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물건 아니다"...펫보험 대변화 예고
법무부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고 선언적 조항을 삽입, 동물의 법적 지위를 끌어올렸다. 이에 보험 업계는 조심스럽게 기존 펫보험에도 대변화가 예상된다고 전망하고 있다. 반려동물 사고에 위자료는 물론 형사처벌까지도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A씨와 함께 산책하던 반려견이 갑자기 찻길로 뛰어들어 지나가던 자동차에 부딪혀 반려견이 즉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가족 같은 반려견의 사망으로 아픈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상대편 보험사는 차량 파손 등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통보했다. A씨는 반려견 사망에 대한 위로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가해자가 돼 피해보상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향후 A씨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법적인 해석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물건으로만 취급하던 동물의 법적 지위를 법무부가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방안으로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 차원에서 동물을 물건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보겠다는 것이다.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동물은 그 자체로 법적 지위를 얻게 된다. 이에 따라 반려동물을 보장하던 펫보험도 대변화가 예상된다.

“동물, 물건은 아니다”…선언적 조항 명시
법무부는 지난 7월 19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으로 민법 제98조의 2를 신설했다. 다만 “동물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단서를 덧붙였다.

동물 관련 단체 등 시민사회에서는 법무부의 이 같은 입법예고 조항을 ‘선언적’이라고 분석한다. 단서조항까지 덧붙어 있기 때문에 당장 큰 변화가 있기는 어려울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물건으로만 취급돼 왔던 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시작·확대되는 것 그 자체가 큰 의미라고 해석하고 있다.

반려동물 사고, 지금까지는 재물로 처리
KB금융지주가 발행한 ‘2021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04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한국 전체 가구의 약 30%에 달하는 수치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는 1448만 명이다. 국민 4명 중 1명은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는 셈이다. 현재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면 동물이 물건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재물로 구분돼 왔다.

앞서 반려견이 찻길로 뛰어든 사례를 드론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더 명확해진다. A씨가 연습하던 드론이 조정 미숙으로 찻길로 날아들었다. 운행 중이던 차량에 부딪혔고, 차량 운전자는 드론을 피하려다 2차 사고까지 냈다. 드론이 날아들 것이라고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 경우에 드론 소유주인 A씨가 차량 운전자 및 2차 사고 차량의 피해까지 전부(과실 비율이 있다면 일부) 보상하는 것이 당연하다. 소유주가 명확한 물건이 원인을 제공해 재정적인 손해가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도 법적으로 물건으로 취급됐다. 이에 드론이 유발한 사고와 마찬가지로 처리됐다. 즉, 반려동물이 원인을 제공해 사고가 났다면 그 소유주가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것이다.

법원의 판단도 반려동물을 재물로 판단해 왔다. 춘천지방법원은 A씨와 비슷한 사건으로 발생한 손해배상청구소송(2016가소5501)에서 애견 주인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소유했던 재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고이니 이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거다.

반려동물 사고,
앞으로 위자료 청구도 가능?

향후 동물이 물건이 아니게 된다면, 반려동물 사고에도 위자료 명목으로 보상이 일부 가능해질 수 있다. ‘대체 불가능한 물건’의 경우 위자료가 인정돼 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반려동물은 대체 불가능한 물건이 아니었다. 따라서 법적 분쟁에서도 위자료를 인정받지 못했다. 상대방의 일방적인 과실로 반려동물이 살해됐을 때도 같은 품종을 분양받는 정도만 보상받는 데 그쳤다.

다만 A씨의 책임은 더 막중해질 수 있다. 소유주가 아닌 보호자의 개념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보호감시 태만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함께 걷던 어린 아이가 찻길로 갑자기 뛰어들어 교통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의 일부를 보호자가 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법무부가 동물권을 인정함에 따라 반려동물 관련 사고는 물적 사고가 아니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아직 법리적 해석이 없어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반려동물도 사람처럼,
향후치료비 등 인정받을 수도

일부 반려동물의 경우 TV에 출연하고 모델료를 받기도 한다. 반려동물이 돈을 버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고로 수익을 창출하는 반려동물이 다치거나 죽었다고 해도 지금까지는 향후치료비나 상실수익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향후에 치료하는 비용은 물론 상실수익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향후치료비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치료비의 총액을 합의 시점에 책정해서 받는 것이다. 상실수익은 사고로 수익 창출 능력을 전부 혹은 일부 잃어버렸을 때 이를 책정해 지급하는 것이다. 즉, 반려동물의 미래 치료비와 수익까지 합의 시점에 일시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재물은 형사소송으로 번지기 힘들었다. 이에 고의로 동물을 해쳤을 경우에도 형사적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동물이 물건이 아니게 되면, 고의로 동물을 상해·살해할 경우 형사소송이 진행될 수 있다. 손해배상은 물론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펫보험 대변화 예고…
형사책임·정액담보 포함될까

펫보험도 대변화가 불가피하다. 현재 펫보험은 반려동물이 가입하는 실손보험 개념이다. 반려동물이 질병에 걸려 아프거나 다쳤을 경우 실제 발생한 치료비의 일부를 보상하는 게 펫보험 약관의 골자다.

앞으로 펫보험은 민사뿐만 아니라 형사적 책임도 보상받을 수 있도록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흡사 운전자보험 담보인 ‘변호사선임비’ 등의 담보가 포함되는 것이다. 또 암보험이나 종신보험처럼 반려동물이 특정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할 수도 있다. 반려동물이 사망하면 5000만 원, 특정 질병에 걸리면 3000만 원 등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현재 펫보험은 반려동물에게 생길 수 있는 극히 일부 문제만 보상 가능하다. 반려동물 전반에 걸친 보장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글 김승동 뉴스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