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 위스키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대만과 인도 위스키에 대한 호평도 이어진다. 그런데 왜 ‘K-위스키’는 왜 없을까. 아니다. 있다. 한국 위스키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본다.
[Special] 'K-위스키'의 역사를 돌아보다
코드명: ‘특급’ 위스키 개발 작전
한국에서도 위스키를 만들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원액을 함유한, ‘국산 특급 위스키’가 존재했다. 1980년, 정부는 위스키 국산화 정책을 발표한다. 그리고 당시 주류 업계를 이끌던 OB씨그램과 진로, 백화양조 3사에 위스키 제조 면허를 발급했다. 위스키 원액 수입 및 제조를 허가하는 대신 국산 위스키 원액을 개발하라는 조건이었다. 3사는 즉각 약 200억 원을 들여 국산 위스키 개발을 위한 몰트위스키 제조 시설을 완비한다. 그리고 1982년 처음 국산 위스키 원액을 생산하며 국산 위스키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2년 후인 1984년 국산 대맥을 원료로 한 그레인위스키가 생산되기 이른다. 당시 정부는 3사에 주질의 고급화를 주문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전까지 우리 품질로 만든 세계적 위스키를 시장에 내놓겠다는 목표였다.
결실을 맺은 건 그로부터 3년 후인 1987년 3월 1일. 드디어 국산 위스키 원액으로 만든 첫 번째 위스키가 탄생한다. 국산 특급 위스키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디프로매트(OB씨그램)’와 ‘다크호스(진로)’였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이 위스키들은 국산 몰트 원액 9%와 국산 그레인 원액 28%를 함유하고 있었다. 100% 국내 생산 원액을 사용하기에는 비축량이 모자랐기에 1989년까지 완전한 국산화를 이루겠다는 포부가 뒤따랐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에 당면했다. 시장의 반응이 영 냉랭했다. 스카치위스키만큼의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는 정부 기대와는 달리 대중화에 실패한 것이다. 1987년 9월 기사에 따르면 디프로매트의 경우 3월에는 1만4000여 상자를 판매했으나 5월에는 9000상자, 7월에는 7400상자로 판매량이 급감했다. 다크호스도 상황은 비슷했다. 3월에는 1만4000상자를 판매했지만 7월에는 9400상자까지 판매량이 크게 감소했다.
여러 원인이 있었겠지만 수입 원액으로 만든 위스키와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1984년 OB씨그램에서 출시한 국내 최초의 스카치위스키 ‘패스포트’의 벽은 높기만 했다.
결국 정부까지 나서 야심 차게 준비한 위스키 국산화 정책은 3년 만에 사양길을 걷는다. 그레인위스키의 재료인 대맥을 중국산으로 교체하는 등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끝내 소비자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더욱이 1991년에는 주류 수입 자유화 정책이 시행되며 ‘시바스리갈’과 ‘발렌타인’, ‘조니 워커’ 등의 해외 유명 위스키가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다. 결국 정부는 같은 해 9월 위스키 국산화 정책을 전면 백지화한다.
[Special] 'K-위스키'의 역사를 돌아보다
다시 한번, 한국 위스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다. 다시 한국 땅에 위스키 증류소가 세워졌다. 각각 경기도 남양주와 김포에 문을 연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와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다. 2곳 모두 개인이 세운 소규모 위스키 양조장으로 나란히 2020년 개업했다. 위스키 시장의 성장 그래프가 가파르게 치솟던 시기와 맞물린다.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를 세운 건, 재미교포 출신의 도정한 대표였다. 지난 2014년 국내 1세대 수제 맥주 회사 ‘핸드 앤 몰트’로 큰 성공을 맛본 후, 위스키 시장에까지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위스키 제조는 스코틀랜드에서 영입한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루 샌드가 총괄한다. 그는 18세에 글렌리벳 증류소에서 시작해 43년째 위스키를 만들어 온 장인이다.
반면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는 위스키 마니아들 사이에서 아이돌급 팬덤을 가진 김창수 대표가 설립한 곳으로 위스키 증류기까지 직접 디자인해 만들었다. 그가 만드는 ‘김창수 위스키’는 한국인 디스틸러가 만든 최초의 싱글 몰트위스키라는 평가를 받는다.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와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는 각각 지난해 9월과 올해 4월 첫 번째 위스키를 내놨다. 국내 위스키 역사상 처음으로 100% 원액으로 만든 국산 위스키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더불어 대한민국이 위스키 종주국에 처음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진짜’ 국산 특급 위스키가 탄생한 셈이다.
시장의 반응은 30년 전과는 사뭇 달랐다. 쓰시소사이어티스 증류소가 1506병(국내 600병 유통),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가 336병 한정으로 출시한 위스키는 출시와 동시에 동이 났다. 출시 전 날부터 판매처에 긴 줄이 늘어섰는가 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각 위스키를 맛볼 수 있는 바(bar)의 리스트가 나돌기도 했다. 인터넷 검색 포털에는 자랑 섞인 시음기도 이어졌다. 심지어 22만 원에 발매된 김창수 위스키는 현재 일부 온라인에서 200만 원대에 거래된다.
국내 위스키 사업은 더 확대될 예정이다. 대기업들도 위스키 시장 진출 준비에 한창이다. 신세계 L&B와 롯데칠성음료가 대표적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신세계 L&B는 한국식품연구원 식품연구단과 ‘K-위스키 개발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위스키 개발은 스코틀랜드 헤리엇와트대에서 양조 증류학 박사를 마친 김태완 박사가 맡을 예정이다.
신세계 L&B 관계자는 “아직 위스키 부지 및 증류소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지만 제주에 시설 및 부지가 있어 우선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신세계 L&B는 ‘제주 위스키’와 ‘탐라 위스키’, ‘탐라 퓨어몰트 위스키’ 등 14개 상표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증류소는 롯데칠성음료가 먼저 세울 것으로 예측된다. 롯데가 증류소를 준비하는 곳 역시 제주다. 지난 7월 감귤주스 생산 공장에 대한 업종 변경을 신청한 데 이어 지난 9월에는 서귀포시로부터 증류주 제조업에 대한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내년 착공이 목표”라면서도 “이제 막 증류소 승인을 받은 단계로 세부적인 계획은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NEW KOREAN WHISKY
[Special] 'K-위스키'의 역사를 돌아보다
기원 독수리 에디션
쓰리소사이어티스가 선보이는 싱글 몰트위스키 ‘기원’의 세 번째 리미티드 에디션. 지난 4월 선보인 ‘유니콘 에디션’을 처음 쓰는 버번 오크통에 옮겨 담아 다시 숙성했다. 도정한 대표에 따르면 “숙성 기간뿐 아니라 오크통 차이에서 오는 맛과 향의 변화를 알리고 싶었다”고. 오직 1963병만 선보일 예정으로 증류소 및 일부 주류 판매점에서 선착순 판매한다.
[Special] 'K-위스키'의 역사를 돌아보다
김창수 위스키 02
진정한 ‘한국 위스키’라 할 만하다. 군산에서 재배한 국산 맥아를 사용해 증류하고 국산 오크통에서 숙성해 만들었다. 한약재 같은 향이 나는 등 풍미 역시 한국적이다. 이런 시도만으로도 소장 가치가 높을 듯. 물을 첨가해 희석하지 않는 캐스크 스트랭스 싱글 몰트위스키로 알코올 도수는 48.7도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