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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승의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부동산 시장이 올해 들어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특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음)로 아파트를 장만한 사람들은 치솟은 대출금리에 당장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대규모 주택 공급까지 계획돼 있어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의 한랭전선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의 이자 상환 부담이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가계에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주택 수요 억압 및 주택 거래가 급감, 주택가격 하락의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의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을 만나 악화일로에 있는 부동산 시장 분위기를 알아봤다.
"부동산, 최대 변수는 금리...지금은 하락장 초입"
빚 내서 집 샀는데...부동산 팔까 버틸까
박 위원은 “인플레이션의 시세 반영은 연속적이기보다는 단속적(불연속적)인 점을 감안할 때 물가 상승은 단기적으로 악재가 될 수밖에 없으며,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부동산 시장이 휘청거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경제 저성장 추세를 감안할 때 시차를 두고 다시 저금리 시대로 되돌아갈 것이며, 이번 고금리 사태는 홍역처럼 앓고 지나가는 것으로서 화폐가 팽창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명목가격의 영원한 우하향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 테니 지금 팔고 나중에 저점 매수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위험한 생각”이라며 “집값이 비싼 지역에서 다주택자는 집을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지만 집값이 싼 지역의 경우 이번에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을 ‘주택 수’에서 ‘주택가액’으로 바꾸기로 한 만큼 굳이 서둘러 팔 필요는 없다”며 “한 채는 거주하고 한 채는 월세를 받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더불어 그는 "실수요자들이 불황을 이기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바로 빚 줄이기"라는 점도 강조했다.

집값 하락 진앙지는 수도권
박 위원은 “요즘 수도권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며 “지난해 4분기 고점 대비 30%, 심지어 40% 하락한 곳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기준금리가 연 2%를 돌파하면서 주택 시장이 냉각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실제로 KB국민은행 아파트 시세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경기도 안양 동안구(–2.27%), 수원 영통구(–2.26%), 화성(–2.20%)에서 하락폭이 두드러졌다. 수도권에서 2% 이상 하락한 곳은 이들 지역뿐이다. 같은 기간 세종(–3.87%)보다는 하락 폭이 작지만 대구(–1.89%)보다 훨씬 크다. 의왕(–1.28%)도 올해 들어 7월까지 수도권 평균(0.83%)보다 더 빠졌다. 서울 지역에서는 25개구 중 성북구(-0.3%)에서 유일하게 하락했다.
박 위원은 “통계가 보여주듯 이번 아파트값 하락세는 수도권에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며 “일부 수도권 아파트 값이 급락세를 보이는 것은 그만큼 많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단순 시세차익을 노리고 전세를 낀 갭투자가 많았고 여기에 GTX에 대한 기대감까지 폭발했다”며 “최근 들어 하락 폭이 큰 수원 영통구, 의왕, 안양동안구는 모두 GTX C노선 경유 지역으로서 가격이 많이 오르면 하락할 때 더 많이 떨어지는 것은 세상 이치”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하락장 초입
박 위원은 현재 부동산 시장의 최대 변수를 ‘금리’로 꼽았다. 그는 “금리가 다른 호재를 압도함에 따라 금리 파도가 잔잔해지기까지는 거래절벽 속에 하락이 불가피하다”며 “개인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1차 고비는 내년 1분기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리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다주택자 양도세 절세 매물도 많이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금리 인상 랠리가 마무리될 때까지는 가격 조정과 기간 조정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주택 시장이 조정을 받으면 가격 조정(가격 하락)과 기간 조정(거래 위축)이 나타난다”며 “대체로 채권전문가들은 기준금리의 정점은 올 연말~내년 상반기로 본다. 따라서 내년 상반기, 빠르면 내년 1분기까지 가격 조정이 심하게 나타난 뒤 그 이후에는 기간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 위원은 “이 같은 금리 변동이나 시장 조정에 따라 실 거주 목적으로 내 집을 장만할 수요자들은 내년 1~2분기를 노려봐도 좋다”고 추천하면서도 “다만 가격은 수도권은 지난해 4분기 평균 거래가격 대비 30%, 서울 고가주택은 20% 이상 저렴한 매물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거래 착시를 유발할 수 있는 최고 거래 가격이 아니라 평균 거래가격이라는 점”이라며 “시장을 좀 더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2~3년 정도 시간을 보면서 매입을 해도 무난하다”고 조언했다.

랜드마크 아파트를 눈여겨 보라
KB국민은행의 월간 통계에 따르면 대장주 아파트 지수로 불리는 ‘KB선도아파트50지수’가 7월 들어 0.24% 하락했다. 선도50지수가 하락한 것은 지난 2021년 5월(-0.64%) 이후 2년 2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 지수는 KB부동산이 전국 아파트단지 중 시가총액 상위 50곳을 매년 선정해 시가총액의 지수와 변동률로 나타낸 것으로, 가격 변동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박 위원은 “사람들은 대체로 랜드마크 대단지 아파트는 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랜드마크 아파트는 단기적으로 오를 때 다른 단지보다 더 많이 오르고, 내릴 때 더 많이 내린다. 블루칩아파트의 가격변동성이 큰 것은 대단지 아파트이어서 거래가 잦아 시세 포착이 더 쉽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실제로 가격이 하락할 때 나 홀로 아파트는 거래가 거의 없어 시세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대단지 아파트는 불황이라도 적어도 한두 건은 거래가 미뤄질 것이고, 떨어진 가격을 먼저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5000가구 이상 대단지가 몰려 있는 잠실 아파트값이 하락하는 것은 바닥권에서 거래될 때도 당연히 블루칩이 먼저 팔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상급지로 갈아타기 쉽지 않은 이유
시장이 불황일 때 사람들은 상급지로 갈아타는 것을 꿈꾼다. 옮겨 타기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보다 비싼 지역, 혹은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박 위원은 일반적으로 불황기에는 주거 프리미엄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블루칩과 비 블루칩과의 가격 차이가 감소한다는 얘기다. 과소비보다는 실속소비를 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박 위원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상급지 갈아타기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며 “아파트 값이 상급지보다는 중급지 혹은 하급지에서 더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상급지 갈아타기는 실속이 없을 수 있다”며 “특히 1~2년 전에 수도권에서 집을 장만한 사람일수록 내 집은 싸게 팔고 남의 집은 비싸게 사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