신탁을 오롯이 활용하기엔 규제도 심하고, 업권 간 갈등이 크다”며 “무분별한 경쟁보다는 상호보완적인 신탁 시장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이 곧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상품으로 돌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로펌의 한 변호사도 “이제 더 이상 신탁은 부자들만의 리그가 아니다”라며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신탁을 활용해 종합자산관리 및 공익적 목적을 위한 일종의 ‘집합신탁’ 제도에 대해 논의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탁에 대한 편견과 오해
출처 <신탁 상속- 재산 분쟁 없는 희망 상속 플랜>(배정식 저)
01 부동산을 신탁하면 소유권을 꼭 넘겨야 하나.
신탁은 원 재산 소유자와 신탁 회사 간에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하게 되는데 부동산의 경우는 신탁등기를 하도록 돼 있다. 즉, 체결한 신탁계약서를 근거로 신탁 회사 앞으로 소유권을 이전하게 되는 것이다. 신탁 후 등기부등본을 열람하면, 신탁 회사 앞으로 소유권이 이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단, 등기 원인이 일반 매매가 아니라 신탁으로 표시되면 원부 번호가 부여되는데, 이는 이전의 원인이 되는 신탁계약서를 말한다.
02 신탁 회사나 은행이 파산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신탁 회사나 은행 앞으로 소유권이 이전돼 있다고 하더라도 설계 소유는 수익자에게 귀속된 것이라 이미 설명했지만, 이를 ‘신탁법’ 제23조(신탁재산은 수탁자와 상속재산에 속하지 않는다)에서도 신탁 회사의 고유 재산과는 별개로 독립된 재산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한 수탁자가 파산하더라도 신탁계약에 의한 재산이 수탁자 자신의 파산재산에 속하지 않음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즉, 신탁 회사의 파산과 관계없이 계약에 협의된 업무를 수행하고 요구가 있으면 소유권은 이전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03 신탁을 해놓으면 신탁재산에 대해서 강제집행을 피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신탁된 재산은 수탁자의 고유 재산 또는 다른 신탁재산과는 독립된 별개의 재산이므로 통상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 즉, 물건 자체에 대해 압류, 가압류 등을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문제는 이를 남용할 경우, 즉 신탁재산 자체가 부담하는 채무가 있거나 채무면탈 등의 목적으로 신탁을 할 경우에는 신탁 자체가 부정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음을 이해하고 적법한 활용이 필요하다.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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