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비거리’를 장점으로 내세운 아이언이 인기다. 하지만 웃을 수가 없다. 비거리를 얻는 대가로 형제들을 내어줬다. 그래서 아이언은 눈물을 흘린다.
[equipment] Long Distance Iron
아이언 세트 개수가 줄고 있다. 이유는 세 가지다.
불가피한 것 둘, 자초한 것 하나다.

불가피한 첫 번째 이유는 클럽 개수 규정이다. 세계 골프를 관장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는 골프 규칙을 제정한다.
두 협회는 1936년 투어에서 선수가 사용할 수 있는 클럽의 개수를 14개로 제한했다. 규정이 만들어진 후 선수들의 클럽 구성에 변화가 생겼다. 우드 5개(1~5번), 아이언 12개(1번~SW), 퍼터 1개 중 필요한 것으로 14개를 꾸려야 했다. 일반적인 선택은 우드 3개(1번, 3번, 5번), 아이언 10개(3번~SW), 퍼터 1개였다. 자연스럽게 1~2번 아이언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개수 규정과 가격은 불가피
불가피한 두 번째 이유는 가격이다. 드라이버, 퍼터 등과 비교해 아이언은 교체 주기가 길다. 골프용품 회사는 가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언은 세트라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비싸다. 가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골프용품 회사가 선택한 방법은 개수 줄이기다. 먼저 3번을 빼서 9개 세트를 만들었다. 이것도 모자라 웨지 2개(GW, SW)를 뺐다. 7개까지 개수가 준 아이언의 가격은 그만큼 저렴해진 느낌이다. 물론 GW, SW를 포함하는 초·중급자용 세트도 있다. 이 경우 4번을 빼서 8개 세트로 구성하기도 한다.

제 발등을 찍은 아이언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자초했기에 뼈아프다. 바로 ‘로프트 세우기’다. 아이언 세트 개수가 줄어든 것은 시대의 흐름상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변화에 속도를 더한 것은 아이언 자신이다. 신제품에는 필연적으로 ‘향상된 성능’이라는 결과물이 필요하다. 멋스러운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기능적인 향상을 보여줘야 한다. 이때 기준은 이전보다 얼마나 볼을 멀리 보내느냐다. 한동안 신소재 적용, 디자인 변화 등으로 아이언 비거리는 꾸준히 길어졌다. 하지만 한계에 직면한 용품 업체는 ‘로프트 세우기’라는 변칙을 선택했다. 같은 번호라도 로프트가 세워지면 그만큼 비거리가 길어진다. 롱 아이언(1~3번)이 세트에서 빠졌으니 로프트를 세워 그 비거리를 확보하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문제는 로프트를 세운 탓에 GW, SW에 이어 PW도 세트에서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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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세운 로프트
요즘 아이언 세트 구성은 어떨까. 우리나라 골퍼에게 익숙한 10개 브랜드의 주력 아이언 세트를 살폈다. 아이언 개수와 번호별 로프트는 모델별로 차이가 확연했다. 초급자용은 4번 또는 5번부터 SW까지 8~9개, 중·상급자용은 4번부터 PW까지 7개 구성이 일반적이었다. 대부분 로프트를 세웠는데 초·중급자용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10년 전에는 3번부터 SW까지 10개 세트가 많았고, 로프트 편차는 4도였다.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구성의 아이언 세트가 있다. 다만 선수용으로 구분되는 일부 모델이다. 대부분 아이언 세트가 그렇지 않다. 3번이 사라졌고, 번호 하나~둘 이상 로프트를 세웠다.

비거리 증대,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아이언 비거리가 길어진 것은 단편적으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다. 브랜드들은 아이언 비거리 증대를 위해 로프트를 세워왔다. 롱 아이언이 사라졌지만 사실 번호 하나씩 세웠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마지막 클럽이 하나 사라졌다는 뜻이다. 4번~PW 아이언 세트가 로프트로 따지면 3~9번인 셈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아이언 세트 마지막 클럽과 웨지의 거리 편차다. 만약 52도 AW와 56도 SW를 사용하는 골퍼라면 PW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이언 세트 교체 후 PW와 가지고 있던 AW의 거리 편차가 1클럽 이상 벌어진 게 의아했다면 이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과거에는 스탠더드 아이언 기준으로 PW 로프트가 48도였다. 52도, 56도 4~5도 로프트 편차에 문제가 없다. 지금은 PW 로프트가 44도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4도 편차로 48도, 52도, 56도 3개를 구성해야 비거리 편차를 일관되게 할 수 있다.

롱 아이언 자리 채운 하이브리드
롱 아이언이 빠진 자리를 차지한 것이 하이브리드다. 페어웨이 우드와 롱 아이언의 장점을 결합한 클럽이다. 페어웨이 우드보다 작지만 헤드 모양이 비슷하다. 아이언보다 관성 모멘트가 커 볼의 휘어짐이 적고, 무게 중심을 낮춰 볼을 높이 띄울 수 있다. 아이언보다 솔이 넓지만 러프에서도 볼을 칠 수 있는 아담한 크기와 디자인이 장점이다. 무엇보다 고탄도, 고스핀 성능으로 먼 거리에서 그린에 볼을 세울 수 있는 게 매력적이다. 하이브리드는 우수한 성능을 앞세워 롱 아이언의 자리를 꿰찼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 분위기다. 로프트를 다변화하며 미들 아이언뿐만 아니라 짧은 페어웨이 우드를 위협하고 있다. 하이브리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로프트가 단순했다. 21도, 23도 중심이었다. 이후 19~24도로 영역이 넓어졌고 최근에는 17~30도로 다양하게 구성된다. 일부 브랜드는 7~8번 아이언에 해당하는 33도 모델을 출시하기도 한다. 앞에서는 하이브리드, 뒤에서는 웨지가 아이언을 압박한다. 비거리를 늘이기 위해 로프트를 세운 게 후회스럽다. 머잖아 4번, PW도 떠나보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아이언은 오늘도 눈물을 흘린다.

글 류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