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우울증이 찾아오면 우울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울증이 심해지면 우울한 감정마저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이상한 색안경을 낀 것처럼 세상이 잿빛으로 보이고 감정이 다 말라버린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마음속 감정을 느끼는 시스템이 멈춰버린 탓에 무감정의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답'보다는 '질문'이 마음을 더 위로해준다
우울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 기능이 작동하고 있는 상태다. “가을의 파란 하늘이 느껴지시나요”라는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에 여유로움이 존재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 질문에 의외로 “가을이 온지도 몰랐고 느껴지지도 않는다”고 답변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가을을 탄다’는 것은 계절에 내 마음이 반응하는 정상적인 감정 이다. 파란 하늘을 보면 너무 아름답다가도, 이렇게 좋은 날이 또 흘러가고 있기에 삶의 유한성이 주는 슬픔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앞의 질문에 가을을 느끼고 있다고 답한다면 마음 상태가 괜찮은 것이지만, 아니라면 가을을 타보는 것을 권한다. 현대인은 행복의 기준을 좋은 감정으로만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오히려 우리 삶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 희로애락은 삶의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이다. 분노와 슬픔을 빼내고 기쁨과 즐거움만으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설정해두면 삶이 오히려 우울해진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상적인 가을 타기의 우울도 불편하다고 밀어내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가을을 타는 묘미도 즐길 수 없고 오히려 계절의 변화가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삶의 행복감을 증가시키는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잘한 것들은 버리고 간간이 강한 행복을 하나씩 터트리는 방법이다. 화끈해 보이지만 우리 마음에는 적응이라는 기전이 있어 아무리 강해도 지속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 심지어는 더 강한 것을 터뜨리지 않으면 마음에 기별이 없는 행복에 내성마저 생긴다. 다른 방법은 강력한 자극보다 삶의 소소한 자극에도 내 마음이 반응할 수 있도록 행복 반응의 역치를 낮추는 것이다. 강도 위주의 접근보다 효과적으로 행복감을 지속시켜준다.

열린 질문과 반영적 경청
‘답’을 잘하는 훈련에 학창시절부터 상당한 시간을 투자한다. 시험도 면접도 답을 잘 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소통에 있어서 의외로 ‘질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적절한 질문은 효율적인 정보 교환은 물론 신뢰관계도 증진시킨다.

한 연구에 따르면 보통 네 가지 형태의 질문을 구사한다고 한다. “안녕하셨어요”와 같은 진입 질문, “네, 안녕하셨죠”와 같은 유형의 거울 질문, “그런데 지난번 그 일은 잘 해결되셨나요”와 같은 대화 전환 질문, “그래서 어떻게 되셨는데요”와 같은 폴로업(follow-up) 질문이다. 이 중 폴로업 질문이 경청의 느낌을 주기 때문에 신뢰관계 증진에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동기부여소통은 건강 행동 증진에 활용되는 소통법이다. 보통은 “술 끊어”라는 식의 직면적 소통을 많이 하는데 실제 효과가 좋지 않다. 자유라는 욕구가 있기에, 옳은 이야기라 해도 “넌 문제가 있어, 네 자유를 좀 줄여”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변화에 대한 저항이 훅 올라온다.

이에 반해 동기부여소통은 저항을 줄이고 상대방의 동기를 강화해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으로, 핵심 기법은 열린 질문과 반영적 경청이다. “술 끊어”라는 말은 직면적 닫힌 소통이다. “술 안 끊을 거야?”라는 말은 질문이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답변을 구석에 몰아세우는 닫힌 질문이다. “술 줄이는 게 왜 어려울까”라는 질문이 열린 질문이다. 반영적 경청은 폴로업 질문에 자신의 의견을 살짝 반영해 올려놓는 소통 기술이다. “술을 줄이고 싶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확 술이 당기는데 쉽지가 않아”라고 상대방이 답했다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술이 더 생각나는 거야? 무언가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이 필요하겠네”가 반영적 경청의 예다.

사람은 변화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때 저항이 덜 생기고 동기도 증가한다. “술을 줄이려면 등산 등 스트레스를 풀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 것 같아, 노력해볼게”라는 식의 변화대화(change talk)가 상대방 입에서 나올 때까지 동기부여소통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기술이 어려운 것은 아닌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누르고 열린 질문과 반영적 경청을 이어간다는 것이 엄청난 사랑이다.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곧 추석 연휴다. 가족을 보고 싶은 그리움도 크지만, “취직했니”, “결혼 언제 할 거니”와 같은 질문이 잔소리로 느껴져 꺼려진다는 고민도 적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면 모임은 못하게 되더라도 추석 선물로 ‘좋은 질문’을 기획해 가족과 공감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글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