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차세대 송달 전자 시스템 전환 시급
디지털 시대에도 법원의 예금 압류명령 송달 등 등기우편 시스템은 요지부동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만드는 디지털 법원과 차세대 송달 전자 시스템의 전환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급하게 자금을 융통해야 하지만 잔고에 돈이 있음에도 은행에서 예금을 출금하지 못한다. 세무서와 다른 경쟁사 B사 간 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압류된 A씨 예금에서 압류액을 추심 완료했다. 이후 세무서가 압류한 예금을 즉시 해제 처리했지만 B사가 법원을 통해 압류한 예금은 해제가 안 됐다. A씨는 은행에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은행은 법원으로부터 압류 해제 문서가 도착하지 않아 압류를 해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결국 A씨는 직원 월급을 체납해 임금체불 기업으로 전락하며, 자칫 파산까지 이를 지경에 처하게 됐다.

이는 현행 법원 압류 송달 체계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원 예금 압류명령 송달은 등기우편으로 이뤄지고 있다. 금융기관은 우편물을 수령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채무자 압류 대상 계좌에 지급정지를 취한다. 국세청,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약 240여 개 공공기관이 전자정보 체계를 도입한 것과 대비된다.

법원 압류명령 결정 발송 후 금융기관이 결정문을 접수, 채무자 계좌를 동결하기까지 현 체계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통상 최대 5일이 걸린다. 그 사이 채무자가 계좌에서 임의로 출금을 하거나 집행 불능 상황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정부가 이 같은 재래식 아날로그 송달 체계를 개선하고 법원도 디지털화하는 이른바 ‘스마트 법원 4.0’을 추진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모든 산업 생태계는 비대면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다. 디지털 혁신 전환이 범국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전자소송 시스템을 필두로 한 ‘스마트 법원’ 전환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됐다.

한국 소송 시스템, 디지털 전환 시급
현행 한국 소송 시스템은 아날로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스마트 법원 4.0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여러 법적 규제 등으로 인해 개점 휴업 상태다. 특히 구시대적인 예금 압류 명령 송달 체계의 디지털 전환이 시급하다. 국세청,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약 240여 개 공공기관에서는 업무 효율화를 위해 10년 전부터 예금 압류 시 압류 전자정보를 금융공동망으로 송신한다.

스마트 법원의 핵심도 법원 업무 효율화 차원에서 예금 압류명령 송달을 전자송달 체계로 즉시 전환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더 나아가 민사집행법 개정 등 입법 개선 작업도 국회 등과 조속한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대법원은 스마트 법원 4.0(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24년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약 2500억 원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두되는 급속한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 대응해 법원도 디지털화를 꾀하자는 것이다. 모바일 기기를 통한 사법정보 연계, 비대면 서류 제출, 사법포털 서비스 개시 등이 꼽힌다.

특히 지능형 법원 도입으로 소송 서류의 전면 디지털화가 시급하다. 소송 관련 서류를 디지털화한다면 소모적인 소송 관련 시간을 대폭 줄이고 단순 행정 업무를 간소화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송대리인 등이 등기부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등 행정정보 유관기관으로부터 발급받는 서류를 증거로 제출하는 경우, 디지털 전자 시스템을 활용한다면 소송과 관련해 소모적인 부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이 같은 전자 시스템은 국내 시스템통합(SI) 기업들의 경험을 활용한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법원, 차세대 송달 전자 시스템 전환 시급
전자정보 송신제, 조속히 도입해야
법원이 발송하는 압류 정보가 분실, 고의 유출과 같은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또 대량의 압류 문서 보관 과정에서 채무자 개인정보가 판매되는 일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대법원에 예금 압류명령 전자정보송신제를 신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예금 압류는 법원이 등기로 은행과 채무자, 채권자에게 송달한다. 압류 정보를 한꺼번에 모았다가 보내면 이를 은행이 다시 전산 처리 후 압류 결정 조치에 들어간다. 은행은 연간 약 300만 건 이상 압류 명령·압류 해제통지 문서를 법원에서 수령한 후 수기로 입력한 뒤 압류를 실행한다.

여기서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법원이 보내는 우편 송달 방식에 시차가 생겨 집행 신속권이 떨어진다. 채무자가 미리 재산을 은닉하거나 종이문서로 발송된 압류 문건이 제3기업에 판매되는 등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된다. 압류 해제 통지 역시 우편 방식으로 송달돼 채무자 압류가 뒤늦게 해제돼 피해를 보는 사례도 빈번하다.

압류 송달 정보 등을 은행 내부 직원이 채권추심 업체 등 제3자에게 돈을 받고 판매한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또 압류 정보가 무더기로 보관돼 있거나 종이서류로 방치돼 있는 등 상당한 자료가 사라지거나 분실된다. 우편 송달과 수기 입력으로 인한 금융사 간 압류 처리 시점이 달라 채권-채무자 간 분쟁 발생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도 이 같은 송신 체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권은 등기우편 송달로 인해 은행 압류 등록 시간이 늦어지거나 과도한 업무, 비용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모든 압류 송달 시스템을 디지털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원 디지털화, 법 개정 시급
법원 압류 명령에 최적화된 전산모델 개발이 시급하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민사집행법에 전자송달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 금융기관은 압류 명령 수령 후 채무자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 조치를 하는데, 전자정보 수신을 자동화하면 연간 80억 원의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추정한다. 예금 채권에 대한 압류 명령 송달을 현행 우편송달에서 전자송달로 개선할 경우 연간 약 150억 원의 집행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한국도 법원의 여러 부문에 AI, 빅데이터 등 디지털 혁신 기술을 대거 융합하는 작업을 해야 할 때다.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최첨단 미래 기술을 녹이고 지능형 통합 지식 검색을 통해 재판지원 서비스 툴을 전면 혁신해야 한다.

AI 기술을 통해 사용자 질의 의도를 파악하고 일치하는 판결문이나 판례, 법령 정보를 찾아 제공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울러 여러 시스템으로 흩어져 있는 종합 법률 정보, 판결문 검색 시스템, 코트넷 지식 광장, 열린 법률지식백과 등을 AI 기반 지능형 통합검색 포털로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

글 길재식 전자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