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토 파일럿 장치가 이륙부터 착륙까지 모든 비행 과정을 자동화하고 있지는 않다. 조종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이륙 전에 목적지와 항로, 순항 속도와 고도와 같은 데이터를 오토 파일럿에 입력해야 한다. 이륙도 조종사가 직접 수동으로 해야 하고, 일정한 고도에 오른 다음에 오토 파일럿 스위치를 켜서 자율 비행 모드로 전환한다. 오토 파일럿이 작동하는 중에도 조종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조종간을 직접 제어하지 않을 뿐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각종 스위치로 항공기를 추가 조작해야 한다,
타깃데이트펀드(TDF) 운용도 이와 같은 비행 과정과 유사하다. 오토 파일럿에 입력된 비행 목적지와 항로, 순항 속도와 고도는 TDF의 ‘글라이드 패스(glide path)’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비행기 조종사 역할은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가 한다. 이들은 TDF의 글라이드 패스를 만들고 여기에 맞춰 자산을 운용한다. 시장 상황이 맞춰 글라이드 패스를 조정하고, 주식과 채권 비중이 글라이드 패스에서 벗어나면 이를 바로잡는 것 또한 펀드매니저가 해야 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비행기 승객과 같은 위치에 서 있는 것이 투자자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 항공편을 예약한다고 해보자. 먼저 목적지와 탑승 시간을 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목적지와 시간이 일치한다고 아무 비행기나 예약하지는 않는다. 어디를 경유하는지, 비행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항공료는 얼마나 되는지 비교해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용 후기도 꼼꼼히 살펴본다.
TDF를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먼저 자신의 예상 은퇴 시점과 위험 성향을 고려해 투자 목표 시점(target date)을 정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글라이드 패스를 가진 TDF를 고른다. 이때 TDF의 과거 투자 수익률과 변동성을 비교하고, 수수료와 환헤지 방법을 살펴야 한다. 이 밖에 TDF를 선택할 때 투자자는 어떤 것을 살펴야 할까.
① 타깃 데이트는 어떻게 정하나
투자자는 먼저 예상 은퇴 연령, 즉 타깃 데이트를 정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본인의 출생연도에 예상 은퇴 연령을 더하면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60세에 은퇴할 계획을 가진 1975년 직장인이 있다고 치자. 이때 1975에 60을 더해서 나온 ‘2035’가 타깃 데이트가 된다.
예상 은퇴 연령과 함께 투자 성향도 고려해야 한다. 같은 해에 은퇴를 예정하고 있는 근로자라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위험 수용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순 없다. 남들보다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이들도 있고, 반대로 수익을 좀 덜 얻더라도 변동성이 적은 투자대안을 선호하는 이도 있다. 따라서 TDF를 고를 때 이 같은 투자 성향을 반영해 타깃 데이트를 조정할 수 있다. ② TDF끼리 수익률 비교는 어떻게 하나
투자 상품을 선택할 때 항상 마주치는 말이 “과거의 투자 성과가 미래의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펀드와 같은 투자 상품을 고를 때 전적으로 수익률을 무시할 수는 없다.
과거 성과가 미래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해당 펀드가 과거에 어떻게 운용돼 왔는지는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같은 기간 동안 동일한 방식으로 운용된 펀드와 비교해볼 수 있다.
수익률을 비교할 때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장기 수익률을 비교해야 한다. 연금과 같은 장기 투자 상품은 3년 이상 장기 수익률을 비교하는 것이 좋다. 이때 누적수익률과 함께 연환산 수익률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기간별 수익률도 꼼꼼히 비교해봐야 한다. 가령 특정 지역이나 섹터에 투자 대상이 편중된 경우에는 특정 연도 수익률만 지나치게 높거나 낮게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런 펀드에 투자하면 연금투자자가 단기적으로 큰 변동성에 노출될 수 있다.
둘째,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이 유사한 빈티지를 가진 TDF끼리 비교해야 한다. 사과는 사과와 비교해야지 배랑 비교하지 말라는 얘기다. TDF를 비교할 때는 빈티지가 같은 것끼리 비교해야 한다. 그래야 주식과 채권 비중이 비슷한 TDF 간에 수익률을 비교할 수 있다. 빈티지가 같고 그래서 주식과 채권 비중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TDF마다 운용 전략이 상이하고, 투자 지역과 대상이 다르고, 리밸런싱 주기와 방법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수익률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③ 수익률 변동 폭이 큰데, 괜찮나
TDF를 선택할 때는 과거 수익률만 볼 것이 아니라 수익률의 변동성도 함께 살펴야 한다. 흔히 수익률의 변동성을 측정하기 위한 통계지표로 표준편차를 많이 사용한다. 표준편차는 펀드 수익률이 그 펀드의 평균수익률에서 얼마나 벗어나면서 움직였는지 보여준다. 표준편차가 크면 클수록 수익률이 평균에서 큰 폭으로 벗어나 움직였다는 뜻이다.
표준편차를 알면 미래 기대수익이 어느 범위에서 어느 정도 확률로 달성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보자. A펀드의 평균수익률이 연 10%이고, 표준편차가 5%라고 해보자. 수익률이 정규분포 한다. 이 같은 조건에서 A펀드에 투자하면 5~15% 사이의 수익을 얻을 확률이 68% 정도 된다. 0~20% 사이의 수익을 얻을 확률은 95%다.
이번에는 평균수익률이 연 10%이고, 표준편차가 10%인 B펀드를 살펴보자. A펀드와 비교하면 평균수익률은 같고 표준편차는 2배 정도 크다. 그러면 B펀드에 투자하면 어느 정도 수익을 얼마만큼의 확률로 기대할 수 있을까. 먼저 0~20% 사이의 수익을 얻을 확률은 68% 정도 된다. 앞서 A펀드는 동일한 수익을 얻을 확률이 95% 정도 됐었다. 표준편차가 커질수록 수익률 예측이 그만큼 어려워지는 셈이다.
수익률의 변동성이 높으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수익률의 변동 폭이 크면 투자자가 불안해진다. 그리고 불안을 견디지 못해 펀드를 샀다 팔았다 반복하게 된다. 이래서는 TDF 가진 장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TDF의 가장 큰 장점은 글라이드 패스를 따라 펀드가 알아서 포트폴리오를 리밸런싱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TDF 가입자가 변동성을 견디지 못해 TDF를 샀다 팔았다 하면 리밸런싱 효과가 저해될 수밖에 없다.
④ 자체 운용을 하는가, 위탁 운용을 하는가
TDF는 실질적인 운용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자체 운용과 위탁 운용으로 나눌 수 있다. 위탁 운용은 오랫동안 TDF를 운용하며 경험을 쌓아 온 해외 자산운용사가 개발한 글라이드 패스와 자산 운용 노하우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TDF를 운용해본 경험이 많지 않은 국내 자산운용사들 중 상당수가 이 같은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 위탁 운용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해외 자산운용사에서 제공한 글라이드 패스와 모델 포트폴리오에 따라 자산을 운용하면 국내 투자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체 운용은 말 그대로 국내 자산운용사가 TDF의 엔진이라 할 수 있는 글라이드 패스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주체적으로 글로벌 자산 배분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TDF 운용 경험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글라이드 패스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 글로벌 자산의 수익과 리스크를 분석해서 투자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위탁 운용 방식과 달리 자체 운용은 스스로 운용하기 때문에 거래 상대방 리스크가 없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지보수가 가능하다. 위탁 운용에 따른 수수료가 없어 상대적으로 보수가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⑤ 적격TDF 요건을 충족하는가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가입자라면 먼저 글라이드 패스가 ‘적격TDF’ 요건을 충족하는지 살펴야 한다. TDF 중에서 운용 기간 내내 주식 비중을 80% 넘지 않고, 목표 시점 이후에는 주식 비중이 40%를 넘지 않으면 ‘적격TDF’로 분류한다.
적격TDF는 위험자산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DC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적격TDF 하나를 골라 퇴직연금 적립금을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적격TDF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위험자산으로 분류된다. 위험자산에는 DC형 적립금의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
목표 시점 이후에 자산 배분 방식도 살펴야 한다. TDF의 글라이드 패스는 목표 시점 이후에도 주식과 채권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투(to) 방식’과 ‘스루(through) 방식’으로 나뉜다. 먼저 ‘투 방식’은 목표 시점까지만 주식 비중을 줄여 나가고, 이후에는 일정하게 유지한다. 반면 ‘스루 방식’은 목표 시점이 지난 다음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주식 비중을 계속 낮춰 나간다.
‘스루 방식’은 투자 기간 내내 주식 비중을 높게 유지한다. 그리고 글라이드 패스가 목표 시점을 관통해 비교적 완만하게 내려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 방식은 비교적 공격적으로 연금을 운용하려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하지만 목표 시점을 앞두고 주가가 급락하면 상대적으로 손실을 크게 입을 수 있다.
반면 ‘투 방식’은 투자 기간 내내 주식 비중을 낮게 유지한다. 특히 목표 시점 이후에 낮은 주식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특징이다. 이 같은 방식은 은퇴 시점까지 연금을 불린 다음 이후에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성향을 가진 투자자에게 적합하다. ⑥ 환헤지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TDF가 환율 변동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환헤지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투자자가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TDF가 있다. TDF는 이름 끝에 ‘H’ 또는 ‘UH’라고 영어 약자가 붙어 있다. ‘H’는 환헤지를 한다는 것이고, ‘UH’는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TDF 투자자 입장에서 환헤지를 하는 것이 좋을까, 하지 않는 것이 좋을까.
그게 한 마디로 답하기 쉽지 않다. 환율이라는 것은 각 국가의 금리, 물가, 무역수지, 정책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그 방향성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외환시장 상황에 따라 환헤지를 하는 게 좋을 때도 있고, 환헤지를 해서 손해를 볼 때도 있다. 그리고 투자 대상 자산이 주식이냐 채권이냐, 투자 기간이 장기냐 단기냐에 따라서 유불리가 달라진다. 더군다나 요즘 TDF는 다양한 국가의 주식과 채권에 분산투자를 하고 있어서, 가입자 입장에서 이 같은 요소를 모두 고려해 환헤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환 위험 노출 정도를 알아서 조정해주는 TDF도 있다. 투자자가 환헤지를 할지 말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펀드가 스스로 헤지 비율을 조정해주는 방식이다. 이는 TDF가 모자(母子) 펀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투자자가 자(子) 펀드에 적립금을 불입하면, 자(子)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가 여러 투자자들이 적립한 자금을 다시 여러 개의 모(母) 펀드에 나눠서 투자한다. 모펀드를 선택할 때 펀드매니저는 환헤지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헤지형(H)을,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언헤지형(UH)을 고르는 것이다.
TDF 가입자들 중에는 투자 경험과 지식이 많지 않고 투자에 전념할 시간이 부족한 직장인들이 많다. 이들 입장에서는 환헤지를 할지 말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자산 배분과 리밸런싱뿐만 아니라 환헤지를 알아서 해주는 TDF가 적합해 보인다. ⑦ 수수료는 얼마나 지불해야 하나
장기 투자 상품을 선택할 때 수익률과 변동성만 볼 것이 아니라 보수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단기 투자에서는 보수 차이가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연금과 같은 장기 투자에서는 그렇지 않다. 작은 보수 차이라도 장기간 누적되면 복리효과를 일으켜 수익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펀드에서 발생하는 보수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펀드를 판매하는 회사가 가져가는 판매보수,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가 가져가는 운용보수, 펀드자금을 관리하는 금융사에 지급되는 신탁업자보수 이 밖에 사무관리를 담당하는 회사가 가져가는 보수가 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TDF는 재간접펀드이거나 모자펀드다. 이처럼 펀드가 또 다른 펀드에 투자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투자 대상이 되는 하위 펀드에 숨어 있는 보수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이를 ‘합성총보수’라고 한다.
투자자가 합성총보수를 확인하려면 펀드의 투자설명서를 살펴야 한다. 수익률이나 변동성과 마찬가지로 합성총보수를 비교할 때는 동일한 목표 시점을 가진 TDF끼리 비교해야 한다. 그러면 합성총보수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동일한 목표 시점을 가진 TDF라고 하더라도 0.1%에서 많게는 1%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한다. TDF가 국내에 도입된 초기에는 위탁 운용 TDF들의 보수가 자체 운용 것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엇비슷한 수준까지 내려왔다.
글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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