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오피스, 최유안 지음, 민음사, 2022년 1월
백 오피스, 최유안 지음, 민음사, 2022년 1월

[한경 머니 기고 = 윤서윤 독서활동가] 직장은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각자 주어진 일을 하면서 수많은 이벤트들이 수행된다. 작은 실수라도 있으면 시말서를 작성하거나 다음 이벤트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렇게 우리는 유연함과 책임을 배운다.

직장 생활을 통해 스스로가 일에 욕심이 있는지, 그저 주어진 일만 지적 없이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지 자신을 알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이윤을 남기고, 이윤은 작고 소중하게 분배된다. 이런 생각으로 직원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작가 최유안의 <백 오피스>는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소설이다.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세 여성이 주인공이다. 주목받고 싶진 않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즐기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어떤 태도로 일을 하는지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직업을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친환경 대기업 태형그룹의 대리 홍지영과 마이스 스타트업 기획사의 임강이, 퀸스턴 호텔의 호텔리어 강혜원이다. 이들은 태형그룹의 친환경 관련 국제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협업한다. 강혜원이 출산휴가 후 승진을 위해 여러 일을 벌이면서 남편으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으며 소설이 시작된다. 태형그룹의 비리가 뉴스에 보도되던 날, 위기라고는 생각했지만 태형그룹은 행사의 규모를 늘려 이미지 개선을 시도해야 할 때라고 판단한다.

홍지영은 함께 일하는 선배 오 과장과 일을 진행하면서 사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감사실에 보고하고, 오 과장은 좌천된다. 혼자 이벤트를 진행하게 된 홍지영은 오 과장이 지목했던 회사 대신 아티스틱의 임강이에게 연락해 협업을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승진에 대한 욕구, 엄마로서 아이에게 못해준다는 미안함이 묻어난다.

작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원으로 일을 했을 때, 마이스 업계 사람들과 일할 기회가 많았다고 한다. 부딪히고 견제하면서도 서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 하나의 드라마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과정이 녹아 있는 게 그의 첫 장편소설 <백 오피스>다.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 그녀는 최근 전남대 독일언어문학과 전임교수가 됐다고 한다. 그의 소설집 <보통 맛>에서도 그렇듯 격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에 부딪히면서 내면과 상황에 대한 갈등을 그려낸다. 그의 작품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과 상황을 그려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읽게 만든다.

강혜원은 호텔 내에서 점심을 제공하거나 예약된 방을 업그레이드하며 자신의 호텔에서 태형그룹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임강이는 행사에 참여한 이들이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행사장에 거대한 물줄기를 흐르게 하자는 제안을 한다. 호텔 업계에서 행사에 물레방아가 들어가면 망한다는 설이 있지만, 고객사가 원하는 것이기에 차질 없도록 서로 도와야 한다. 그렇게 세 사람은 태형그룹의 대규모 행사 앞에서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 백 오피스가 된다.

이미지 쇄신을 위한 태형그룹의 행사는 아이러니했다. ‘친환경’을 강조하는 기업이 단 하루를 위해 수억 원을 사용한다는 게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홍지영이 기획한 이벤트는 행사장 한가운데로 물줄기를 흐르게 한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다만 그 물이 행사장을 집어삼키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돈이 부족해서였을까. 기획부터 착공까지 빠듯한 일정 때문이었을까. 작가는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이 과정을 분 단위로 나눠 행사가 어떻게 망해 가는지 보여준다. 텍스트로 펼쳐지는 실패의 과정은 지금 나에게 벌어지는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작가는 친환경 기업이 단 한 번의 대규모 행사로 실패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실패했다는 것은 책임자를 선별하는 과정이 된다. 이런 일에 책임 유무는 무의미할지도 모르지만, 단체라는 곳은 희생을 할 만한 사람이 꼭 필요하다. 퀸스턴 호텔에서는 부지배인이 책임을 지고, 아티스틱은 파산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된다. 임강이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사내게시판이 기재한다. 인생은 책임의 연속이다. 누구보다 일을 좋아한 이들이 책임을 졌다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묻게 된다.

“강혜원에게 호텔리어는 무엇이었더라. 일은 나에게 무엇이었더라. 쟁취해야 할 무언가, 내 삶을 지탱해준 무엇, 유일하게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 그러니까,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것, 내 삶의 의미.”(138쪽)

결국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삶의 의미가 된다. 가정에서 ‘OO엄마’, ‘배우자’라는 역할로 불릴지 몰라도 직장에서 인정받고, 일을 끝까지 마무리 짓는 행동도 의미가 될 수 있다. 이런 행동들이 앞으로는 보통 맛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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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서윤 독서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