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 작가 <믿는 인간에 대하여>

길을 잃기 쉬운 사막에서 별을 보고 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치 않는 나만의 별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한동일 작가의 마음속 별자리는 어떤 모양일까.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본다.
[Interview]한동일 “누군가의 ‘곁’이 돼주는 어른, 제 꿈이죠”
“더딘 걸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 <믿는 인간에 대하여> 중에서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 변호사, 35만 부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 한동일 작가에게 붙는 화려한 수식어다. 이제 한 작가의 이름 옆에 또 다른 별칭이 하나 더 붙는다. 바로 아픔과 고민을 나누고 싶은 ‘진정한 어른’이다.

한 작가의 신간 <믿는 인간에 대하여>에서도 그가 전하는 어른의 온기를 엿볼 수 있다. 해박한 지식과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인간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냉철하게 담았지만, 동시에 그의 글 구석구석에는 세상에 대한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이 스며 있다.

책 <믿는 인간에 대하여>를 출간하셨습니다. 종교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내기가 쉽지만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 주제로 책을 쓰는 것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아름다운 내용보다는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내용을 너무 많이 듣게 되잖아요. 사람들의 일상과 삶이 너무 피곤한데, 굳이 그런 내용을 알게 해서 더 피곤하게 만들 이유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종교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고민이 됐죠.

이번 책을 읽으며 좀 실망한 분도 있을 거예요. 나긋나긋한 신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라셨을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신앙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히 감정적으로 ‘좋다’, ‘안 좋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역사부터 철학, 문화까지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올라가며 ‘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가’를 이야기해야 하거든요. 제 안에 있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현재는 사제직을 내려놓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책 <라틴어 수업>에서 ‘종교는 정원이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어요. 정원에는 관리사가 원하는 나무만 머물 수 있죠. 큰 정원이 있을 수 있고 작은 정원이 있을 수 있지만, 정원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 속에는 관리사가 원하고 의도한 것들만 존재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정원 관리사가 원하는 범위 안에서만 생각하고 살아갈 수 없어요. 정원을 나와서 더 큰 세상, 그러니까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이제는 ‘공부하는 사람’, ‘학자’로 접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저는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되는 것 자체보다는 그것을 성취하기까지의 과정을 너무나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30대 초반에 유학을 가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할 때까지는 정말 교만했어요. 석사는 2년 만에 끝냈고, 박사는 1년 만에 끝냈거든요. 그런데 변호사 자격증을 따기까지는 6년이 걸렸습니다. 로타 로마나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면서 거대한 절벽을 만난 것 같은 한계를 느꼈어요. 이 벽을 어떻게 깨야 하는지 막연했던 거예요. 유급을 두 번 당했는데, 유급을 당하면 그간 거쳤던 수업과 시험을 다시 반복해야 합니다. 정말 어려운 과정이었죠.

그런데 그 과정을 끝까지 해보는 데서 쾌감이 생기더라고요. 사람들이 저에게 가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그런 질문에 대해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전해드려요. 오십 이후에 후회하지 않을 나의 모습을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요. 제가 로타 로마나에 도전할 때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유럽 사회·문화의 진수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 역할을 해주거든요. 그런 부분을 깊이 공부할 수 있었던 경험이 저에게는 정말 큰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책 내용 중 ‘어떤 별을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우리가 가는 걸음의 방향은 달라질 것’이라는 문장이 있던데요. 작가님 인생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지내던 때에 겪은 일인데요. 정말 가보고 싶은 지역이 있어서 차로 운전해서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군인이 못 지나가게 길을 막고 있는 겁니다. 비가 와서 못 간다는 거예요. 사막에는 비가 자주 오지 않지만, 한 번 비가 오면 길이 다 바뀌고 끊어지거든요. 바람이 세게 불면 모래가 흩날려 길이 바뀌고요.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물어봤죠. 이렇게 길이 자주 바뀌면, 옛날에는 이 사막을 어떻게 걸을 수 있었던 거냐고요. 그랬더니 ‘별자리를 보고 걸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 답을 듣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보고 걸어야 되겠다는 생각이요. 철학이나 법학에서는 이처럼 변하지 않는 것을 ‘자연’이라고 표현합니다. 산이나 바다 같은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시공간을 넘어 보편 타당하게 옳고 맞는 것을 뜻하는 말이죠. 특정 종교집단이나 사회집단에 속해 있다고 해서 그 집단의 주장을 따르는 게 아니라, 동서양(지역)과 인종,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저의 별은 그것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깊이 탐구하고 나누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고도 하셨는데요. 배운 것을 나누는 과정에는 어떤 즐거움이 있나요.
즐거움보다는 고마움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학생들은 제가 학습한 것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었거든요. 아무런 선입견 없이 제 강의만을 들어주는 학생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학생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단지 제가 먼저 경험한 학문의 세계를 조금 보여주는 정도라고 생각했죠.

앞으로 기회가 되면 젊은 학부생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학부생 강의를 하면 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이 보여서 참 좋아요. 도로를 측량할 때 시작점에서 조금이라도 각도가 달라지면 갈수록 엄청난 오차가 나잖아요. 처음에는 아주 미세한 차이였는데도 말이죠. 저는 좋은 책과 강의가 바로 그런 변화를 일으킨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잘 바뀌지 않거든요. 20대 초반의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자신만의 사고가 형성돼 있을 텐데, 그걸 바꾸기는 어렵죠. 책과 강의를 한 번 본다고 해서 인생이 확 바뀔 수는 없어요. 하지만 도로를 측량할 때처럼, 지금의 미세한 변화가 10~20년이 흐른 뒤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 있어요. 책과 강의, 그리고 미디어의 역할이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Interview]한동일 “누군가의 ‘곁’이 돼주는 어른, 제 꿈이죠”
인간은 고통과 혼돈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힘든 분들이 많은데,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계신가요.
가끔 언론에서 아름다운 청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를 접합니다. 물론 그런 상황이 힘들다는 것은 다 이해합니다. 제가 그분들의 상황을 100% 알 수도 없는 것이고요. 다만 그런 상황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특히 ‘공부’라는 게 무엇을 암기하고 시험을 잘 보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여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이번 도쿄 올림픽 때 프랑스 선수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라 비에 콘티뉴(La vie continue). 인생은 계속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인생은 계속될 겁니다.

코로나19 시대를 기점으로 인류는 현대를 마감하고 초현대의 시대로 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초현대는 어떤 모습인가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사회에 엄청난 논란이 있었는데, 바로 인간의 존엄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이죠. 그때부터 인권 등의 개념이 파생되기 시작했습니다. 초현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 또한 ‘인간의 존재’예요. 제가 책에 이런 이야기를 쓴 적이 있어요. 거대하고 휘황한 문명은 우리를 저마다의 인격과 이상을 가진 ‘인간’의 지위에서 무수한 ‘소비자’ 가운데 하나, 무지한 ‘대중’ 가운데 하나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는 내용인데요. 우리가 존엄하고 유일한 존재로 서 있으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존재와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겁니다.

인간의 DNA에는 두 가지 사고가 박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공평하려고 하는 사고가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하려고 하는 욕구가 있어요. 두 가지가 상충하는 거죠. 초현대 시대에는 누가 이런 가치를 먼저 잘 정립하는지에 따라 선도하는 국가와 사회가 갈릴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교육도 그런 부분을 고민해야 하는데요. 아쉬운 점은 기존에 암기하는 공부를 통해서는 해결이 어렵거든요. 이제는 공식 없이 우리 스스로 답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팬데믹,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등 혼돈이 가득한 시대입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종교의 가장 큰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독일에는 종교세라는 게 있습니다. 종교세를 안 낼 수는 있지만, 만약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세례를 받지 못하고 장례미사나 예배를 할 수 없는 거죠. 독일 친구들과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너희는 왜 종교세를 내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런 대답을 하더라고요.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교회가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낸다는 거예요. 바로 그 대답 속에 종교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고 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산 위의 도시’라고 표현합니다. 산 위의 도시는 밤이 되면 빛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새롭게 탐구 중인 학문의 주제가 있나요.
흔히 우리나라 법학은 일본법에서 영향을 받고, 일본법은 독일법에서 영향을 받은 정도로 알고 있죠. 그리고 독일법은 과거 로마법에서 영향을 받았고요. 그런데 로마법에서 독일법으로 가기까지 1000년의 시간이 법학의 역사에서 비는 거예요. 비어 있던 1000년의 시간을 제가 <법으로 읽는 유럽사>라는 책에서 설명하고 싶었는데, 그 책에서는 11세기에서 16세기까지밖에 못 다뤘어요. 지금 나머지 500년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가 로마제국에 이민족이 들어와서 멸망하던 때거든요. 서로 전혀 다른 사람들끼리 살아가야 했던 시기였죠. 우리도 다문화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인데, 당시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갔는지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현대보다 과거가 다문화, 다종교, 다인종으로 인한 충격이 적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완전히 섞이지 않고 각각의 문화를 지키고, 법을 해석할 때도 속인주의(국적을 기준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로 하더라고요. 현대사회에서는 어떻게 다문화의 체계를 이해할 수 있을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이번 책이 나온 뒤에 자꾸만 저에게 ‘어른’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내 안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들도 많이 있고, 자기 성숙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인데 무슨 어른이냐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자꾸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니까 한 번 생각을 해봤죠. 그래, 그럼 그 ‘어른’, 내가 한 번 해보자.

다만 저 혼자가 아니라 여러분도 함께 해보자는 생각이에요. 조금이라도 누군가의 곁이 돼줄 수 있도록 말이죠.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했던 공부는 저의 여한을 남기지 않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공부를 통해 누군가의 곁이 될 수도 있거든요. 학문적인 나눔일 수도 있고, 생각을 나누는 것일 수도 있고요. 꿈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닮아가는 거라고 하죠. 그래서 한 번 닮아가 보려고요.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