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식량위기 시대, ‘스마트 농업’이 답인가
“농업은 첨단 기술 도입이 시급한 분야다.”(자미 힌드먼 존디어 최고기술책임자)

이른바 ‘식량위기’에 대한 공포가 현실화된 요즘, 안정적인 식자재 생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기후변화, 고령화 추세는 필연적으로 농업의 혁신을 재촉하고 있다.

식량위기. 현생 인류 앞에 좀처럼 닥칠 것 같지 않던 식량난 이슈가 이제는 현실로 한 발짝 다가왔다. 온난화로 인한 기후재난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코 앞의 미래가 된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세계적인 공급망 교란이 생기면서 안정적인 자원 공급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식량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까지 잇따르고 있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40.7로 1년 전보다 20.7% 뛰었다. 이는 지난 1996년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막시모 토레로 FAO 수석 경제분석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의 식량 안보에 중대한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며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의 저소득층은 가격 인상에 취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밀 가격이 8.7% 인상될 전망이며, 최대 21.5%까지도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지만 밀 공급의 30%를 이들 나라가 책임지고 있다.

글로벌 식량위기는 비단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당장 급등하는 국내 밥상 물가만 봐도 국내 식량 관리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월 우리나라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6% 올랐다. 국제 농산물 가격 흐름이 국내 시장에 점진적으로 반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국내 식료품 물가 상승은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애그플레이션(agflation: 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늘어난 이유다.
[Special] 식량위기 시대, ‘스마트 농업’이 답인가
농업 분야도 디지털·기술 혁신…
’애그리테크’ 주목

기후위기가 곧 식량위기로 종착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꽤 오래된 전망이지만, 최근 잇따르는 글로벌 이슈는 이런 위기 의식을 더욱 재촉하는 배경이 됐다. 발빠르게 진화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다소 변화가 더딘 축에 속했던 농업 분야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첨단 기술과 디지털 인프라를 기반으로 혁신하는 ‘애그리테크(agri-tech)’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올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인 CES 2022에서도 농업(agriculture)에 기술(technology)을 접목한 애그리테크(agri-tech) 분야가 예년 에 비해 크게 주목받은 바 있다.

애그리테크는 국내에서 ‘스마트 농업(smart agriculture)’이라는 표현으로도 통용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스마트 농업은 시설원예, 축사, 과수, 노지를 비롯해 농업 관련 전후방 산업 모든 분야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융·복합해 농산물 생산의 정밀화, 유통의 지능화, 경영의 선진화를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애그리테크 분야로는 스마트팜, 실내 수직농장, 자동화 로봇, 농업용 드론, 자율주행 농기계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스마트팜과 실내수직농장 기술은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기술력이 성장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분야다.
사진=플랜티팜
사진=플랜티팜
전문가들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농업 분야가 로봇,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는 분야라고 진단한다. 기존의 관행적 농업만으로는 현재의 환경적 문제를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는 만큼 ICT, 바이오, 나노, 환경 등 다양한 기술을 융·복합한 애그리테크가 인구·기후 재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이야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글로벌 환경 변화 요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들”이라며 “애그리테크 활용을 통해 글로벌 환경 변화를 새로운 모멘텀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미 미국, 네덜란드 등 농업 선진국에서는 스마트 농업에 대한 오랜 투자와 연구·개발(R&D)로 빠르게 정착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보고서를 보면, 미국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의 합종연횡과 벤처캐피털,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확대로 빅데이터 기반의 처방식 농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파종, 비료·농약 투입, 수확 등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의 의사결정을 빅데이터 기반의 AI 처방으로 일상화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농업 대기업인 존디어는 DN2K와 블루리버 테크놀로지를 각각 2015년과 2017년에 인수해 정밀 농업 데이터 기반의 파종 처방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또 몬산토는 빅데이터 기업 클라이밋 코퍼레이션을 인수해 날씨-작황 데이터 분석을 돕는 ‘플라이밋 필드뷰’ 서비스를 선보였다. ‘농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에어로팜은 수직 식물농장 형태의 스마트팜을 운영한다. 실내에서 작물을 건물 쌓듯 수직으로 길러 농지 면적을 아낄 수 있고, 바깥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물 관리를 하는 덕에 생산성이 높다.

세계 2위 농산물 수출국인 네덜란드의 스마트팜 보급률은 99%에 달한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스마트팜 기업으로는 프리바(PRIVA)가 있다. 1977년부터 온실에서 작물을 관리할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을 운영한 프리바는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온실환경 제어 시스템 기업으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다. 현재 100개국 이상의 국가에 스마트팜 기술을 수출 중이다.
[Special] 식량위기 시대, ‘스마트 농업’이 답인가
이에 반해 지난해 말 정부가 내놓은 ‘빅데이터·AI 기반 스마트 농업 확산 종합대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스마트 농업 분야 기술 수준은 최고국 유럽연합(EU) 대비 70.0% 수준으로 4년의 격차가 난다.

다만 ICT를 접목한 스마트팜 기술을 중심으로 스마트 농업이 점차 존재감을 드러내는 분위기다. 국내 대표적인 스마트 농업 회사인 팜에이트는 스마트팜 작물을 활용해 샐러드를 가공해 유통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회사 플랜티팜을 통해 자사의 식물공장 기술 솔루션을 보급한다. 엔씽은 2017년 컨테이너 수직농장을 만든 국내 스마트팜 스타트업이다. 무인 자동화, AI 기술을 접목해 생육단계별로 최적화된 환경 관리를 하고 있다. 그린랩스는 클라우딩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해 각 스마트팜의 농작물 빅데이터를 축적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스마트 농업 성장세 지속…
정부 800억 대 투자 계획

스마트 농업의 미래는 앞으로 더 밝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MarketsandMarkets)은 전 세계 스마트 농업 시장이 2020년 138억 달러에서 오는 2025년 220억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시장도 2020년 2억4000달러에서 2025년 4억9000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국내 애그리테크 분야의 경우 해외 농업 선진국에 비해 아직 발전될 여지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저평가된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오히려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게 시장 안팎의 시각이다. 정부가 빅데이터와 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스마트팜 등 농업 분야의 디지털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점도 스마트 농업 분야에 희소식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최근 농촌진흥청은 올해 디지털 농업 기술 개발·보급을 위해 878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