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 중국 침공 막는 방패 될까
군사력 측면에서 골리앗과 다윗으로 자주 비교되는 중국과 대만. TSMC로 대표되는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중국의 침공을 막아줄 방패가 돼줄까.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처럼 중국에 제재를 가할 경우, 우리는 대만을 수복해야 한다. 특히 산업 공급망 재건을 위해 TSMC를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 TSMC가 미국에 공장 6개를 건설하며 미국으로 이전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목표가 달성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천원링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CCIEE)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5월 30일 인민대학 산하 총양금융연구소가 주최한 중·미 포럼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CCIEE는 중국 경제계획기구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산하 기관이다. 중국 정부에서 오랜 기간 일해 온 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총리의 업무 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 등에 참여해 온 여성 경제학자다. 따라서 이런 언급은 중국 정부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도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대립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전략 자산으로서 대만 반도체 산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입증하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해 온 ‘골리앗’ 중국에 비해 열세인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다윗’ 대만이 당당하게 맞서고 있는 숨은 이유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로 대표되는 반도체 때문이다.

대만 경제는 반도체 산업의 호황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지난해 수출의 37%, 대만 국내총생산(GDP)의 17%를 차지했다. 대만 재정부는 지난 4월 수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18.8% 늘어난 414억6000만 달러(52조9652억 원)를 기록했다면서 수출 규모는 22개월 연속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중에서 반도체 수출은 29.6%를 차지했다.

대만 행정원 주계총처(통계청)는 올해 교역 부문에서 1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수출과 수입이 각각 5000억 달러, 4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무역 규모 1조 달러 시대를 앞두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세계 교역량 증가율이 5.0%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은 견고한 무역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것도 반도체 수출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 정부는 올해 GDP 성장률이 3.91%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만의 GDP 성장률은 2020년 3.4%를, 지난해 6.45%를 각각 기록한 바 있다. 이처럼 대만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중국의 봉쇄조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식량과 에너지 가격 폭등과 높은 인플레이션 등으로 각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반도체 산업 덕분에 나 홀로 질주하고 있다.
대만 반도체, 중국 침공 막는 방패 될까
중국의 속내는 대만 반도체 산업 흡수?

대만의 눈부신 도약을 가장 부럽게 바라보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양안 통일을 주장하는 진짜 속내는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흡수하려는 의도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첨단 산업 육성 정책인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시장조사 업체 IC인사이트에 따르면 중국의 2020년 반도체 자급률은 15.9%에 그쳤다. 목표인 40%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중국에 생산 기지가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이 만든 물량을 제외한 순수 중국 업체 비율은 5.8%에 불과하다.

중국의 2020년 반도체 수입액은 3500억 달러(416조 원)로 단일 품목으로는 1위를 차지했다. 2019년에 비해 14.4% 늘었다. 두 번째 많은 원유(1763억 달러)의 2배나 되고, 3위인 철광석(1189억 달러)의 3배 수준이다. 전체 수입액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17%나 된다. IC인사이트는 2025년에도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이 19.4%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에선 대만을 무력으로 점령해 반도체 산업을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전 세계 비(非)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상위 10개 업체 중 1위인 TSMC를 비롯해 4개는 대만 기업들이다. 이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무려 64%나 된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1075억4200만 달러(134조 원)로 집계됐다. 대만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을 보면 TSMC 53%, UMC 7%, PSMC(파워칩 반도체 제조) 2%, 뱅가드국제반도체그룹(VIS) 1% 등이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파운드리 시장 규모가 1287억8400만 달러(161조 원)로, 전년 대비 19.8%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점유율은 TSMC가 전년 대비 3%포인트 늘어난 56%로 압도적인 기록을 보일 것으로 예측됐다. 트렌드포스는 대만은 2025년까지 첨단 공정에 대한 세계 생산능력의 58%를 계속 통제해 세계 반도체 산업의 지배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TSMC는 말 그대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TSMC는 올해 1분기(1~3월) 매출 4911억 대만달러(20조7980억 원), 영업이익 2238억 대만달러(9조4780억 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5.5%, 영업이익은 48.7% 늘어난 규모다. 매출은 역대 처음으로 분기 기준 20조 원을 넘었고, 영업이익도 10조 원에 근접했다. TSMC는 올해 매출 성장률이 30%에 달해 지난해(24.9%)를 웃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더인 TSMC 회장은 6월 8일 연례주주총회에서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반도체 업계에 직접적인 타격은 없으며, 수요 감소는 주로 스마트폰이나 PC와 같은 소비자 기기에서 발생할 뿐”이라면서 “전기자동차 수요는 매우 견고하며 일부는 공급 능력을 웃도는 수준이어서 재고 조정을 하고 있으며, 이미 올해 공장 가동 예약이 꽉 찬 상태”라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우 전쟁과 중국의 봉쇄조치 등 대외 경제 여건의 악화에도 이 같은 매출 증가율은 놀라운 성과라고 평가했다. 류 회장은 “미국이 한국 또는 일본과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하는 것은 미국의 무역과 기술 성장을 확실히 하기 위한 것인데, 여기에는 대만이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한 만큼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류 회장은 “미국과 대만의 협력이 줄곧 밀접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대만 반도체 산업에 계속 성공적으로 투자한다면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만 반도체, 중국 침공 막는 방패 될까
대만 반도체 업계, 대규모 투자…중국 위협 대응용?

실제로 대만 반도체 업체들은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TSMC가 대만 반도체 생산 중심지인 타이난에 공장 4개를 짓고 있는 것을 비롯해 대만 반도체 업체들은 전국적으로 20개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거나 최근 완공한 상태다. 투자금액으로는 16조 엔(151조6200억 원)에 달한다. 20개 공장의 부지 면적은 총 200만㎡로 도쿄돔 40여 개를 지을 수 있는 크기다.

닛케이는 “TSMC가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 구마모토현에 짓고 있는 공장의 건설비가 1조 엔(9조4700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6조 엔은 엄청난 금액”이라며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규모”라고 지적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반도체 공장 6개를, 일본 구마모토에 8000억 엔을 들여 반도체 공장을 각각 건설하고 있다. 또 독일과 인도에서도 공장 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TSMC가 타이난에 건설하고 있는 4개 공장은 최첨단 미세공정인 회로선폭 3나노미터(㎚: 1㎚=10억 분의 1m)급으로 한 곳당 1조 엔이 투입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는 미세공정을 통해 회로선폭을 좁힐수록 성능·생산효율 등을 높일 수 있다. TSMC는 또 올 3분기 신주과학단지에 2㎚ 공장 4곳을 건설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이 반도제 공장을 대거 건설하는 것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대만이 미국에 보호를 요구하는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외교적 카드가 반도체라는 것이다.

닛케이는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어책은 미국의 무기 지원이 아닌 최첨단 반도체 공장일 수 있다”며 “전 세계가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도 대만이 대규모 투자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대만에선 반도체 산업이 ‘호국신기(護國神器: 나라를 지키는 신의 무기)’라고 불린다.
대만 반도체, 중국 침공 막는 방패 될까
미국이 대만과 ‘21세기 무역 이니셔티브(US-Taiwan Initiative on 21st Century Trade)’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서 대만을 제외했던 미국이 대만과 별도의 경제협력 채널을 만드는 것은 대만의 반도체 때문이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과 일본 순방 기간에 맞춰 5월 23일 한국, 일본, 호주 등 13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IPEF를 출범시켰다. 대만은 IPEF 가입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만 가입이 중국의 반발을 불러와 회원국 확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세라 비앙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와 덩전중 대만 경제무역협상판공실 대표가 6월 1일 합의한 21세기 무역 이니셔티브는 반부패와 디지털 무역 표준, 노동권, 비시장 접근 관행 등 사실상 중국을 배제하는 의제를 담는 등 IPEF와 판박이다. 관세 인하 등 의회 승인이 필요한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는 점도 같다.

대만은 이번 합의에 따라 실질적으로 IPEF 회원국에 준하는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대만이 한국과 함께 세계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쌍두마차인 만큼 미국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소재인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고립시키려면 반드시 대만을 붙잡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합의를 한 셈이다.

매튜 굿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미국·대만 이니셔티브와 IPEF는 주요 내용이 중복된다”면서 “미국 정부는 이니셔티브를 IPEF 참여와 병행할 수 있는 통로로 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덩 대만 경제무역협상판공실 대표는 “이니셔티브의 뜻은 과거에는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라며 “그 내용이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덩 대표는 “이니셔티브는 의회 통과가 필요 없지만 FTA는 의회 통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도 “대만과 미국의 경제·무역관계에서 이번 이니셔티브가 중요한 진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이 ‘칩(Chip)4 동맹’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3월 한국·일본·대만 정부에 개별적으로 ‘칩4 동맹’ 결성을 제안했다. 미국의 전략은 반도체 4개국의 협력을 강화해 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주고, 주도권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장관은 “대만은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파트너”라며 “대만과 경제적 유대를 계속 강화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 최강자인 한국, 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인 대만, 소재·부품·장비 분야 최강자인 일본, 반도체 설계 기술 1위인 미국을 한데 묶는다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벽’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대만의 반도체는 앞으로도 가장 위력적인 ‘전략 무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